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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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 제대로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에게, 사랑이니 이별이니 하는 흔한 연애소설이나 시집은 그리 손에 잘 잡히는 종류의 것들은 아니다. 흔하디 흔한 사랑타령이려니 치부해 버리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대한 이질감이거나 그것에 대한 반감의 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런 것들이 내 책읽기의 오랜 습성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게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기도 했었다. 원태연이었던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봐.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라는 느끼한 제목의 연애시집을 구구절절 가슴으로 느끼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첫사랑의 기억이 내게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첫사랑은 누구였던가 물어오면, 그 이름을 거론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내게도 학창시절의 짝사랑 쯤은 있었던 것인데, 그때의 그 마음을 녹여주기에 원태연이 그 시집은 참으로 탁월했다.

그런 경험은 그 이후로 내게 찾아오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그 애틋한 이름으로 명하기에는 가슴 들끓어오른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거기에 연애시집도, 사랑타령의 이야기들도 찾아오지 못했음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랑을 말하지 않는 시가 어디있겠으며, 사랑을 담지 않고서 어떻게 감동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의 다름아니리라. 그러나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들어 느끼는 것은 가을을 부쩍 탄다는 것이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삶에 이리저리 치이며 사는 나에게, 가을을 어느 누구에게 보다도 씁쓸한 계절이었는가 보다. 그런 가운데 나는 정이현을 만났다. 정이현의 소설집『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올가을의 시작에 즈음하여 읽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 이 책『달콤한 나의 도시』를 그 가을의 끝자락에서 읽어내었으니, 올 가을은 정이현의 '사랑타령'에 푹 빠져 지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이현의 '사랑타령'은 남다르다. 그것은 낭만적이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때론 무섭게 치를 떨게도 했고, 잔인해 보이기도 했으며, 사랑이라 이름하기엔 너무 이성적이고 현실적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단편「순수」에서처럼 "세 번 결혼하고 그때마다 남편을 잃은 여자"가 "세번째 남편의 죽음 때문에 경찰의 조서를 받"고 있는 이야기는 그 제목을 의심하게끔하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정이현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이런 아이러니가 보여진다. 짓궂게도 그녀의 이야기는 그 제목과는 단순하게 볼 때 정반대의 내용처럼 읽혀지기 때문이다. 이런 아니러니적 명명의 방법은 그 의미를 역설적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런 역설들을 진지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그녀의 첫번째 소설집이다.『달콤한 나의 도시』에는 그 정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여전히 정이현 특유의 그와같은 어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점이 정이현 소설읽기를 이 가을의 시작과 끝에서 함께 할 수 있게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무엇이 달콤한가? 그녀들의 도시가 과연 달콤한 것이었는가?하는 의문부호는 이 소설 읽기의 뒷자락에서는 확실히 새겨진다. 오은수라는 30대의 여자, 그리고 그녀의 동갑내기 친구들이 보여주는 그녀들의 도시, 그녀들의 사랑은 '달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연하와의 돌발적 사랑도, 영수와의 현실적 연애도, 그녀에게 사랑의 '달콤'함을 주지는 못한다.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적 제목짓기에서 오는 역설의 어법이 자리한다. 정이현은 왜 이 소설에 '달콤'함이란 수사를 동원하는가?

"……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다. 두 손을 공중으로 내밀어본다. 손바닥에 고인 투명한 빗물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맛이다."(강조는 필자)

'무장적 올라타지 않'는 것,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맛. 어쩌면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첫사랑은 낭만과 달콤함으로 기억되지만, 그렇게 기억되기까지는 '실패'와 '이별'이 전제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거기에 정이현의 아니러니적 어법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본다. 연하의 남자와의 돌발적 사랑도, 영수와의 결혼을 위한 연애도, 모두 떠나보내고 난 후에는 지나간 옛추억, 낭만 혹은 달콤함으로 남게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무작정 올라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아무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달콤하지 않은 도시에서 할 수밖에 없는 것, 바로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오은수가 앞으로도 '무작정 올라타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아무맛도 없는 그녀의 도시에서 머지않아 곧 '달콤'함을 찾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결코 '달콤'하지 않은 그녀들의 사랑얘기는 내게 사랑에 대한 회의나 현실에 대한 직시를 갖게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또한 정이현의 의도일 것이다. 오은수를 비롯한 세여자의 '뒷담화'를 엿듣는 한 느낌으로 시종일관 흥미로움에 읽혀진 이 소설이 어느덧 내게 "너도 한 번 '달콤'함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악마의 유혹처럼 다가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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