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격투기 팬은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집에는 왠만한 線은 다 끊어놓아서 공중파 이외에는 잡히지 않아 보고싶어도 격투기를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런 내가 우연찮게도 작년 연말 선배집에서 그의 경기를 보게 되었는데, 미사키라는 일본선수에게 추성훈은 그날 떡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지저분하게 떡이 된게 아니라, 한방(규정에 금지하고 있는 사커킥)에 떡이 되었다. 그날 지켜본 내가 더 기분이 상한건 떡된 후 정신차리고 인사하러 간 그를 미사키는 밀쳤고, 마이크를 들고 훈계조로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링을 내려가는 그의 등에다 대고 "일본은 강하다"라고 관중들에게 외쳤다. 이게 무슨 국가대항전인가? 순간 정신나간 소리로 마이크 들고 훈계하기 좋아하는 길거리의 일본우익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주아주 불쾌했다.

추성훈은 내가 격투기선수 중에 좋아하는 선수인데, 그의 경기는 화끈하다. 어리버리 싸우는게 아니라 소위 '깡'이 있게 경기한다. 예의를 지키는 경기라 유도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유도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버림받은 선수이다. 디아스포라이다.

======================================================== 이하는 한겨레21에 실린 그의 기사

"추성훈도 나고, 아키야마도 나다"
일본에선 한국인, 한국에선 '반쪽 한국인'으로 살다 일본에 귀화한 종합격투기 추성훈 선수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그는 추성훈(34)이면서, 또 아키야마 요시히로다. 두 개의 이름을 쓰기에, 두 개의 언어를 알아듣기에, 때론 두 배의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추성훈 그리고 아키야마.

추성훈은 1998년 부산시청 유도팀에 입단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그는 일본 실업팀들이 '귀화'를 조건으로 스카우트 경쟁을 벌일 만큼 썩 괜찮았던 자신의 실력만을 이곳, 한국 사람들이 봐주길 원했다. 하지만 주류 유도계는 '재일동포 4세'란 신분에 먼저 눈길을 보냈다.

추성훈의 가족은 1923년 일본에 정착했다. 오사카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추성훈이 태어났다. 1972년 재일동포 유도대표로 국내 전국체전에 출전해 우승한 추성훈의 아버지 추계이씨는 이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상으로 탈락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대신 국가대표 수영선수 유은화씨를 만났고, 1975년 추성훈을 얻었다.



△ 지난해 12월31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추성훈 선수가 미사키 가즈오 선수를 링 바닥에 누인 채 공격을 퍼붓고 있다. 추 선수는 반칙 논란이 거센 이 경기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패배했다. (사진/FEG 코리아제공)

한국 선수 이기자 관중석에서 “쪽발이”

세 살 때부터 유도장에 드나든 추성훈은 학창 시절 또래들을 능가하는 기량을 갖췄지만, 그곳에서도 '재일동포 4세'란 벽을 만나야 했다. 전국대회 같은 주요 경기엔 일본 국적이 없는 탓에 자신에게 졌던 2, 3등 선수에게 출전권을 양보해야 했다. 아버지 추계이씨는 끝까지 한국 국적을 지킨 것에 대해 "차별이 있었기에 더 한국인으로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별에 져서 굴한 것 같은 느낌이 싫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에게 한국행을 직접 권했다. "일본에선 배울 수 없는 한국 유도를 배우라. 그럼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한국 유도를 배울수록 추성훈의 마음엔 상처만 커져갔다. 유도계를 장악한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닌 탓에, 그 대학 출신 심판들한테서 정당한 판정을 받지 못해 정상 문턱에서 무너지고 만다는 피해의식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추성훈은 외국인 심판들로 구성된 2000년 코리아오픈에서 당시 81kg급 최강자 조인철 등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쯤 되니 대한유도회는 그를 대표팀 2진으로나마 뽑을 수밖에 없었고, 추성훈은 2001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 금메달을 가져왔다. 이 대회에서 추성훈은 전 경기를 한판으로 이겼다. 그건 마치 한판으로 이기지 않으면 자신이 인정받을 수 없다는 조급증에 쫓기는 것처럼 보였고, '이러고도 내가 안 된단 말인가'라며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서글픈 몸짓으로도 보였다.

그러나 추성훈은 이후에도 심판 텃세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의혹을 지우지 못했다. "한국 사람이니까, 국가대표 하고 싶어서 귀화 안 하고 이곳에 왔다"던 그의 말은 "여긴 말을 해도 안 된다"로 바뀌고 말았다. 그는 부산시청 소속 지인에게 "일본에서도 한국 사람이라고 불이익을 주더니, 한국에서도 반쪽 한국 사람이라고 불이익을 당한다"는 말을 남기고, 3년7개월여 만에 한국을 떠났다. 유도계는 81kg급 조인철이 하향세였고, 이 체급의 새 강자가 추성훈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쫓아가 붙잡지 않았다.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젠 일본으로 귀화한 지 두 달 만에 그쪽 대표가 된 아키야마 요시히로란 이름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산시청 소속으로 훈련했던 구덕체육관 매트에 일장기를 달고 올라선 그는 결승에서 한국 선수와 맞붙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관중석에서 '쪽발이'란 소리까지 흘러나왔지만, 경기 뒤 기자들에게 "저는 원래 한국 사람이니까, 국적 관계없이 (관중들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왜 귀화했느냐'는 물음엔 "유도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한국에서 받았던 서운한 감정을 애써 감춘 건 앞으로도 자기 스스로 '추성훈'이란 한국 이름을 지울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은 강하다"며 비수 꽂은 미사키

2003 세계유도선수권 우승이 좌절된 뒤 2004 아테네올림픽 출전까지 무산된 그는 그해 말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2005년 11월 한국을 다시 찾았다. 외국팀과 한국팀으로 나뉘어 싸운 격투기 대회에서 그는 한국팀 소속으로 뛰었고, 경기 뒤 링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오랜만에 한국 와서 시합해 너무 기쁩니다. 진짜 행복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일본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가슴 안에는, 지금 여기 들어가는(들어 있는) 피는 완전 한국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도복 한쪽 어깨에 태극기를, 또 다른 쪽에 일장기를 달고 링에 오르는 그는 '한국의 추성훈, 일본의 아키야마'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그렇게 고백했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07년 마지막 날. 추성훈은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종합격투기대회에서 프라이드 웰터급 챔피언 미사키 가즈오(31·일본)와 맞붙었다. 턱을 얻어맞은 추성훈은 주저앉았고, 일어나려는 찰나 상대가 휘두른 킥에 코뼈가 부러졌다. 미사키가 추성훈의 두발과 두손이 땅에 닿은 상태인데도 규정에 어긋난 사커킥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미사키는 피가 줄줄 흐르면서도 악수를 하러 온 추성훈을 밀치며 마이크를 잡고 "너는 많은 사람과 어린아이를 배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소리쳤다. 추성훈이 2006년 12월31일 일본 격투기 영웅 사쿠라바 가즈시(39)와의 경기에서 몸을 미끄럽게 만드는 크림을 바르고 승리해 출장정지 중징계를 받은 걸 지적한 것이다. 당시 추성훈이 TV 카메라 앞에서 몸에 로션을 발랐다는 점에 비춰 의도성은 없어 보였지만, 처음부터 이 사실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한 추성훈은 거센 도덕성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그 화살의 방향은 때론 아키야마가 아닌 '재일동포 추성훈'이란 또 다른 그를 향해 날아가기도 했다.

여기에 피를 닦으며 링 밖으로 나가는 추성훈의 뒤통수에 대고 미사키가 "일본은 강하다"고 한 것이 국내 팬들을 흥분시켰다. 그 말은 언뜻 '아키야마'가 아닌 '추성훈'을 겨냥한 것으로 들렸고, 두 개의 이름을 택한 그에게 너무 비정한 비수처럼 보였다.


"그를 좀 자유롭게 해줬으면 좋겠다"


추성훈의 아버지는 말한다. "아들이 가슴 아프게 부산에서 돌아와 귀화를 결정했을 땐 말리지 못했다. 나로선 한국에서는 추성훈으로, 일본에서는 아키야마로 불렸으면 좋겠다." 추성훈의 격투기 측근은 "이제 그를 좀 자유롭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추성훈도 얘기한다. "추성훈은 가슴에 새겨져 있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내 이름이다. 그래서 추성훈도 나고…, 아키야마도 나다."

그의 말은 편견에 사로잡혀 추성훈 속에서 아키야마를 끄집어내지 말고, 아키야마 속에 있는 추성훈을 공격하려 하지 말고, 이제 격투기에서 정상에 오르고 싶은 자신의 도전만을 오롯이 봐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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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대학 졸업 때 남는 시간에 만들어 선물했던 진공관앰프를 먹통이 된 체로 작년에 돌려받기는 했는데, 먼지쌓여 집구석에 처박혀있다 지난 주말에서야 진공관앰프만의 그 은은한 소리를 멋지게 살려냈다. 집에 음악이 흐르지 않으니 그것만큼 또 삭막한게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다 잠원동의 '한사장님'을 찾아냈는데 주말에서야 묵직한 고물 앰프를 들고 아파트 작업실로 찾아갔다. 허리도 아픈데 이눔의 고물덩어리는 왜 이리 무거운지...

한사장님의 아파트 거실에서 수리를 마친 내 앰프로 살려낸 그 은은한 소리! 저음의 Jazz에서 찢어지는 소프라노, 튕겨져 구르는 가야금 소리까지 내 귀에는 완벽했다. 박수! 박수!

누가 이렇게 설계했냐며 한소리 듣고, 이래저래 수리했다는 설명도 듣고, 6개 중에 2개를 러시아산 진공관으로 갈아끼웠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던 순간 또 뭐가 맘에 안들었는지 앰프를 들고 작업실로 가신다. 대충해서 집으로 보내기는 싫으시단다. 또 다시 박수! 박수!
 

= 나의 진공관 앰프 (거친 외형이라 그다지 멋있지는 않지만, 밤에 불끄고 진공관의 붉고 푸른 불기둥과 함께 은은한 소리를 들으라치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

작업하시는 동안 친한 척을 했다. 이건 내 장끼다. 의도된 장끼가 아니라 내가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다. 결국 한사장님은 미국 Texas에서 주재원으로 살았던 시절을 읊었고, 근무했던 회사까지 알아내었는데... 내가 아주 잘 아는 회사였다. 98년에 그만두었다하니 아마도 IMF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사장님'은 수리도 하지만, 직접 진공관앰프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방 하나는 아예 작업실이고, 거실을 비롯해 온 집안이 거의 앰프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젠 은퇴하고 집에서 좋아하는 일로 소일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기질은 다분해 보인 것에 웬지 내 마음은 더 씁쓰레하다. 재능있고 하고싶은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과 마치 장인같은 중년의 엔지니어를 볼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 이유였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40대 중반 넘어서까지 엔지니어 하는 사람 드물다. 회사에서도 엔지니어로 놔두지 않을뿐더러, 상대적으로 외국에 비해 국내에서는 수지타산도 안맞기 때문이다. 과거지사를 말씀하시는 안경너머의 반짝이는 눈빛만은 거짓없는 솔직함이라 믿었기에, 낯익은 사농공상의 흔적이 새삼스레 씁쓸했음이다.

그나저나 이제 집구석에 은은한 선율이 흐를테니 나도 좀 인간다워지려나? 생각만으로도 실실 웃음이 나는게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뱀꼬리 : 사실 작년에 스타 알라디너인 아프***님을 만났을 때, 고장이 나긴 했으나 저 앰프를 아프***님께 드리기로 했었다. 글만 잘 쓰는 똑똑한 서생인줄 알았는데, 아프***님은 인디에서 드럼을 친다는 말에 내가 획~ 가버렸고, 기분 좋게 '당신가져라'라고 했는데... 술깨고 집에와서 가만 생각하니 저 고물덩어리를 어찌 선물로 주겠나싶어 미안했지만 약속을 저버리고 그냥 쌩깠다. 그리고 몇 달을 묵히다 지난주에 알음알음 한사장님을 찾아가 고쳤다.

미안하오. 아프***님. 근데 저거 고치는데 돈 좀 들었소. 안가져간게 잘 한거요. 제가 음악없이 살아 상태가 메롱인지라, 좀만 듣고 드리리다. 담에 술 집에서 사는 얘기와 함께 저놈의 인도시기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술은 당신이 사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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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1-23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거 저거 부럽군요. 저도 저런거 하나 나중에 갖고 싶어요. 멋지다아.

dalpan 2008-01-23 10:20   좋아요 0 | URL
일단 우리집에 함 와서 차 한잔 즐기면서, 성능을 확인해 봄이 어떠하오?
님은 어찌 잘 지내시오?

마늘빵 2008-01-23 13:21   좋아요 0 | URL
오오 좋아요! 저런 진공관 엠프에는 왠지 계속 반복되는 유럽 테크노를 틀어야할거 같아요.

dalpan 2008-01-24 01:26   좋아요 0 | URL
이것저것 들어보고는 있는데, 여러 악기가 섞여 연주되는 것이 이상하게 끌리는구만요.
Fourplay 같은 Jazz와 사물놀이 음반이 아주 괜찮습디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편안한 날에 날 잡아야겠구만요! ㅎㅎ

다락방 2008-01-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 이렇게 살짝 끼어들면 왕따당하는건가요, 저?

dalpan 2008-01-24 01:27   좋아요 0 | URL
하하..그럴리가.
아예 우리집에서 번개합시다.
소문대로, 아프님이 멋있긴해요. 하하하...

마늘빵 2008-01-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뱀꼬리를 이제 봤어요. 전에 봤을 땐 못 봤는데. 근데 저한테 준다고 하셨었나요? 제가 취했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 아 근데 이런걸 받아도 되는거에요?
 
대장정 - 전2권 세상을 뒤흔든 368일
왕쑤 지음, 송춘남 옮김, 선야오이 그림, 웨이웨 이 원작 / 보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뭐든 극적 요소가 너무 많아지면 효과는 반감되고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더할 경우 그 진실성마저도 의심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뒤흔들어 버린 장엄한 오디세이 같은 역사적 진실에, 내면의 상상력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실적 묘사로 장면 하나하나가 스틸컷과 같은 현장감을 보인다면 나는 그저 숨죽이고 부들거리며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934년 11월 장시 소비에트에서 8만 명이 출발해 1년 뒤 산시, 간쑤, 닝샤 혁명근거지인 우치 진에 도착할 때 7천명만이 살아남은 중국 홍군의 대장정을 그린 그림이야기 <대장정>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시각적으로 장대하게 담아냈다는 것을 넘어, 뛰어난 인물묘사와 장면묘사를 통해 마치 대장정을 옆에서 지켜본 듯한 생생함을 되살려 놓았다.

자칫 승자의 기록일 역사적 사실에 매몰되어 삶과 죽음이 엇갈린 장정의 주체들이 비춰지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흐트러짐 없는 구성으로 극적 요소들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그려낸 것은 눈에 뛴다. 소설 <태백산맥>을 읽을 때 수많은 인물들과 만나던 재미와 같다고나 할까.

책을 덮고도 장정의 수많은 극적인 장면에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홍군의 얼굴이 겹쳐진다면 이미 작가는 성공한 것이다. 마치 마오(毛)가 대장정은 하나의 선언이며, 선전력이고, 파종기라고 자랑스럽게 정의했던 의도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정 도중에도 홍군의 규율은 엄격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들판의 곡식을 베지 않았으며, 점령한 곳에서는 대가를 치루고서야 물건을 교환했고, 절대 헐벗고 가난한 자들에게 피해를 가하지 않았다. 이후 대륙이 공산화되는데 대장정은 결정적이었다. 내부의 자신감, 외부의 신뢰.

이 책도 역시 세밀하고도 과장되지 않은 엄격한 표현으로 긴 세월이 흐른 허구일 것만 같은 수많은 극적 장면의 역사를 우리 앞에 고스란히 살려준다. 그러하기에 인물간의 갈등관계, 공산당과 국민당의 치열했던 전투를 비롯해 대자연과 굶주림과 적들과 싸워야하는 눈물겨운 홍군의 고난과 그 속에서 보여지는 상호간의 인간애도 되레 자연스럽다고 느껴지게 한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을 읽을 때 거대한 중국에 대한 시대적, 지역적 간극에다 허약한 기초지식으로 부득이 많은 상상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수월하다. 그리고 왜 대장정으로 넓은 대륙이 사회주의의 길을 택하게 되었는지, 왜 중국을 이해하는데 대장정이라는 과정이 중요한지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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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1-22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가 이 책을 사서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더이다.
전 아직 보지 않았네요. 설핏 그림만 넘겨보고..
소설 태백산맥 속의 인물들을 만나는 것 같은 재미와도 비교되었네요.^^
간명하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dalpan 2008-01-22 12:30   좋아요 0 | URL
옆지기님처럼 저도 연신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적인 장면으로 인간의 역사에 감동먹었다고나 할까요.
리얼리즘에 대한 무한신뢰 같은.
틀 속의 '이즘'이기 전에 인간의 열정과 고난, 희열이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러다보니..제 리뷰가 더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대장정 - 전2권 세상을 뒤흔든 368일
왕쑤 지음, 송춘남 옮김, 선야오이 그림, 웨이웨 이 원작 / 보리 / 2006년 11월
절판


(마오쩌둥의 아내였던 허쯔전은 만삭이 되어 대장정에 참여했으며, 장정 도중 구이저우의 외딴 집에서 딸을 순산하지만, 전쟁중인 상황이라 아기를 버려야만 했다.)

들것은 산 아래로 내려갔다. 등비우와 허우정은 방에 들어갔다. 한참 울던 아기는 짚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허우정은 은전 서른 닢을 아기 곁에 놓고 아편 두 덩이는 사발 안에 넣어 두었다. 언제나 규율을 철저하게 지키는 등비우는 바닥이 더러운 것을 보자 빗자루를 들고 깨끗이 쓸어 놓았다. 그리고 침대에 종이를 펴 놓고 편지를 썼다.

집주인님께.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노농 홍군입니다. 절대 토호나 악덕 지주들이 하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지금은 싸워야 하는 때라서 아기를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어르신께서 아이를 길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적지만 은전 서른 닢과 아편 두 덩이를 받아 주십시오. - 홍군 휴양중대 등비우 드림 -

등비우는 편지가 없어질까 봐 무거운 물건으로 짓눌러 놓고 대열을 따라나섰다.-상권 331쪽

(1935년 5월 29일 새벽6시, 쓰촨 루딩 교)
마침내 부대는 6시 전에 루딩 교에 이르렀다. (중략) 다릿목에는 모래주머니로 쌓은 사격진지가 있고 그 사이로 거무스레한 총구멍이 보였다.
홍군 수만 명의 목숨이 달려 있는 그 유명한 쇠사슬 다리를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다리 위에 깔았던 널빤지는 모두 걷어 버리고 쇠사슬 열세 가닥만 사납게 흐르는 강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어제밤 비바람을 무릅쓰고 흙탕물에 뒹굴면서 목숨 걸고 달려왔는데, 그것이 이 차디찬 쇠사슬 몇 가닥을 위해서였던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쫙 끼쳤다. 양청우와 왕카이샹은 머리가 다 쭈뼛하여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하권 92쪽

산(자진산, 4260미터)이 높아질수록 바람은 더 차가웠다. 커다란 태양은 얼음으로 만들었는지 따뜻한 기운이 전혀 없었다. 찬바람이 불어오자 홍타오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계속 이를 딱딱 부딪쳤다. 차이창이 스웨터를 벗어 홍타오에게 입혀 주었다. 하지만 몸이 너무 허약했던 홍타오는 차이창과 두톄추이의 부축을 받으며 100미터쯤 올라가다가 다리맥이 풀려 다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차이창이 큰 소리로 말했다.
"홍타오, 안 돼요, 앉으면 안 돼요."
차이창이 홍타오를 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섰다가는 금방 다시 주저앉았다. 홍타오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차이 누님, 안 되겠어요. 제가 누님을 잘 돌봐 드리지 못했어요."
"홍타오, 저기 봐요. 산꼭대기에 다 왔어요."
홍타오는 어린애처럼 순진한 눈을 크게 뜨고 차이창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 엄마한테 편지를 써 주세요."
그러고는 두터운 눈 위에 쓰러졌다. 차이창은 홍타오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중략) 홍타오는 차이창의 자줏빛 스웨터를 입고 설산에 잠들었다.-하권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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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여유로운 금요일 저녁에는 오히려 마음이 바빠진다. 주중에 일에 치이다 보면 주말이 그립고, 막상 주말이 시작되면 아까운 시간이 간다는 생각에 더 그런 것 같다. 차에 달린 네비게이션에서도 오늘같은 금요일 아침이면 꼭 떠들어댄다. "와우! 오늘만 보내면 즐거운 주말이 기다리고 있네요!!!"

주중에 틈내서 보는 책도 나름대로 맛이 있지만 솔직히 "감질맛"이다. 출근생각에 넉넉히 보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인듯하다. 그러니 뿌듯함보다 오히려 감질맛이랄 수 밖에.

몸이 안좋다. 퇴근하자마자 약 퍼마시고(?)도 모자라 등짝에 두개씩이나 붙이고 읽다만 책을 들여다봤다. 무려 7만냥짜리 책이고, 그림만해도 거의 1천장에, 상하권 합해 페이지 수가 1천장이 넘는 그림책이다. 고이 모셔두고 때만 기다렸는데 오늘에서야 마침표 도장을 찍었다.

이번 주말엔 좀 할 일이 많다. 그래서 리뷰를 쓰고 싶은데... 도저히 허리가 아파 앉아있기가 힘들다. 그만하고 드러눕는게 좋을 것 같다. 나이 한살한살 먹으니 어르신들 늙어서 몸 아프다는게 이해되고, 날씨 차면 무릎 시리다는게 이해된다. 에잇...된장할..


나는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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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1-1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저 분...
dalpan님이신거죠? 그쵸?

후훗 :)

dalpan 2008-01-21 20:30   좋아요 0 | URL
빙고! 다락님도 왠만하면 이제 썬그라스 벗으시지요? =3=3=3=3

프레이야 2008-01-22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엥? 벌써 무릎에 찬바람 들고 그러신건 아니죠? ㅎㅎ
달판 님, 새해 인사 늦었죠? 행복하소서~

dalpan 2008-01-22 12:15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복 많이!
어제부터 눈이 계속 옵니다. 그러니...
허리가 쑤시고, 무릎에 찬바람이 드는게 사실인가 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