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월드컵의 열기가 차츰 식어가고 있다. 식어가고 있다는 진행형이기도 하겠지만, 어느 중요한 순간에서는 ‘확’이라는 부사를 붙이기에 적절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 對 스위스전 말이다. 한국이 스위스를 이겼다면, 원정 첫 승의 쾌거와 함께, 원정 사상 첫 결승 토너먼트 진출이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한 판이었으니, 또한 국민들의 기대는 2002년의 재현을 부르짖고 있었으니, 스위스전의 아쉬운, 그리고 어이없는 패배는 이번 독일월드컵에 ‘확’이라는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에 나는 어떤 공황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 팀의 패배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무슨 낙으로 사는가 하는 그런 공허감 말이다. 결승 토너먼트가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남의 잔치이니 흥분과 기대는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것. 그런 상황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하! 그게 있었지.

 

  2002 월드컵의 영광 안에는 내가 없었다. 나는 그때에 군대에 있었던 것이고, 8강전 스페인과의 경기,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는 역사적 순간, 홍명보의 마지막 승부차기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 나는 대한민국 육군 보병 제9사단 백마부대 28연대 3대대의 관문 위병소에서 근무 중 이상무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월드컵, 그것도 내가 사는 이 땅에서 치러지는 월드컵, 그것도 우리나라로서는 전무후무할 역사를 펼치고 있던 그 순간을 군대에서 보냈다는 비애는 이번 월드컵은 누구보다도 뜨겁게 보내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만반의 준비를, 물질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붉은 악마 티도 샀고, 붉게 빛나는 악마 뿔도 일찌감치 사 두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 󰡔아내가 결혼했다󰡕에 머리두건을 끼워 판다는 정보를 입수, 이거다 하고 낼름 사버렸다. 책보다는 머리두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온갖 무장을 하고 월드컵 응원에 여념이 없던 나에게 이 책은 내 책장 어딘가에서 소리도 없이 숨어 있었다. 그 때, 내 공허감을 무엇으로라도 채워야 할 그 순간에, 왜 이 책이 생각났을까, 그것도 이 책은 내 시선에 한 눈에 박혀왔던 것이다.

 

  제목이 특이하다. “아내가 결혼했다”(?) 이것은 모순 혹은 역설이다. 아내라는 존재는 이 현대사회에 있어 ‘결혼했음’을 전제하고서야 가능하다. 이미 결혼을 했으니, 남편이 있고, 그리고 아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 아내가 무슨 결혼을 하는가? 그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그래서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역설이다. 역설이라는 것은 모순 형용, 혹은 모순 어법을 통해서, 자체로는 모순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의 통찰이 있고 진리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모순 형용 속에는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가? 어쩌면 작가는 이 모순된 문장 끝에 하나의 부호를 붙였을 만하다. <아내가 결혼했다?> 조금 망설이다가 이것을 가로 안에 넣지는 않았을까? <아내가 결혼했다(?)> 가로 안에 넣을 바에야 생략의 묘미를 발휘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의문부호. 이것은 저자의 의도이건 아니건 간에 내가 이 책을 대면하는 첫 마당에서 강력하게 부각되어졌고, 궁금증은 스위스전 이후의 월드컵 공황을 어느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거라는 위안으로 다가왔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이 문장 자체는 역설과 동시에 반사회적 서술 혹은 ‘내뱉음’이다. 반사회적이라고 하는 것은 법과 도덕과 질서로 ‘계약되어진’ 사회에 대하여 그 법과 도덕과 질서, 즉 사회적 가치를 이반하고 무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일부일처라고 하는 법적 도덕적, 이 사회의 질서적 가치로부터 이 문장은 이탈, 혹은 배신을 때리고 있으니 이 문장은 반역, 좋게 말해 혁명적이다. 혁명은 사회를 변혁하는 것, 궁극적으로 그 사회를 뒤엎는 것이기에 반사회적이므로, 이 문장에도, 나아가 이 소설에게도 ‘혁명적’이라는 수식이 가능하리라.

 

  이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이 소설은 크게, 한 남자가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는 ‘완벽한’, 혹은 완벽에 가까운 여자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그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여자는 ‘유별난’ 사상의 소유자로서 일부일처제적 사회 가치에 반대하고, 개인적으로는 일처다부를 꿈꾸고, 나아가 다부다처의 사회를 상상하기도 한다. 이런 사상의 소유를 가진 이 여자는 그것을 현실화하기에 이르고, 결국 결혼을 한다. 이러한 것이 이 사회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기에 다른 사회로의 이주, 이것은 망명이겠다,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하면서 끝내게 된다. 결국 이민을 갖는지, 이민 이후에는 어떤 생활을 펼치게 되는지는 속편의 가능성을 남기면서 독자의 상상과 기대를 재촉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렇게 간단한 줄거리라지만, 이것은 하나의 장편 소설을 충분히 구성하고 있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할까? 이 사회에서는 이것은 하나의 ‘불륜’으로 낙인찍을 수 있다. 이것이 조금 엇나가면 하나의 야설화가 가능하다. 그러면 충분히 장편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리 야한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는 봤지만,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축구’와의 접목이다. 2~3쪽의 짧은 부분들의 이야기들은 축구 에피소드와 연결되면서 나름의 재미를 유발한다. 그로써 이 짧은 줄거리가 살이 붙어 장편이 되기 가능했던 큰 이유가 아닐까한다.

 

  제목도 특이하지만 축구와의 접목은 색다르다. 그 색다름은 월드컵이라는 열기와 만나 대중적으로 이 책은 부흥했다. 많이 팔렸다는 얘기다. 솔직히 말해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축구 에피소드들이 내겐 더 재미있었다.


일부일처제의 통념에 대한 소설적 논의에서 단 3인의 등장으로 장편을 이루어 낼 만큼 작가의 역량은 눈부시다. 월드컵 4강전을 관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작품이 지닌 미덕이다. -김윤식(문학평론가)


보편적 윤리관을 뛰어 넘는 주제가 월드컵 결승전을 관전하듯 경쾌하게 전개된다. -김원일(소설가)


  김윤식 교수나 김원일 작가는 이 이야기가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 같다는 찬사 비슷한 축사를 하고 있지만, 이 소설 자체가 ‘축구’라는 큰 테제를 벗어나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또 하나의 의문부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설의 제재가 가지는 특이성, 전통적 사회가치에 대한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는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이야기 진행은 내 입장에서는 흥미진진이라는 사자성어보다는 ‘뻔’하다는 인상을 읽어갈 수록 높여만 갔다. 나만 그랬던 것인가? 갈수록 이야기 진행보다는 축구 에피소드들이 더욱 흥미진진했다. 왜일까?

 

  나는 그 문제를 이 소설이 가지는 주제의식,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일부일처제라는 통념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아놓고 있는 이 소설이, 중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의 묘미가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나가는 데 있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나가는 것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의문부호를 달아 놓기는 했으나, 소설적 논의 안에서 작가 혹은, 작가의 대변인으로서의 화자는 나름대로의 설득력 있는 견해를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문제점으로 지적 가능하다. 어쩌면 너무 쉬워서 탈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소설이 <세계문학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기에는 조금 모자란 듯 보인다. 여기에는 어쩌면 상업적 논리가 크게 작용해 보인 듯하다. 월드컵이라는 상황과, 소재의 논쟁적 요소는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소설 자체는 그 관심에 부흥하기에 불충분했던 것이다.

 

  나는 여기에 소설적으로도 몇 가지 점에서 다소 고전적인 면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이 소설의 주인공, 그 ‘아내’라는 인물의 고전성이다. 고전소설 중에 「박씨전」이 있다. 이 ‘아내’라는 인물은 거반 ‘박씨’라는 인물과 동급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만능이라는 얘기다. 인물이 특출나게 예쁜 것이 아닌 것만 빼고. 그리고 작중인물들의 현학취미 또한 약간의 불쾌감을 자극한다. 폴리아모리니 뭐니 하는 인류생물학적 용어의 빈번한 사용도 그렇거니와, 이 여자는 거의 전문연구자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로, 작가는 이 여자는 책이 무진장 많다는 것을 전제했다.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사이언스북스, 2005.)를 읽은 적이 있다. 여기서는 인간의 성적 습성이 전 지구적 동물사회에서는 매우 특이한 별종이라는 논점을 보이고 있고, 거기에서 인간의 섹스가 유전자 전쟁이라는 주 테제아래 진화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도 일부일처니, 일부다처니 하는 논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단순히 인간의 유전자 번식을 거의 유일한 목적으로 결혼과 섹스를 보는 관점이 조금 미흡해 보인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것이다. 이것을 단순한 유전자 번식 외의 어떤 것으로라도 설명해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월드컵이 끝나갈 무렵이다. 4강이 가려졌다. 스위스는 16강에 조1위로 올랐으나, 16강 진출국 중 가장 약체로 꼽히는 월드컵 처녀 출전국 우크라이나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승부차기까지 가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월드컵 역사상 전무한 승부차기 3 : 0 패를 기록하고 탈락했다. 아이고, 고소해라.

 

  반면에 프랑스는 조별예선 이후 승승장구, 강호 스페인을 물리치더니, 8강에서는 브라질을 꺾었다. 아이고, 이런! 우리가 올라갔으면 브라질도 이길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아이고 배 아파라. 브라질이 떨어졌으니 이번 월드컵의 격이 조금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왜 일까? 고만고만한 팀들이 4강에 남았다. 독일 對 이탈리아, 포르투갈 對 프랑스. 누가 이길지 모르는 이 상황이 내게 어떤 흥미를 자극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위스전 이후 월드컵 공황을 이 책으로 채우려고 했으나, 그것은 다소간의 실패로 돌아갔다. 이 책이 누구 말대로 가독성이 뛰어나서, 나는 이 책을 읽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축구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어나가는 재미가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지만. 이제는 잠시 월드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2006 독일 월드컵의 주인공은 누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조심스럽게 예측하건데, 독일의 2연패에 점수를 조금 더 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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