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시인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詩人이 될 수는 있다.


  시는 늘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한 번쯤은 시라는 것을 긁적거렸을 것입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학창시절 첫사랑을 품었던 순정을 주체할 수 없어 일기장에 혹은 예쁜 편지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내려가 본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기억이 없나요? 없으면 아무래도 바보라고 불러야겠죠.

 

  제가 고등학생 때 무척 감동 깊게 읽은, 아니 감동 그 자체였던 시집 한 권이 있습니다.《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라는 원태연 시인의 시집인데요, 흔히들 연애시라고 부르더군요. 그 때는 그 시집에 담긴 시구 한 구절구절이 그렇게 제 마음을 울리고 때리고 감동을 그야말로 들이 붓더군요. 여러분들도 사춘기 시절 저 같은 추억이 한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없었다면 자신이 정상인지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 때 제 일기장에는 유치찬란한 사랑의 노래가 가득했었답니다. 일기라고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한번을 써본 적이 없는 제가 일기도 꼬박꼬박 한 달쯤을 제 사랑의 시와 함께 써 내려갔던 기억이 저를 지금 부끄럽게 하기도 하는군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렇게 털어놓느냐 하면, 시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지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슨 특별한 것도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시가 왜 어려울까? 시를 쓰려면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위의 질문을 해결하기 전에 우리는 그렇다면 시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괜히 따분한 시론을 늘어놓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제가 여러분들께 자세히 말씀드릴 만한 능력이 되지 못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생각하는 시는 이렇습니다.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 얘기는 아니니까 잘 한번 들어보세요.

 

  여러분들이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많이 들어본 동양의 경전 중에 <<시경(詩經)>>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어요,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다. 마음속에 있으면 지(志)라고 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이 글귀를 보고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나요? 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유레카를 외치듯이 ‘야 시가 별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경>>의 말대로라면 시는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과 감동과 기쁨과 슬픔과 아픔과 그리움과 기타 등등 여러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면 시가 된다는 얘기인 것이죠. 간단하지 않습니까? 시는 이렇게 간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시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시의 출발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시를 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한 가지를 기억하고 갑시다.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속 감정과 정서를 있는 그대로 적어내면 시가 되는 것이죠. 이것을 알면, “시가 왜 어려울까?”라는 의문에도 쉽사리 답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통 시를 읽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앞에서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읽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흘러가는 바”는 읽어서는 안 되고, 느껴야 하는 것이죠. 시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 사람들은 시를 느끼고 그 안의 감정과 정서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시를 읽고 분석하고 주제가 무엇이고, 어떤 표현방법들이 사용됐는지를 파악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어려울 수밖에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를 같이 보겠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시의 주제가 무엇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타계하신 김춘수 시인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김춘수 시인의 말을 빌면, 이 시는 “메시지가 없고 정서만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에도 이 시는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시를 알고 혹은 애송하고 있다면 이 시에 담긴 표현방법이 어떻고, 주제가 어떻고 해서가 아니라, 읊으면 읊을수록 살아가는 가슴속의 어떤 울림 때문이 아닐까요?

 

  이렇듯 시는 먼저 가슴으로 느껴야 합니다. 마음은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는 하등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물론 가슴으로 느낄 수 없는 그런 시도 있습니다. 예컨대, 30년대의 모더니즘 시들이 그러하고, 현대의 해체시 등이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는 우리가 가슴으로 느끼는데 충분합니다. 지금부터는 읽으려 하지 말고, 느끼고 감동을 찾으려 하십시오. 그러면 시가 충분히 쉬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데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시는 꼭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일까요? 이미 예측하고 계시겠지만 제 대답은 No입니다. 위에서 어려운 <<시경>>의 구절을 운운해 가면 말씀드렸듯이,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시를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까요?

 

  그것은 우리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정서를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해 내야하는데, 자꾸 멋있는 말, 분위기 있는 말, 뭔가 품격이 있어 보이는 말만 자꾸 고르다 보니, 시 쓰기가 자꾸 어려워지는 것이죠. 단언하지만, 그것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시가 아닌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고요? 계속 말하지만,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자꾸 꾸미다 보면 자기 마음은 어디로 훌쩍 달아나 버리고 가짜만 남게 되니 그게 어디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박목월 시인의 <불국사(佛國寺)>라는 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부영루(浮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 소리


  이 시는 불국사의 풍광들을 있는 그대로 나열해 놓고 있습니다. 보고 느낀 것들을 아무런 꾸밈과 수식 없이 늙어놓고 있는 것이죠. 어떤 것이 마음속에 들어와 무언가 감정과 정서를 자극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풀어내면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이지, 그것을 이리저리 꾸미고 멋진 말들로 치장해버리면 처음의 감정과 정서는 온데간데없이 빈껍데기만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를 쓰는데 재능이 있어야만 쓰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불세출의 천재만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시를 쓰는 재능이 있다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기는 할 것입니다. 솔직히 그 재능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얼마나 잘 보는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얼마나 잘 표현해내는가,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것이라면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길러낼 수 있습니다. 일기장에 끄적이던 한 줄 한 줄이 하나의 시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작은 수첩 한 귀퉁이에 틈틈이 적어두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능력이 길러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렵다고 생각하고 “나는 시란 것하고는 친해질 수가 없어”하며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 버리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장차 국어교사가 되실 분들입니다. 헌데 이 중의 많은 사람들이 시를 어렵게, 그리고 따분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평생 시 한 편 써보지 않고서 국어교사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요? 어쨌거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받은 국어수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거의 기억이 없지만)은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초가을 햇살이 따사하게 비칠 무렵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대뜸 시 한 편을 낭송해 주셨을 때입니다. 지금 그 시가 무엇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제가 줄곧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학교 백일장에서 상은 도맡아 타기는 했지만 지금은 시 쓰는 것이 누구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 쓰기를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시는 내게 기쁨도 주고 때로는 위로도 해 주는 좋은 친구와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시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시는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있는 그대로 적어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시를 써본다면, 여러분은 아주 좋은 친구 한 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멋진 국어교사가 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란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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