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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들어왔다.

서초동 자취방 시절, 잠이 덜 깬 눈으로 방안을 휘~ 돌아보고 새삼스레 놀란 일이 있었다. 어찌 집구석에 살아있는 것이 나밖에 없단 말이냐! 기껏 살아있는 척 하는 것들은 전부 전기 먹고 "동작"하는 것 밖에 없고, 진짜로 산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날로 양재동 꽃시장에서 "새끼야자"를 하나 사와 잠시 길렀건만, 이내 수명을 다했다. 이놈도 그런 환경에서는 살기 싫었을 것이라 위로를 한다. 바깥공기 그것도 서울 도심의 누런 공기 쐬어주는 것도 1주일에 기껏해야 한번이 될까말까 인색했고, 갈증에 타 들어가는 뿌리에겐 생각나면 물 한번 뿌려주고, 담배가 폐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우리 판사님들의 판결이 며칠 전에도 있긴했지만 담배피는 내가 생각해도 이놈은 아마 거기에 질식해 버린 듯 했다. 녹색의 기억은 아주 짧았다. 아줌마가 분명히 잘 안죽는 놈이라 했건만...

요즘같은 겨울이면 제일로 그리운 일이, 우거진 수풀 사이에 돋자리 펴고 지그시 눈 감고 누워 푸르른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와 하늘거리는 햇볕에 취하는 것이다.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에게 비켜달라던 굵은 햇볕도 아니고, 그저 생명력이 느껴지는 녹색햇볕.

지금 집에는 나 외에 6개의 녹색생명들이 있긴 하지만, 이사올 때 장만한 한 놈은 벌써 시들해져서 응급처방에 들어가 있는 중이다. 다행인 것은 말 많고 탈 많았던 작년에 거의 내팽겨치다시피 했던 제일 큰 놈이 물 주고, 환한 공기 주고, 관심주니 다시 살아나는 듯 하다.

그리고 선물이 들어왔다.

분재라 하기도 그렇고, 꽃화분이라 하기도 어려운 놈인데 파시는 분께서 친절하게도 "무늬꽃단지"라고 명명해 주셨다. 바위돌에 사가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고른 작은 녹색생명들을 이리저리 붙여  맞춤형으로 파는 꽃단지인데, 여기에는 제일비싼 애기남천을 비롯해 진주목, 장미쎄럼, 미니천상초와 가지가지 이끼들이 들어앉아있다.

신기하게도 물을 뿌리면 이 친구들은 즉각반응을 한다! 옅고 축축한 이끼냄새와 어린시절 흙장난할때나 맡았던 진한 흙냄새를 왜 이제야 관심주냐는 듯 열정적으로 뿌려댄다. 아...기특한 것들!

애기남천의 자태는 거의 환상적이다. 남천의 원산지는 중국이라고 하나,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작은 형태로 개량이 되어, 오가며 가지들을 손으로 훑으면 어르신들의 '풍' 예방에 좋다하여 일본에서는 아주 인기좋은 식물이라 한다. 잘 키우면 저 조그만 놈이 10만냥을 넘긴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로다.

    

한가지 결정적인 치명타가 "아침저녁으로 물을 듬뚝 주라"는 주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도 제대로 먹지않고 출근하는 나에게 아침저녁으로 물을 듬뚝 주라니...덕분에 아침은 물론, 술 먹고 날짜 넘기고 들어온 날도 분무기 들고 열심히 뿌려대고 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아직도 그렇게 믿듯 사랑은 주는 것이며, 그저 받은 사랑에 나 잘 살고있다는 대꾸만으로도 감사함이 표현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대꾸도 없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인간세상과 달리 저들은 너무나도 간단하고도 솔직하게 그 대꾸를 해주는 터에 아직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변해가는 저들의 느린 호흡은 조급한 세상에 살고있는 나에게 진한 흙냄새보다 더 귀한 것들을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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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2-1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운데 사진에서 오른쪽 편에 있는거 말예요. 그거 엄청 예쁜데요 :)

dalpan 2007-02-1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그러세요? 그게 애기남천이라는 나무랍니다. 게 중에 제일 비싼 놈이긴한데, 좀 키워보니 다른 것들은 눈에 띄게 잘 크는데, 애기남천은 잘 크지않네요. 가지에 새 순만 살짝살짝 돋곤 합니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기도 합니다. 잘 키워서 담에 또 보여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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