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오탁번, 「굴비」 전문
오탁번 교수의 '시 창작'에 관한 글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재미있는 글이다. 그 글에서 오탁번 시인은 딸의 같은 반 친구가 모스부호로 쓴 연애편지에 진정한 시인의 자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솔직하고 정성이 담긴 시가 곧 감동이 될 수 있을테니.
위의 시는 아마도 구전되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다가 어느덧 눈가에 고인 눈물을 발견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나를 찾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 두 부부의 애절한 사랑! 어쩌면 바보같은 사랑 뒤에는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중들의 한이 있고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다. 찢어지는 가난,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현실 속에서 그대로 이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은 변치 않던가?
요즘의 풍족한 삶에는 이제 이런 사랑이 남아 있는가? 나의 눈물은 이 애절한 사랑에 대한 감동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잊어버린 참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