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몇 달 전에 내가 생활하는 학교에서 어떤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몇몇 쟁쟁한 인사들을 초청해 특별강연을 한다는 포스터였는데, 지금 보니 바로 이 책에 실린 그 강연에 대한 홍보포스터였던 것이다. <<한겨레21>>에서 이벤트성으로 연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이란 주제의 이 강연 포스터에 유독 나의 눈길을 끌게 한 것은 평소 좋아하던 박노자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시대의, 아니 세기의 사기꾼으로 지칭될 황우석 사태가 터진 이후여서인지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이런 강연을 마련한 듯 보였다.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는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이 참으로 허탈감을 느꼈으리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 그 이상일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느 방송프로그램에서 황우석 교수에게 큰 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희귀병으로 온갖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한 아이를 본 적이 있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의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지만, 나같이 별 기대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도 '허탈'이란 마음은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어떤 면에서 좀 약한 것이 아닌가 할 때가 있다. 많은 거짓말을 우리는 '거짓말'이라고 칭하지만 그런 거짓말에도 고저가 있고 장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로 죄 짓는 것을 사기라고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이들의 '거짓말', 한 노래가사의 어머니처럼 애써 자장면이 싫다고 하는 그런 거짓말도 있다. 그럼 거짓말은 때론 유익한 것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들이 사실 울며 겨자 먹기일 뿐이지 그것을 유익의 차원까지 끄어올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세상에 거짓말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거짓말이 없었다면 이 세상이 존재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다. 어딜 가나 거짓 아닌 것이 없다고 할 때, 그런 세상에서 속고만 산다는 것은 비참한 노릇이다. 때론 속아주기도 하고, 때론 속아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속아주는 것이야 무에 그리 힘들 일이겠는가? 문제는 속지 않는 일이다. 그럼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을까?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7차례의 인터뷰 강연이 진행되었다. 기획의도는 사실 황우석 사태라는 시류를 탄 것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거짓말에 대한 성찰은 언젠가는 필요한 것이기에, 편집장 고경태가 이 책의 머리말에 쓴 것처럼 "거짓말로 가득 찬 세상. 이 책은 항(抗)거짓말 치료제가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공부해서 속지 말고" 살아야 하겠다. 속지 않으려면 일단은 무엇이 거짓인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고, "알면 다친다."는 소리도 있지만, 여기서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관용어가 가장 어울리고 적합하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과학사회학자 김동광, 역사학자 한홍구와 박노자, 법학자 김두식, 새터민 김형덕, 여성학자 정희진, 그리고 저 멀리 인도에서 온 평화운동가 프라풀 비드와이까지 모두 8명이 우리 사회의 거짓말 7부분에 대해 흥미진진한 강연을 펼쳤다. 사실 그 강연을 직접 가보고 싶었지만, 당시에 이래저래 바쁘고 서울까지 올라가기가 벅차 단념해 두었다가 이 책을 만나서 한편 기쁘기도 하고, 한편 후회도 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그 강연 현장에서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이 된다.

  흔히들 세상에 거짓이 가득차 있다고 말하는데, 정작 뭐가 거짓이냐고 물어보면 쉬 대답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실 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거 속는 것 같은데, 뭐가 거짓말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러니 뭐가 거짓말인지 알려주어야 할 것이기에, 그 많은 거짓들을 시시콜콜 다 얘기할 수는 없겠고, 그 중에서도 이 사회에 만연한 덩치 큰 거짓말들 7가지 택한 것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는 얘기가 있잖은가? 우리 민중들은 그런 사람들일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 7가지 항거짓말 치료제를 맞으면 그깟 자잘한 거짓말이야 한방에 충분히 날려버릴 것이다.

  첫 번째 강연자는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다. TV에 나와서는 차분하고 다소곳하게 말씀을 잘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만난 정혜신은 조금은 당차보이기도 하다. 주제는 '사람에 대한 거짓말'이다. 사실 이 주제는 너무 크다고 생각이 된다. 사람에 대한 거짓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사실 세상의 모든 거짓말들은 어쩌면 이 사람의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혜신은 당차게 이야기 한다. 자신이 하는 말 중에 참말이라고 확실할 수 있는 이 말, 바로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라고 선포한다. 그렇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거짓말이 발생한다. 그러니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참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그들을 대해야한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또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우리 사회에서 거짓말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혜신의 이야기는 이런 순진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희망을 갖게 한다.

  두 번째 강연자는 과학사회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을 하는 김동광 씨다. 얼마 전 최재천 교수의 '통섭'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도 좀 다른 듯 보인다. 과학사회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는 이 강연 첫머리에 잘 이야기가 되고 있으니 넘어가자. 여기서는 과학에 어떤 거짓말들이 있는지 이야기 한다. 사실 현대/근대 국가의 성립의 기초는 몸통은 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권련은 이런 과학에 기반에서 성립된 것이리라. 그러기에 거기에는 많은 거짓들이 존재한다. 과학이라는 학문에 겉으로는 거짓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객관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 실상 안에는 온갖 거짓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기술이 많은 이로움을 외피로 하고, 그 이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죽여오지 않았던가?

  세 번째 강연은 내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읽어 오던 박노자가 한홍구 씨와 함께 한국사의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전 박노자의 여러 저서에서 이 나라의 거짓된 이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순신 동상의 건립배경들을 보면서, 그것이 김일성 동상과 어떤 면에서는 같은 성격이 아닌가 하는 의문들을 꾸준히 제기해온 것이 박노자이다. 그런데 한홍구는 사실 여기서 처음 만난다. 박노자와는 또 다른 느낌의 관심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역사라는 것이 과거를 다루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많은 거짓이 침투하기가 어느 것보다 쉽다. 역사가 왜곡될 때에 우리 현대사회에서 많은 잘못된 것들이 정당성을 얻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이 역사를 의심하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법학자 김두식 씨의 강연이다. '거짓말 권하는 사회'라는 주제로, 우리의 기억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위증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위증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이라는 얘기는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학계에 만연한 거짓들에 대해 폭로한다. 사실 너무나 공공연한 것이지만,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것은 폭로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 사회는 이런 거짓들을 강요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북한에서 월남한 김형덕 씨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 북한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나의 견해와는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어서 많은 언급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해서 보다 옳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섯 번째는 페미니스트 정희진 씨의 이야기다. '남자'의 거짓말과 말의 권력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장에서 나는 무척 흥분했다. 사실 페미니즘이니 페미니스트 하면 쓸데없는 소리하는 것으로만 생각해 온 것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사회에서 여자는 배제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이 사회의 거짓의 만연을 사실상 유발시키는 장본인이 아닌가 한다. 많은 부분에서 정희진의 강연은 나의 그동안의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생각들에 하나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희진을 앞으로 더 알아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마지막으로 평화운동가 프라풀 비드와이의 '인도에 대한 거짓말'이다. 사실 19세기나 20세기의 제국주의적 침략 속에는 오리엔탈리즘이 내재해 있다. 현재에도 이것은 꾸준히 적용될 수 있겠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동남아나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뭔가 신비스럽게 미개해 보이는 나라 아닌가?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들의 거짓된 생각들을 한풀 벗겨주는 유익함이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의 강연 중에서 한 가지 아쉬움 점이 남는다. 큰 건더기의 거짓된 주제들이 몇 개 빠진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거짓말들, 우리 문학의 거짓말들이 그것인데, 기회가 된다면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치료제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 책을 통해서 이것으로만 항치료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힘들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던가? "공부해서 속지 말고" 살자고 했던가? 그렇다 이 책이 이 세상의 거짓에 대해 공부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역할을 충분할 터이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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