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면 바다로 갈까요? 산으로 갈까요?
저는 산이 좋습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탓도 있지만, 땀범벅이 된 체로 산냄새 맡으며 힘겹게 오르면 상쾌함은 오히려 더해갑니다. 잔뜩 힘에 겨워 풀숲에 주저앉으면 산을 타고 오르는 바람과 깊은 숲의 서늘함은 한더위를 단박에 날려버리고 지친 다리를 그 자리에 붙들고 맙니다. 그 좋던 산을 잠시 잊고 살다 불현듯 머리에 쑁하니 쓰쳐지나는 생각에 지난주 산에 다녀왔습니다. 가야지..하고 마음만 두고 있던 북한산이었습니다.
예전에 올랐던 사진들을 보면 저도 기가 찹니다. 신발은 대부분이 구두를 신고, 그 흔한 등산용품
하나 없이 쇠물컵 하나 달랑달랑 메고 올랐으니까요. 이제 사람들의 이목을 무서워하는 나이인지 바짝 사치스런 겉멋이 들어서인지 산에서 호기부리는 것만큼 바보같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질러댔습니다. 고어텍스 바람막이 옷도 사고, 신축성 좋은 반바지도 하나 장만하고, 가벼운 곳 다닐만한 적당한 크기의 배낭도 하나 질렀습니다. 다음달 카드값이 심히 걱정이 되나... 살면서 이런 맛도 있어야지 하고 위안합니다.
내게 산은 무엇이었을까요? 왜 지치면 산이 생각이 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산으로 도망도 가봤고(혼자 지리산에 오른답시고 대원사 위의 민박집에서 사발면 하나 끓여먹다, 가만 쳐다보시던 할머니가 제게 그랬습니다. 부모 속 썩히지말고 빨리 집에 가라!), 깊은 곳에서 상념에도 묻혀보았고, 높은 능선에서 침낭 속에 몸을 숨겨두고 커피 한 잔에 은하수 별을 헤며 친구와 나누었던 수많은 가슴 속 이야기도 산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힘겨운 시간이면 항상 떠오르는 곳이 산이었습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 한계령>
너무 심각하게 살아온 탓일까요? 산을 즐기지 못하고 줄기차게 빨리 올라야하는 생각에 앞만 보고 걸었던 탓일까요? 그런 의미에서 산은 제게 또 다른 카타르시스인가 봅니다. 땀을 흘리고 생각을 잊고, 봉우리를 찍고 능선을 타고 계곡을 가로질러 사람사는 땅으로 내려올라치면 내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니까요.
요즘엔 집 앞 탄천에서 뜀박질을 할 때도, 오늘은 얼마만큼 뛰어야지라던 구속된 생각들을 잊으려 합니다. 그냥 뛰고, 힘들면 걷고 다시 뛰고싶으면 뛰어버립니다. 즐거워야하는데 행복해야하는데 자유로워야하는데. 이제는 산에서도 즐기려합니다. 예전에 지리산 능선길에서 손잡고 걷는 중년의 부부를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처럼 여유있게 걷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산에 갑니다.
[북한산 등반한 동호회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