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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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다. 충분한 물질적 증거가 없을 때, 불확실한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과학의 진정한 힘은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데에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힉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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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복잡하지 않다 - 골리앗 전사 이갑용의 노동운동 이야기
이갑용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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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초였을 것이다. 현대중공업에 들어서던 기억이 난다. 정문에는 소위 '하이바'로 불리는 안전모를 쓰고 발목에 각반을 찬 경비를 보았고, 방문한 일행들의 버스에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부인들로 구성된 아줌마 안내원이 버스에 올랐다. 여기 현대중공업은 공장부지가 얼마나 크고, 점심 때 직원들 먹이려면 쌀을 몇 백 가마에 돼지고기 몇 백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분위기를 압도하는 우스개 소리들을 했었다. 이것이 우스개 소리가 아닌 것이 만드는 물건도 정말로 크고, 공장도 정말로 크다. 나는 말로만 들었던 '골리앗 크레인'을 보고 싶었는데, 친절한 아줌마는 저 골리앗 크레인에 적힌 영문자 하나의 크기가 몇 미터나 된다는 얘기까지 곁들여 주었지만, 회사에서 고용된 분들의 안내에서 저것이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라는 말씀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민감하던 시기였다.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회사측에서 조합원에게 식칼 테러를 자행하고, 울산만에 군함이 뜨던 시기였으니. 현대중공업을 방문하기 불과 몇 일 전 조별로 깃발을 만들라는 지시에 동기생 다른 조에서 골리앗 크레인과 그 밑에 건조 중인 선박을 그린 깃발을 당장 다른 것으로 바꾸라는 얘기를 했었다. 나는 우리 조에서 만든 깃발은 생각나지 않는데, 그 조의 깃발은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깃발을 당장 바꾸라는 회사의 요구 역시도.

 

1987년 7,8,9월 노동자들의 항쟁은 6월 항쟁을 이어 전국의 사업장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엄청난 일이었다. 1970년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역사적 사건이다. 그저 시키는대로 일만 하던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조직화되고 민주노조를 만들고 사주를 대상으로 싸움을 걸었던 상징이다. 몇 년 뒤 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기간 중 탄압을 피해 그 높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투쟁을 지속한다. 당사자는 골리앗이 거기 있어 올랐다고 하지만, 밑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늘에 한 점으로 떠 있는 별과 같은, 자신들의 희망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영웅이 되기 위해 오른 것이 아니라 싸울 곳이 없어 처절한 자신의 목소리를 관철시키고자 오른 것이었다. 골리앗 크레인은 그렇게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상징이 되어 버렸다.

 

거기 올라 투쟁했던 전 현대중공업의 이갑용 위원장이 책을 썼다. 민주노총 위원장, 울산 동구청장을 지낸 그가 자본과 싸워왔던 숱한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자, 더 이상 같은 실수들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것이 구절마다 느껴진다. 또 하나는 자신의 기억이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음을, 그래서 기록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이 책이 내게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현재 노동운동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내부 비판이 통시적 관점으로 일관되게 책 전체에 깔려있음이다. 민주노조들이, 민주노총이 비리와 내분으로 엉망이 된 이후 우리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고, 노동자들에게서 멀어지는 이유가 현장에서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학술적인 전문가들의 수많은 진단과 선거판의 공약 같은 해결책을 보아왔지만,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비호할 조직도 없는 현장의 진짜 노동자가 쓴 정말 전문가다운 글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희망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이다. 사장도 일하고 사원도 일한다. 주인도 일하고 종업원도 일한다. 그럼 민주노동당은 누구의 희망인가.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사회'를 민주노동당은 말한다. 사장도 땀 흘려 일하고, 사원도 땀 흘려 일한다. 사장은 사우나에서 땀 흘리며 그걸 일이라고 여기고, 어떤 사장은 골프장에서 나이스 샷을 날리고자 땀을 흘린다. 어떤 종업원들은 사장이 골프장에서 땀 흘리는 것도 회사를 잘되게 하기 위한 경영 활동의 하나이기 때문에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땀 흘려 일하는 사장의 희망인가.
'일하는 사람'을 한자말로 표현한 것이 '노동자'인데 우리의 시대와 역사는 '노동'을 불온함과 편협함의 대명사로 만들어버렸다. 원내 10석을 얻은 진보 정당도 '노동'이란 말을 앞세우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아주 건전하고 순박한 단어의 조합을 내걸 정도로 타협하게 만들었다.
우리 내부의 이런 분위기는 오랫동안 목적의식을 가지고 계급운동을 하지 않고, 지표 없이 활동해온 결과다. '노동'이나 '계급'을 입에 올리면 시대에 뒤떨어진 편협한 좌익 소아병 환자 취급을 받는 것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계급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내려볼 때다. 계급적 자각과 연대를 통해 계급의식을 방해하는 그릇된 정파의 활동을 몰아내고, 진짜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민주노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혁신할 수 있다. (p 360~361)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이 아니라고 외면했던 탓에 많은 사람들이 높은 굴뚝 끝으로, 크레인 꼭대기, 망루로 아직도 오른다. 그들의 얘기에 나는 아직도 눈물이 난다. 민주화된다는 것,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인간대접을 받는다는 것,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 이를 위해 저자는 자본과 권력이 어떻게 우리를 길들이는지, 이데올로기로 가려진 불합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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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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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는 것은 늘 사람의 깊은 곳에서 규정하기 힘든 울림을 주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래된 근원적 질문들을 끄집어내고 인간에 대한 성찰을 나눌 수 있는, 인간이 만들어 낸 훌륭한 정신적 유산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이라는 근본적 요체와 더불어 시대적 환경과 사건에 따른 역사라는 배경이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Q정전'은 이러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 인간성에 대한 성찰과 혁명기라는 역사적 관점이 부가된 고전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에는 세태를 질타하는 계몽적 소설이라 할지라도, 읽히는 지금의 시대에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인간을 되짚어 보게 하는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근현대사에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지라 우리를 둘러싼 중국, 일본에 대한 근현대사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데, 중국에 대한 관심은 중화주의가 드세질 정도로 나날이 기세를 올리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욱 눈여겨 보게 된다. 이 작품을 번역한 이욱연 교수는 그런 관심을 갖는 나에게는 중국에 대해, 특히 루쉰에 대해 좋은 길라잡이가 된 많은 글을 내놓는 분이라 번역된 많은 '아Q정전'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더군다나 쟈오엔넨이라는 판화가의 사실적인 묘사들이 더해진 책이라 작품을 읽어 이해하는데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에서 패한 이후 중국에 팽배한 패배의식과 노예의식을 대변하는 버러지 같은 인간 아Q와, 공화제 도입을 위한 쑨원의 신해혁명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한 인간의 행적을 그려내는 이 소설은 단순히 그 시대 중국에 국한된 인간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배하고 모욕을 당하고도 손쉽게 툴툴 털어 정신적인 승리감에 자신을 마취시키고, 자신이 당한 모욕을 더 약한 자에게 되갚아 만족감을 느끼고, 저항하고 항변하는 대신 시대가 던져놓은 혁명이라는 도구에 자신을 일체화 시켜고자 했던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나의 내면에는 없을지 의문이다. 시대에 저항하지 않고 현실에 분노하지 않으며 개인의 만족을 위해 내달리는 우리시대의 아Q들에게도 한낱 어리석은 인간의 행적에 대한 글로만 읽히지 않기를 루쉰도 기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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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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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를 어릴 때 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어릴 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는 수식어가 머리 속에 이미 가득차 내 성정으로는 글의 참 맛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왜 산티아고 노인은 84일이나 허탕을 치고도도 그 멀리 바다로 나갔는지, 왜 미친듯이 큰 청새치를 잡고도 이틀 밤낮을 싸워야 했는지, 왜 줄을 끊어버리고 편한 집으로 귀항하지 않았는지...하나같이 아슬아슬한 상황이 그저 싫었을 것이고, 아마 산티아고 노인이 바다와 새와 자신과 의 대화조차도 유치하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니면 집으로 돌아와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인 바람에 소년 마놀린이 흘려대는 눈물에 그냥 같이 눈물만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평소 고전이라는 것에 원체 취약했던 터라, 좋은 글들을 언제고 꼭 읽어야지 하던 차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노인과 바다'를 발견했다. 그렇다. 이번에는 읽고 싶어 읽은 셈이다. 그것도 어린 시절이라 보기 힘든(?) 나이 좀 먹고 읽은 것이다. 그런데도 산티아고 노인의 지친 걸음걸이에, 소년 마놀린의 말 한마디에, 어린 그의 눈물에, 나도 눈물이 울컥했다.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깊고 푸른 막막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그의 모습과 여인과 같다는 바다를 대하는 그의 태도, 뱃전에 내려앉아 잠시 쉬어가는 새 한마리에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삶의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는 산티아고 노인만이 아닌, 헤밍웨이만이 아닌, 인간 노인의 겸손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큰 청새치를 잡아 배 옆구리에 묶고 돌아올 때, 상어들이 85일만에 찾아온 노인의 거대한 행운을 호시탐탐 노린다. 물고 늘어진다. 그 때 산티아고 노인은 작살로, 돛으로, 칼로, 몽둥이로 물리친다. 죽어라 싸우는 것이다. 그냥 청새치에 묶인 끈을 풀어버리면 될 것을. 그렇다. 노인은 세상을 감싸고 겸손해야 할 때와 싸워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노인은 완숙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돛을 펼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큰 놈을 잡았노라고 기뻐하기 전에, 저 큰 청새치 놈을 끌고가기 위해 '잡 일'이 많다는 것을, 멕시코만류의 한가운데에서 덩치 큰 상어놈들이 덤벼들 것이란 걸 이미 가늠하는 것이다. 그렇다. 노인은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끈을 풀지 않는다. 소년이 옆에 있었으면, 하느님이 좀 도와주셨으면...부질 없다는 것을 알면서 흘러나오는 그 말들은 신음이었을 것이고, 자신에게 매질하듯 '이 영감아. 정신 차려', '이 노인네야. 정신을 집중해'를 외쳐댔던 것이리라.

 

산티아고 노인은, 노인과 같이 원숙한 청새치를 잡은 것이다. 그러기에 잡힌 물고기를 두고 '형제'라 하지 않았던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이를 모질게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아 기관총을 갈겨대며 연기 속에 남은 조던.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 또 하나의 걸작 '노인과 바다'를 만들어 낸 것이라 싶다. 읽는 내내 긴장했고 읽은 후에 검푸른 바다의 끝모를 깊이처럼 생각이 깊어졌다. 기자 출신이라 간결한 문장을 즐겼다는 헤밍웨이의 깔끔한 문체처럼, 번역도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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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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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몇 개의 골목을 남겨두고,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책을 덮어두고 있다 오늘에야 마무리를 했다. 약 30분도 안되는 시간만에 마지막 책장을 넘기게 되는 분량이었는데도 다 읽지 않고 며칠을 끌고 온 것이다. 그냥 그 골목길들을 잠시 남겨두고 싶었다. 어디론가 여행을 좀 다녀야겠다는 생각, 먼지 쌓인 사진기를 다시 들어야겠다는 생각...그렇게 얄팍하게 남겨 놓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책을 덮고 드는 생각이지만, 어릴 적 살았던 내 삶의 골목길, 책에서 소개되는 수많은 골목길이 현대적인 중장비로 30분이면 밀어버리고 판판한 새 터로 언제든지 만들 수 있겠지만, 얽히고 섥힌 좁다란 골목길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것도 내가 책을 마무리하지 못한 이유가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좁은 골목에 펼쳐진 많은 사연과 함께 밀어버리지 못하고 남겨져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하는 우리네 삶의 공간들이기에.

 

(p102) 골목에 나와 있는, 벽 앞의 세워진 오래된 그것들은 어쩌면 책갈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자신들이 한 시절 사랑했던 생의 한 부분을 기억하기 위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슬며시 끼워놓은 책갈피. 사람들이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물건을 버리는 순간 자기 생의 한 부분이 휘발할 것이고 그러면 그 질량만큼 외로워질 것이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버리고 사는 것이, 늘 가볍고 비운만큼 채워지는 것도 쉽다는 것을 알지만,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다 사그러져 가는 공간들에 예술인들이 갖가지 붓과 페인트로 채색을 하고, 간판들을 새로 내걸고, 동네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그 공간이 존재하는 동안, 그 삶이 존재하는 동안은, 어둡고 침울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골목길 담벼락에 그려진 많은 그림들과 작품들 덕에 주민들 표정이 밝아졌다하고, 햇볕따라 덩그렇게 구조물의 그림자만 지던 그 골목들은 찾아오는 사람들 냄새로 생기가 돌았다하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p329) 사회학자 제인 제이콥스가 말한 대로, 골목은 '도시의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골목은 이웃을 마주하고 안부를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는 광장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때로는 주민들의 작은 정원과 텃밭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골목이 없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어느 한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깃든 우리 삶의 방식과 패턴, 우리가 지나왔던 시간이 한꺼번에 소멸한다는 것이다.

배다리를 걷다보면 알 수 있다. 골목은 자연스럽게 진화한다는 것을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지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어떤 때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국의 골목길 구석구석을 돌며 쓴 이 글과 사진들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두고 산책하며 쓴 글이다. 골목길을 찾아가는 대중교통 편도 설명해 두고, 어디를 둘러보면 좋다는 여행가이드와 같은 책이기도 하다. 골목길마다의 역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도 않고, 골목길에 사회학적, 지리학적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으며, 그냥 담장 너머에 널린 빨래와 대문 앞에 놓인 화분 하나에 눈길을 보내는 담담한 글들이다. 그래서 내게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책이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사진을 찍으려 구석구석을 누비고, 사람들을 만나려 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많은 기다림이 녹아든 그의 발품팔이 글과 사진에 조용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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