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Secret Sunshine)'을 보았습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한 자들을 보면서 한줄기 눈물이 주루루 흘렀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보다 먼저 용서할 수가 있어요? 그게 말이 되나요?"

겉으로 온전하나, 홀로 남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은 "살려주세요..."라는 여리고 낮은 외마디 절규로 쓰러집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삶.
견뎌야 하는 生.
그래서 아픕니다.

  

누구나 다, 그리고 나도 저 벌레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 절로 눈이 붉어집니다.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 끝내 용서하지 못한 어쩌면 용서할 수 없기에 더 인간적인 영화였습니다.
차창 밖 여름구름이 뜬 더운 하늘. 밀양은 뜨거웠고, 저는 잠이 드는게 힘들었습니다.

 

    

그의 영화는 사람을 많이 힘들게 합니다. 절대 시커먼 극장 안에서 마음편한 영화들이 아닙니다.
우연찮게 뒤져보니 그가 조감독 시절에 만든 영화 "그 섬에 가고싶다", 시나리오를 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부터 제가 좋아하는 영화 "초록물고기", 그 뒤 "박하사탕", "오아시스" 그리고 "밀양"까지 다 본 것에 저도 놀랐습니다. 그가 감독을 한 영화는 정말이지 하나같이 힘들게 하는 영화입니다. 차라리 "녹천에는 똥이 많다" 같은 소설이나 쓸 것이지, 사람을 너무 힘들게 후벼 팝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인간적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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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5-27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밀양]은 마치 물결같군요. 여기저기서 다들 조용히, 그리고 솔직하게 이 영화에 대한 감상들을 말씀하십니다. 잘 읽고 갑니다. 글만 읽어도 마음이 가라앉아버려요.

dalpan 2007-05-2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뻬빠쓰고 출장간 지방에서 오늘 뉴스로 잠시 보았습니다. 전도연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더구만요. 그럴만합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짜증부리는 콧소리가 별로 좋지는 않지만, 제가봤던 "접속"에서도 "해피엔드"에서도 연기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밀양"에서도 한스런 연기를 자연스럽게 아주 잘 했어요. 안보셨으면 혼자 보세요. 더 집중되고 감정에 충실해지실겁니다.

jhwa 2007-05-3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양'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dalpan님의 평을 읽고나니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아프고 불편해 질 것 같습니다. 저두 나이가 들어나 봅니다. 호미에서의 박완서님이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는 말처럼 따뜻하고 예쁜 것들을 꿈꾸게 됩니다. 내 현실만으로도 너무나 치열하고 아픈데... 아, 그러나저러나 dalpan님 연애하시나요? 최신 영화를 보시면 보면... 음.. 냄새나 나네...

dalpan 2007-05-3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줌마! 기억납니까? 종로에서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던. 그런 느낌입니다. 그러니 별 염려없이 보세요. 깨지고 부서지고 치이면서 사는게 인생이고 또 그걸 힘겨워말고 즐기셔야지요. 아줌마..화이~팅~. 그러나저러나 예전보다는 쪼까 힘겹지만 혼자 영화보니 좋습디다. 허허허..

프레이야 2007-06-0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컷이 가장 마음에 와 닿던데요. 저게 포스터로 쓰였군요.
가슴 아프게 본 영화에요. 초록물고기를 다시 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dalpan 2007-06-0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밀양...참 아픈 영화지요? 주저앉아 울고있는 포스터보다 저 포스터가 훨씬 아파보이더군요. 그나저나 '오래된 정원' 보시고 평을 쓰신 이후에 보고싶었던 영화를 이제서야 한편 봤습니다. 하하하...
 

봄입니다.
매번 이 계절이면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정도로 힘이나는 계절입니다. 밖에 어느새 피어버린 꽃들처럼 겨우내 숨겨두었던 비밀스런 마법을 펼칠 시간.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다만 항상 그렇듯 봄날은 너무 짧습니다. 연녹색 잎을 피우고, 진초록으로 뽐을 내다, 스스로 제 살을 떨어뜨리고 시린 세월을 견디는 삶. 우리네 인생도 그럴까요? 이제 시간이 없다고 하면 제가 너무 조급한 것인가요? 인생의 봄날. 언제까지입니까?

민예총 수업은 들을만 한가요?

매번 나에게 일 벌인다고 그러더만, 이번엔 아줌마가 선수쳤구만요. 인사동은 한국근대에 사대부들과 고관대작들이 살던 가회동 같은 북촌과 청계천 넘어 일본인들의 거주지하고 하야시패가 주름잡던 혼마치, 지금의 명동의 중간지역으로 조선의 물건을 내놓고 흥정하던 지리적 교차점이라 합니다. 이제는 정태춘 노래처럼 때 빼고 광 내면 다 돈되는 물건들이 널린 거리가 되었지만, 그 면면을 내다보면 한국의 근대가 숨은 곳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서 그 재미없는 서양고전을 훑으신다니... 제가 커리큘럼을 뒤져봤더니 정말 재미없어 보이더이다. 하하..

며칠 전 필름을 정리하다 선조의 몽진길을 따라 올랐던 아카데미 답사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사진만 잔뜩 찍었지 정리는 하나도 안해두어 마음 한켠의 짐이었는데, 아직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요. 사진들을 보면서 문득 아줌마와 만난지 벌써 10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충동 아카데미를 처음 찾았던 날을 아직 기억합니다. 건물이 어둡고 우중충했던 아카데미.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니 믿어집니까? 은행잎 날리는 가을 우체국 앞은 아닙니다만 안암동 학교 앞에서 당신을 기다릴 때의 그 느낌은 그 노래말처럼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봉사활동 다니신다는 이유로 나를 바람맞힌 그 날. 나빴습니다. 여하튼 우리인생에 아카데미는 봄날 꽃 같던 시절에, 즐거운 놀이터에 제대로 찾아간 듯한 유쾌한 경험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신과 MH와 보냈던 시간이 존재했던 그 시절이 얼마 살지않은 이 인생에서 참 즐거웠던, 참 행복했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MH의 탈선(?)에 인사동에 모여 대책회의하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운 추억이요, 둘이서 나를 놀려대던 그 환상적인 언어의 유희도 내겐 즐거움이었습니다. 언제 셋이 다시 만나 같이 술 한 잔 기울일까요. 그리운 시절입니다.

'지적허영' - 이 말에 담긴 쁘띠적이고 소시민적, 소비적 이미지를 오히려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더 편합니다. 그렇지 않소?

이건 우리의 영원한 모토이니, 어쩌지는 못할 일이지만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좋은 재능 썩히지 말고 글을 쓰세요. 어찌 알겠습니까? 나중에 형님이 책이라도 내줄지. 내 대학시절에 생각했던 주부들이 내는 책의 모범은 사실 "빵점엄마, 백점일기"였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알바한다고 함께 찾았던 홍대앞의 'Book' 카페의 주인장이 쓴 책 아닙니까. 사실 책을 내든 안내든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일까마는, 당신의 글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게 쓰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오래 전부터 해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이번에 개인적인 일을 경험하면서, 정서라는 것에 큰 무게를 두게 됩니다. 이성과 지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그 무게는 믿고 싶지않고 인정하고 싶지않아도 끌리게 되는 마력같은 힘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정서는 개인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저변에 깔린 힘이자,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근원입니다. 또한 이제는 그것을 거스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리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정서라는 것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제가 고마운 것은, 같이 뭘해도 즐거울 수 있었던 '10년지기 친구'가 되어버린 것. 다 당신과 MH 덕분이라는 생각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오늘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MH 불러 올려서라도 날잡고 술한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봄인데, 아.. 뭘 터트리긴 해야 할 봄인데, 아직은 움츠린 개구리마냥 삽니다. 그래도 봄이라 즐겁고 한번씩 당신이 웃겨줘서 즐겁습니다.

요즘에 불현듯 아주 어릴 적 꿈을 꾸었던 내가 살 집. 정확히 얘기하면 한옥을 공부해 볼까합니다. 마당 넓은 곳에 풀들 키울 수 있는 정원에 바람 잘 통하는 한옥이면 됩니다. 아주 늙은이 같은 애였다보니, 어릴 때 집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이런 것 그리고 있었다오...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하여간 남들보고 지으라고만 할 수 없으니, 공부를 해볼까 합니다. 책도 몇 권 구입했습니다. 담배도 줄이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은단 몇개 입에 넣고 자판 두들기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그리 심한 금단은 아닙니다. 그냥 술마실 때는 몇 대 피지 뭐...하는 편한 생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잘 살지요?

더불어 나의 친구들도 잘 살기를 바랍니다. 글도 쓰시길 바라고.
가끔씩 심심해지는 저를 불러 술 한잔 사겠다는 10년지기 친구를 그리워하며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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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wa 2007-05-0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내게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건 어찌 아셨누... 갑자기 관음증 환자가 되어버린 화끈함이... 그리고 자꾸 글쓰라고 그러시는데... 전 아저씨처럼 말랑말랑한 글을 못써서 안돼요... 미사여구를 많이 써야 분량을 늘여서 책을 만드는데 그게 안되잖아요. 근데 궁금하게 하나 있는데 '연녹색 잎을 피우고, 진초록으로 뽐을 내다, 스스로 제 살을 떨어뜨리고 시린 세월을 견디는 삶.' 이런 구절은 어디서 빼겨오는거예요? ㅎㅎㅎ

dalpan 2007-05-0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건 어찌 아셨누..." - 내가 모르는게 있나!
"아저씨처럼 말랑말랑한 글을 못써서" - 왕까칠인 제가 말랑말랑해 보이시오?
"미사여구를 많이 써야 분량을 늘여서 책을 만드는데" - 요즘 글자 큰책 많습디다.
"이런 구절은 어디서 빼겨오는거예요?" - 피나는 면벽수련이면 다 되오. MH한테 물어보시구려. 흐흐흐

글 쓰세요~
아띠...나 며칠째 별보고 들어갑니다. 인제 집에 가야쓰것소. 눈깔이 빠질라그래...
 

그의 큰 머리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키는 작고 머리는 거의 산발이었는데 그 산발로 그의 머리는 정말로 커 보였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나 산발은 꾸미지 않은 자유로움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그도 그랬고, 김지하도 그랬고, 장선우도 그랬고, 백기완 선생에 이르면 단연 산발의 최고봉이었다. 그러나, 그의 외모는 그저 그의 노래에 묻혀 별로 중요한 얘깃거리가 못 된다.

  

그는 갔으나 그의 노래는 남았으니, 나는 아직도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처음으로 그의 노래를 불러댄건 고등학교시절 문예부 선배들과 우리들의 아지트 '토끼분식' 가게 문걸어 잠그고 기타치며 흥겹게 합창했던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였지만, 이제 그의 노래는 생활속에 아주 깊숙히 박혀버렸다. 거리에서 '거리에서'를 부르고 다니고, 흘러간 옛사람을 생각하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르고, 군대가는 친구들에게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고, 달빛 좋은 밤이면 '혼자남은 방'을 부르고, 심히 괴로울 때는 '일어나'를 불러댄다. 그가 세상에 없었다면 아마 나는 더 음침한 김민기의 노래들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나의 노래는 나의 힘'이라던 그의 말처럼, 덕분에 세상사는 걸 좀 더 밝게 만들어준 그에게 늘 감사하며 노래를 한다. 너무 불러 지겨워졌다가도 다시 힘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들. 그게 그의 노래다. 불현듯 점심시간에 떠오른, 32살 꽃 같은 나이에 져버린 그를 그리워 한다.




부치지 못한 편지 : 김광석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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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4-25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맥주한잔에 노가리를 뜯으며 김광석에 대해 얘기하던 분이 있었어요. 그분은 저보다 딱 다섯살 많았습니다. 님의 오늘 글을 읽으니, 저보다 딱 다섯살 많으실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훗.

평안한 밤 보내세요!!

dalpan 2007-04-2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3이니...다락님은 낭랑 18세?

다락방 2007-04-27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쿡쿡.


(제가 지금 님께 제 나이를 알려드린거예요. 알라딘 서재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제 나이를. 풋-)
 

대학다니던 시절에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았던 조카놈이 이제는 어엿하게 커서, 머리 빡악빡 밀고 군대에 들어갔다. 이제 니 한몸이 너만의 몸뚱이가 아니라 부모님의 것이고 가족모두의 것이며, 가장 소중히 지켜야 할 사람도 바로 너라는 노파심 가득한 말로 통화를 할 때,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그놈 때문에, 아~ 다 컷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눈물이 울컥했다. 세상에 기어다니던 놈이 어느새 커서 맞담배질을 하더니 이젠 되레 나를 위로하다니! 그 놈이 군대에 갔다.

     

그 날 저녁, 집 창가에 두었던 '장수매'는 발그스레한 꽃을 활짝 틔웠다. 세 송이가 핀 줄 알았더니 하나가 뒷편에 살짝 숨어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봉오리가 더 벌어졌다. 이놈들...이놈들... 무심히 물주고 바람 쐬어주었을 뿐인데 세상은 나름대로 다 제 역할을 하고 산다.


  

야생초에 살짝 발을 들여논 요즘에는 가지나고 잎사귀나는 하나하나가 다 새롭다. 애기남천을 키우다 다 죽여놓고, 대가 조금 굵은 놈으로 바꿔 전부 개보수했다. 결국 환경과 조건이 되지않으면 원하는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다 내 욕심일뿐...
물을 줄 때 이끼냄새가 참 좋다. 왼쪽 것은 애기남천이고, 오른쪽 웃자란 것은 옻나무이다.


  

개량된 애기남천 말고 내 키보다 더 큰 (어른)남천을 들여놓았다. 좁은 차로 장거리 이동에 몸살을 했는지 한동안 잎을 떨군다. 어제 발육이 떨어졌던 마른가지들과 웃자란 것들을 정리해주었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람과 다 똑같아, 추우면 잎 끝을 붉게 변색시켜버리고 물 마르면 잎의 촉감도 뻣뻣히 평소와 다르게 만들어버린다. 이리저리 쑥쑥 가지 뻗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니 버릴 건 버려야 튼실하게 크는 것은 사람이나 나무나 다 똑같다.

간질거리는 햇살에 하늘거리는 연초록 나무그늘에 누으면, 눈을 감아도 하늘이 보인다.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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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4-24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갔네요, 조카. dalpan님 쓸쓸하시겠어요. 그래서 저렇게 조카 키만한 남천을 들여놓으신건가요. 죽이고 아파하지 마시고, 이번엔 잘 키우세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

아, 근데 정말 눈을 감아도 하늘이 보여요? 풋.

레와 2007-04-24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간질거리는 햇살에 하늘거리는 연초록 나무그늘에 누으면, 눈을 감아도 하늘이 보인다. 봄이니까.]

아.. 정말 근사한 표현입니다.^^
눈을 감아도 하늘이 보인다니.. 아항....-

dalpan 2007-04-2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갈 때가 되면 가야지요. 그냥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것이 더 맘에 걸리는구만요. 이번엔 말씀대로 애지중지 잘 키워봅지요... 저는 천년묵은 능구랭이 뱀파이어라 눈감고도 천리를 봅니다. 으흐흐흐..

레와님) 한번씩 입에서 나오는대로 썼다가 저도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딱 그 꼴입니다. ㅎㅎㅎ 레와님 서재에 가보니 멋진 사진들이 가득하더군요. 자주자주 들릅지요. 감사해요.

2007-04-25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dalpan 2007-04-2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님) 맞습니다. 그 꼬마가 군대갔습니다. 근데 여길 어찌알고 찾아왔소? 내가 알려줬나? ㅎㅎ 창립제때 만나서 얘기한거처럼 늙으니 이제 까막까막해서... 흐흐흐
 

지난 주말에 니 고향 진안에 내려가 관기씨를 만나고 왔다. 아마 너나 나나 일터지고 제일 멀리 다녀온게 아닌가 싶다. 오지랖 넓은 니 탓에 관기씨도 내 일을 다 알고 있더구나. 니가 중국에서 나올 때마다 내 걱정을 했다고 하니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마음이 많이 무겁구나. 나는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 마음이 더하다.

많이 울었다.

새벽에 썰렁한 인천공항에서 너를 기다릴 때 전광판으로 북경에서 들어온 비행기의 도착 사인이 나오고 사람들이 나오는 틈에서 나는 정말로 반가운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가 형의 품에 조그마한 상자에 안겨서 들어올 때 조차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형의 침통한 표정에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힘겹게 니 아들 선호를 안고, 텅빈 눈빛으로 걸어 들어오는 제수씨를 보고서도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친구는 어디있나...



친구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아...이게 현실이구나라고 다들 말을 잃었을 것이다. 병원 영안실에 도착해 망자의 이름을 보고 영정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현실이 비현실임을, 설사 현실이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 니 이름을 보고 니 사진을 보고서야 눈물이 나더라. 니도 봐서 알겠지만 니 앞에 엎드려 운 놈들 많았다. 찬홍이가 특히 많이 울었다.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니가 흔적을 그리도 많이 남겼을까 싶다. 관기씨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뜸금없이 니가 보고싶다고 했다더구나. 니가 사온 작퉁지갑은 그날 아침에 고리가 떨어져버렸다고 우리 누나가 그러더라. 내가 니 소식을 받는 날 아침... 사무실에서 내가 얼마나 허둥대고 있었는지 니는 알지 않느냐? 오늘은 조심해야지..조심해야지... 그게 니 소식일 줄이야. 청천벽력 같은 니 소식일 줄이야.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내 옆에 그렇게 붙어있었더냐.

몇년 전 같이 지리산 올랐던 기억나나? 연하천 산장 앞 길바닥에서 침랑 하나 깔아두고 은하수 보며 비박할 때 따뜻하게 마시던 그 커피가, 시덥잖은 얘기에 희희덕거리던 너의 얼굴이, 장터목에 끼었던 비구름과 '사는게 죄지요'라는 철 다리의 낙서에 마주보고 웃던. 빈 속의 커피만큼 아린다. 제대하고 공부 좀 해보겠다고 도서관에 있는 너를 불러들인 내가 죄인이다. 현대 입사원서 갖다주고 대신 써 준 내가 죄인이다. 내 기숙사에 너를 집어넣은 내가 죄인이다. 지난날 북경에 갔을 때 너를 흠씬 두들겨 패지 못한 내가 죄인이다.

사람의 간사함에 놀란다.

너를 보내고, 그 춥던 밤에 쓸쓸히 죽어 누워있는 니가 몹시나 춥겠다는 난생 처음으로 느낀 말도 안되는 생각에 담배만 피워댔다. 이 녀석 갔구나... 몇 주가 지나 집에 오르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바깥 풍경을 보며 불현듯 너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울어댄게 불과 몇 주라고 나는 이리도 태평스레 살고있는가 싶어 화들짝 놀랐다. 너 역시 바라지 않겠지만, 보낸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만 이해해주라.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빨리 달려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이산 쌍봉우리를 보니 감회가 새롭더구나. 앞이 탁 트인 너의 보금자리는 기순씨가 두고 갔다는 시든 꽃다발 탓에 더 추워보였다. 그래... 이렇게 너와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어야 되는데. 우리가 뭐 별거있나. 이거면 될 것을.

관기씨와 너를 찾아가면서 얘기 많이 했다. 관기씨도 새롭게 일하려하니 힘이든가 보더라. 기순씨도 그렇다니 가까이 있는 니가 자주 봐 주면 좋겠다. 나야 항상 잘 살지 않느냐. 걱정마라. 그리고 니가 가진 것은 다 놓아주어라. 북경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니 가족 사진도 다 버렸다. 다 놓고 멀리 가라.

따뜻한 봄 바람이 불면 친구들 데리고 다시 가마. 추워도 조금만 참아라. 이제 곧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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