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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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지금 이 시간은 무척 피곤하다. 아니 점점 피곤해왔고, 이제는 조금의 여력이 남아 있을 것같지 않은 지금이다. 왜 그렇냐고? 물으신다면, 내 사생활의 일부, 일부이면서도 어쩌면 대부분의 전체를 대표하는, 그 일부를 조금 공개해 보자.

  내가 일하는 곳은, 우리나라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이라는 공간이다. 그 '대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주5일제를 실시해왔고, 빨간 날이면 다 노니, 오늘이 월요일이어서, 난 엊그제와 어제, 양일은 쉬임없이, 쉬었다. 이틀을 그렇게 쉬다보면, 생활패턴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는 일요일을 맞는 오후에 극에 달해, 다음날 월요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또다른 급격함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월요일에도 존재했다.

  월요일부터는, 즉 오늘부터는 내가 국방의 의무를 아직 다 마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예비군 훈련이 시작되는 날인 것이다. 그렇다. 오늘 나는 예비군 훈련을 받고 왔다. 그러니,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고, 평소보다 더 빠른 아침이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생활패턴의 더욱 급격한 변화를 주기 위하여 일요일을 꼬박 샌 것이다. 그것은 조력자가 있어, 월드컵을 관전하다보니, 날 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날을 꼴딱 새고, 예비군 훈련, 그 하는 것 없는 훈련에도 힘이 들고, 또한 6월의 이른 여름 땡볕에 마구 쪼이어 나는 지금 녹초와도 같다. 아니 녹초이다. 그런데 내가 아직 이 녹초를 풀어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또한 월드컵 때문이다. 일본과 호주의 관심가는 경기가 지금 시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얼 하는가? 옆에는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지금 나는, 오늘 내가 읽은 시집 한 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왜 지금 이때에 시집인가?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오늘 내내 땡볕에 쪼이면서도 그 허술한 예비군 훈련 사이사이, 이 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이가 길었고 많았다. 그 사이사이 나는 가지고 간 이 시집을 단숨에 읽어 내었던 것이다.

  단숨에 읽힌다는 것은, 쉽다는 말보다는 본질적으로 어떤 매력, 감동, 재미가 있었다는 뜻이어야 한다. 쉽다는 의미는 그와 함께 따라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쉬워도 재미없는 것은 단숨에 읽힐 수 있어도 결코 그렇게 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팽겨치기, 바로 그것에 쉽다는 말은 더욱 잘 어울린다.

  그래서, 나는 이 녹초와도 같은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이 시집을 말하려고 한다. 함민복. <<햄버거에 관한 명상>>이란 시집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나는 이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읽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시집은 <<햄버거에 관한 명상>> 이전에 나온 것이다. 1996년에 나온 것이니, 내가 대학에 오기 전, 내가 고1 이었을 시절에 나왔다. 이 책이 나올 때, 시인은 강화에 있었다. 나도 그때는 강화에 있었다. 같은 공간적 근접 거리에 있었으면서도, 나는 나의 경계에 꽃이 피는 지는 몰랐으니, 이것도 좀더 관심가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첫 시는 <선천성 그리움>이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시집의 제1부 또한 '선천성 그리움'이다. 그것은 그만큼 이 시가 갖는 중요성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시집을 사 보라는 의미에서 맛보기로 이 한 편 올려보자.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선천성 그리움>

  이 시는 7개의 행이 아닌, 7개의 연으로 이뤄져 있다. 그만큼 한 행으로 된 한 연, 즉 한 줄의 시구들이 갖는, 아니 거기에 시인이 부여하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한 줄 한 줄을 더많은 여유, 혹은 되새김을 가지고 읽으라는 시인의 권고, 혹은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 독자는 그 시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세를 가져보자. 결코 그것은 수동적 읽기가 아닐 것이다.

  사람을 그리워 하는 것은 특정 사람에 대한 사람이나 모든 이들에 대한, 만인에 대한 사랑이나, 매 한가지 즉,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아는 행위는 그 사랑에 대한 자동적 결과이자, 행위이다. 그 행위는 하지만, 일치될 수 없는,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사랑이다. 그렇다고 그것은 사랑을 멸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랑을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사랑이며, 그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합이상의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사랑이 모든 것이 동일하여, 더 나아질 어떤 것도, 사랑의 극대화도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 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사랑하는 사람들은, '선청성 그리움'을 갖게된다. '선천성 그리움' 아 이것은 사랑을 사랑답게 한다.

  이 시집의 큰 줄기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그리움'과 동의어다. 슬픔도 있고, 아픔도, 외로움도, 고독도 있다. 그렇지만 종국에는 사랑, 그 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이 명징하게 새겨놓는 추억, 추억에 대한 아픔 이면의 행복도 있다.

  '사랑'이라고 하는 거대한 폭의 부피는 무엇들로 채워질 수 있을까? 그 큰 부분이 '어머니'다. 어머니에 대한 시편들이 무척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 시집을 아름답게 한다. 거기에 아버지도 포함된다. 시인 자신에 대한 사랑도 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냉소적이고 자조적이라 하더라도, 냉소적 자조적 낙망이 아니라, 그것은 희망을 위한 냉소이며 자조이다.

  정말 정신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빨리, 하려고 했던 말을 내뱉어내고 끝내야 겠다. 이 시집에는 뛰어난 언어의 표현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소 상투적이지 않나 할 정도로, 표현과 비유와 시적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 이 시집은 다른 시인들의 것들에 비해 빼어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 시집이 그러한 부족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것은, 시인의 깨달음,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되새기게 하는 시적 전략들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시가 얼마나 많이 어머니를 얘기했던가?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했던가? 자신의 고뇌와 격정을 노래했던가? 하지만, 여기에는 그 많은 어머니, 사랑, 고뇌와 슬픔을 함민복만의 깨달음으로 아하! 무릎을 치며 읽게 만드는 명석함이 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그 경계에 피는 것은 '사랑'이다. 그것이 곧 이 시집에서 내가 얻은 결론이다. 가시가 있는 꽃이 피어도, 향기가 없는 꽃이 피어도, 색이 흐릿한 꽃이 피어도, 내 경계, 내 삶의 경계에는 꽃, 꽃 한 송이 피어난다는 사실, 나는 그런 꽃, 사랑이 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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