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結語


  지금까지 가르침과 배움의 道는 무엇인지를 옛 聖賢의 지혜와 寓言을 통해 살펴보았다. 미약하나마 先學의 연구를 탐하여 전개한 서툰 論考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聖賢들이 전하는 지혜 가운데서 가르침과 배움이 진정 나아갈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다. 곧, 孔子의 즐거움을 찾는 배움, 不恥下問과 爲己之學의 자세에서 배움의 道를 밝혔으며, 가르침에 있어서는 조력자로서의 교사, 선입견을 버리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이끌어갈 수 있는 교사의 자세를 강조함을 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老子의 말씀을 통해서는 슬기로운 교사가 되어야 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밖에 다른 여러 聖賢과 先人들의 지혜를 통해서는 무엇보다도 自得의 중요성을 강조함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을 寓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自得’은 孔子가 말씀한 즐거움을 찾는 배움, 老子의 학생들의 자유롭게 해주는 슬기로운 교사와 하나로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논고의 주제를 ‘하나의 길을 向하는 가르침과 배움의 道’라 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 이 나라의 교육 현실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음이 많은 이들이 동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며 그 道는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는 자못 의미 있는 일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 한 줄기 밝은 빛과 같은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두 가지 일이 아니다. 내가 성실한 배움으로 선을 행하면 선을 향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나와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나의 가르침이 그 가운데 행해진다. 또한 다른 사람이 선을 행하기를 바라서 성실한 마음으로 깨우치고 지도한다면 나의 배움이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가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 배우는 것으로 가르침을 밝히고 가르치는 것으로 배움을 밝히면 곧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가르침과 배움이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일로 배움을 삼는다면 가르침이 모든 사람에게 행해질 수 있지만, 단지 옛날의 지식을 주워 모으기만 하고 깨달은 바가 없다면 남을 가르칠 수 없다.1)


  최한기의 말처럼 가르침과 배움은 ‘두 가지 일’이 아닌 하나의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길을 向할 때에 분명 ‘가르침과 배움의 道’는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 1) 박희병 편역, 󰡔선인들의 공부법󰡕, 창작과비평사, 1998, pp.214~5.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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