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1. 孔子가 말하는 ‘가르침과 배움의 道’


  ‘가르침과 배움의 道’를 논함에 있어 그 출발은 孔子에서부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자는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의 정치를 바로잡아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관심을 가지면서, 수많은 제자를 포용하여 가르치는 敎育者로서의 일생을 보냈다.1) 오늘날에 있어 孔子의 말씀은 많은 이들에게 지혜를 주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볼 때, 孔子는 大敎育者가 아닐 수 없다. 대교육자 孔子의 말씀 속에서 그의 ‘가르침과 배움의 道’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Ⅱ.1.1) 孔子의 ‘배움의 道’

  孔子는 배움을 말함에 있어 그 즐거움을 가장 먼저 이야기 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論語 學而-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論語 述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진리를 안 자가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탐구한 사람이다.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論語 衛靈公-

내가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며 생각해보았지만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論語 公冶長-

10가구쯤 되는 조그만 읍에도 반드시 나처럼 진실하고 믿음성 있는 자는 있겠지만, 나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배움에 있어서 그 자체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리를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2)에서 즐거움을 찾는 배움의 자세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현재 우리 교육의 현장에서 과연 배움의 즐거움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孔子의 말씀처럼 배움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교육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보다 더욱 시급하고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아닐까 감히 단언해 본다.


    朝聞道, 夕死可矣. -論語 里仁-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論語 公冶長-

자공이 묻기를, “공문자를 어찌하여 文이라고 시호하였습니까?”하자,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으로 문이라 부른 것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論語 爲政-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이다.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論語 憲問-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의 내면적 성취를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의 눈을 의식한 학문을 한다.


  즐거움을 찾는 배움의 자세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배움의 즐거움이 어찌나 큰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와 같은 자세가 진정한 배움의 자세의 극치일 것임에 틀림없다. 즐거움을 찾는 배움의 자세를 孔子는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不恥下問’의 자세요, 다른 하나는 ‘爲己之學’의 자세이다. 알고자 하는 바는 그 누구에게 물어서라도 아는 것,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한 배움이 아닌 자기 자신의 수양과 발전을 위한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力說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Ⅱ.1.2) 孔子의 ‘가르침의 道’

  위에서 살펴 본 바, 즐거움을 찾는 배움의 자세가 곧 孔子가 말하는 배움의 道라 할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을 찾는 배움의 자세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교사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그렇다면 교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論語 述而-

마음속으로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으며,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는데도 남은 세 귀퉁이를 가지고 반응해오지 않으면 다시 더 가르쳐주지 않는다.


  여기서 중시되는 것은 助力者로서의 교사의 역할이다. 학생 스스로 분발하게 하고, 알기를 애태워하며, 세 귀퉁이를 들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한 귀퉁이를 잡아주는 ‘助力者’, 그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며, 교사가 취해야할 바람직한 자세인 것이다.

  또한 孔子는 교사가 先入見을 버려야 함을 강조한다.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論語 子罕-

나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런 선입견이 없다. 어떤 비루한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묻되 진실한 태도로써 한다면, 나는 그 문제의 自初至終을 듣고 성심성의껏 다 말해준다.


  즉, 선입견이 없이 학생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것, 나아가 “열린 마음을 갖고 학생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3)이 孔子가 말하는 교사의 자세, 곧 가르침의 자세인 것이다. 더욱이 孔子는 가르침에 있어 4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학문과 행동과 진실과 믿음”4)이 그것이다. 학문은 곧 지식의 전달일 것이며, 그와 함께 교사의 행동 또한 가르침의 방법이 된다. 진실 된 마음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며, 학생 개개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孔子의 ‘가르침의 道’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論語 雍也-

염구가 말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 너는 스스로 안된다는 한계를 긋고 있구나.”


  앞서 助力者로서의 교사의 역할을 말하였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분발하여 힘쓰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그 과정에서 겪는 좌절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위로하고 이끌어 주는, 그리하여 더욱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 또한 교사가 갖추어야 할 자세임에 틀림없다.

 

 


 

  • 1) 김영, ꡔ논어를 읽는 즐거움ꡕ, 인하대학교출판부, 1998, p.30.
  • 2) ꡔ論語ꡕ 雍也,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 3) 김영, 「군신 ․ 사제 관계 重言과 寓言」, ꡔ한국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ꡕ, 소망, 2005, p.1067.
  • 4) ꡔ論語ꡕ 述而, 子以四敎, 文行忠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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