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50주년의 역량을 총집결해 <20세기 한국소설> 전 50권을 완간해냈다. 경하할 만한 일이기에, 난 이 소식을 접하고 창비 홈피로 직행했다. 창비에서는 이 역작의 완간을 기념하여 무려 40% 할인 가격에 예약판매하고 있었다. 약간의 고민끝에 나는 예약을 했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예약을 할 때에는 약간의 지름신의 도움이 필요했다. 40% 할인이라고 하지만 20만원을 넘는 가격의 책을 단번에 사 제끼는 결단은 지름신의 강림이 있으셔야 손쉽다. 그런데 예약판매는 어디까지나 예약이었기에, 아직 값을 지불하지는 않았다. 이 지름신은 강림하셔서 예약만을 잉태하시고 돌아가셨다.

  값을 치뤘으면야 에고 어쩔 수 없지하고 기쁜 마음에 책 받아볼 생각만으로 기다렸으련만, 예약판매의 이면에는 나에게 망설임이 숨어 있었다. 취소할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 하지만 나는 끝끝내 기다려 왔고, 마침내 이루어 냈다. 대단하지 않은가? ㅎㅎ

  창비에서 몇번의 연락이 왔다. 완간기념으로 모 홈쇼핑에서 방송판매를 한단다. 그러니 거기서 사시라 이거다. 귀찮기도 하고 해서 그냥은 안 파느냐 했다. 그냥도 파는데, 홈쇼핑에서 사면 10개월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다는 설명. 그럼 나중에 결정해서 하겠다고 하고는 이 홈쇼핑 방송을 기다렸다.

  수요일 오전 8시 15분 방송. 드디어 이 날이다. 홈쇼핑 방송을 보니 이 또한 지름신의 강림을 불러내기에 충분한 제의였던가. 사정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아하! 이 홈쇼핑의 무서움을 느꼈으니, 번호를 몇 개, 아니 몇 십개 누르니 내 돈 나가는 걱정없이 이 역작을 구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숫자를 누르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내 돈 나가는 소리가 신용카드를 지값에 넣는 순간에 스스슥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지름신은 그렇게 강림하셔서 내게 아픔을 남기신다. 자칫 이번을 계기로 홈쇼핑에 중독되기가 십상이지 싶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하리.

  아마도 지름신의 제단은 저 홈쇼핑이었던가 보다. 저 호스티스들은 지름신의 사제던가? ㅎㅎ

  20여만원이 아깝다는 생각은 역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에는 책을 받아보고 기뻐하고 뿌듯할 내가 그려진다. 기다려진다. 책을 받아볼 그 날이.

  책 50권을 잘 꽂아 놓을 전용책장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