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누구나 꿈 꾸는 세상
후루타 야스시 지음, 요리후지 분페이 그림, 이종훈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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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버트로스, 신천옹(信天翁)이라고 불리는 이 새는 시 속에 많이 등장한다. 꾀꼬리만큼이나. 그 중 아마도 제일 유명한 시가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航海)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海鳥)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蒼空)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가소(可笑) 가련(可憐)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 (C. 보들레르, 「알바트로스」, ꡔ악의 꽃ꡕ, 김붕구 옮김, 민음사, 1991.)


  여기서 ‘알바트로스’는 속세에 사는 ‘저주받은 시인’을 상징한다. 이들은 ‘창공의 왕자’의 자태를 보여주지는 이제 그들은 ‘가소 가련’하기만 한 것이다. ‘지상에 유배’된 시인의 운명이란 뻔한 것. 이 세상은 이 ‘알바트로스’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모 코미디에서처럼 “아무도 우릴 이해 못해!”인 것이다. 그런 세상 사람들에게 시로써 아무리 떠들어 봐도 “우리가 이해시”키는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그러니 시인은 고독하고 허무한 것.

  이야기가 빗나간 느낌이 들지만, 앨버트로스에는 이런 느낌이 담겨져 있다. 시인의 비극 같은 종류의. 그래서 그런지 이런 앨버트로스가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이 그리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는다. 여기 앨버트로스가 만들었다는, 아니 “앨버트로스의 똥”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졌다는 작은 나라가 있다. ‘나우루 공화국.’ 어쩜 이 나라도 앨버트로스의 시인과 같은 운명, 즉 비극적 운명의 굴레에 갇혀버릴 것만 같지 않은가?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들어 졌다는 나라가 있다? 동화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웃자고 지어낸 우스갯소리도 아니다. 여기 ꡔ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ꡕ가 있다. 바로 태평양의 드넓은 바다 위의 한 점, 바로 나우루 공화국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 나우루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동화속의 이야기인줄 만 알았더니, 진짜로 이 작은 섬이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 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유토피아’? 그렇게 이름 붙여도 되는 것일까? 이 나라에는 부자들만 있단다. ꡔ홍길동전ꡕ에나 나오는 이상국(理想國)일까?

  이 책을 읽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나의 씁쓸함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을 살짝 던져놓고 간다. 그 씁쓸함이라는 것은, 이 지구상에 ‘유토피아’의 꿈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또 하나의 반증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근대의 제국주의와 야만적 폭력의 문명이 망가트려 놓은 한 평화롭던 작은 섬의 비극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어떤 것일까? 근대문명이 가져다 준 ‘부’라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그렇다면 여기 나우루 공화국은 한 때지만 이 유토피아를 경험했다. ‘앨버트로스의 똥’이 쌓이고 쌓여 섬을 이루고, 이것이 어떤 화학작용을 거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인광석이 되어, 이 섬의 국민 모두를 부유하게(한 때에 불과하지만) 했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를 경험한 행복한 나라였던 것이다. 부러운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유토피아라고 생각지 않는다. 지금의 나우루 공화국의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긴 하지만, 인광석의 고갈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한 나우루 공화국의 지금 현실은 흔한 유토피아의 붕괴를 말하지는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전의 국민 모두가 부유했던 그 시기가 절대 유토피아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제국주의와 근대 문명이 가져다 준 하나의 미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문명과 기계를 인광석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물질적 부를 미끼로 준 것이다. 어쩌면 인광석을 이용할 수 있기 이전의 이 섬이 어떤 의미에서는 유토피아에 더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인광석을 이용할 수 있었을 때부터가 이 나우루 공화국의 비극의 시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위기, 아니 지금의 대책 없는 현실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 ꡔ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ꡕ에서 우리가 얻어낼 것은, 자원의 고갈을 대비해야 한다거나, 아무리 부유해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거나, 나우루 공화국의 국민들이 너무 무식해서 그 좋은 걸 가지고도 나라를 망쳐버렸으니 어의가 없다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근대 문명이 가져온 이 지구의 비극의 축소판으로 나우루 공화국을 읽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어쩌면 이 근대 문명 속의 ‘알바트로스’와 같은 시인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재미있게 만은 읽을 수 없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씁쓸함을 무엇으로 대신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시집을 읽어볼까! 어쩜 앨버트로스의 외침을 엿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망할 놈의 세상, 이제 좀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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