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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2000년 초, 우리 사회는 이상야릇한 열풍을 경험했다. 세번째 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찾아온 이 태풍은 자본주의의 망망대해에 거대한 물결로 온 사회에 휘몰아쳤다. 그것은 다름아닌 '체 게바라'의 붉은 물결이었다. '체 게바라'는 과연 누구인가?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빛나는 별이 박힌 베레모, 아메리카 민중 해방을 위해 끝없이 제국주의와 싸운 그의 게릴라 활동을 보여주듯 길게 풀어헤친 장발, 그가 언제나 입고 다녔던 게릴라의 자존심 군복. 이러한 모습은 온 거리의 포스터에서, 이 나라 청년들의 티셔츠에서, 상점에서, 그리고 서점에서, 책에서, 이곳 저곳에서 우리에게 전시되고 있었다.
이 책 <체 게바라 평전>은 이 나라에서 이 물결을 선도했다. 사실, 이 물결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회가 이 공산주의자에 대해 관대할 수 있기 이전에 이미 서구 유럽에서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이 엄청난 물결로 밀어닥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 체는 남미에서 영웅이었고, 신격화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체 게바라는 어떤 인물이기에 그러한가?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의학도였다. 하지만 그는 쿠바의 혁명 전쟁에 피델 카스트로와 뜻을 같이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혁명가이자 게릴라였다. 그는 쿠바의 혁명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으로서 쿠바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장관, 그리고 외교관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으로서, 혁명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혁명가로서 아프리카의 콩고, 남미의 볼리비아 등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결국 죽음을 맞는다.
체 게바라는 마르크스주의자요, 공산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이다. 그는 중국의 마오쩌둥을 존경했던 인물이며, 민중 혁명을 위해 총을 든 혁명가요, 게릴라였다. 그런 그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반공의 이데올로기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꿈틀거리고 있는 이 사회에서 강한 태풍을 일으킨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솔직히 나는 그 물결을 살짝 피해왔다. 사실 내가 그 물결을 피한다고 해서 피할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이 '체 게바라'의 물결 한 가운데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아니 그것이 두려워서 이 책 <체 게바라 평전>을 멀리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이 물결을 결코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온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에서, 유행처럼 입고다니던 티셔츠에서 나는 이 인물을 대면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술집 이름에서까지.
체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거대한 물결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참 아이러니다. 체 게바라와 자본주의는 절대 공유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바다는 이 혁명 전사 체 게바라까지도 집어 삼킨 것이 아닌가?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한 상품이 되었으며, 유행이 된 것이다.
이 상품화된 유행이 되어버린 체를 나는 거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공의 교육에 세뇌되어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체 게바라를 읽게 되었다. 왜 이 인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싸웠던 제국주의 문화에서 상품화되고 열광을 일으키고 유행이 되었는지를, 내가 가지고 있던 반공의 이데올로기의 거미줄을 이제는 조금씩 걷어버리고 싶어서, 나는 그를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어 가면서 체라는 인물이 왜 이 시대에, 이 사회에, 이 문화에 거대한 물결, 거대한 태풍, 거대한 파도와 같이 몰아쳤는지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말하자면, 체는 더이상 혁명 전사도 아니요,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요, 공산주의자도 아니요, 총을 든 게릴라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감히 주장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체는 아르헨티나의 그리 부유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집안에서 귀한 아들로 태어나 의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가 늘 안고다니던 천식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혁명가가 된 가장 큰 계기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우와 함께 한 남미여행 때이다. 그가 살아가고 있는 아메리카의 민중들의 삶과 그 고통과 아픔을 몸으로 체험하고 그는 마음속에 이 민중들의 아픔을 위해 싸워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 여행에서 쿠바의 카스트로와의 만남을 계기로 쿠바의 혁명전선에 가담함으로써 혁명가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혁명가로써 볼리비아의 한 시골 마을 학교에서 총살됨으로써 그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이런 체의 삶에서 우리에게 주는 바는 더이상 '민중 혁명'이 아니다. 더욱이 이 시대 청년들에게는 이런것은 전혀 먹혀들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 시대 청년들을 열광케할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볼 때 '열정'이다. 그는 혁명가 이전에 '열정'을 가득담은 한 젊은이였던 것이다.
체 게바라 아니,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라는 한 인간의 열정이 이 땅의 청년들에게 강하게 어필한 것이 아닐까? 그의 의학도로서의 모습, 다재다능의 면모, 멀고 험한 고생길이 분명한 모험의 감행,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와의 우정, 부하들을 아끼고 배려하는 인간적 면모, 무엇이든 철저하고 완벽하게 이루어 내려는 집념, 민중에 대한 사랑, 혁명에 대한 끝없는 헌신 등등. 그는 무엇하나 하찮은 것이 없었다. 모든 것에서, 모든 일에서, 모든 생각과 삶에서 열정으로 살아온 인간 게바라였던 것이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그런 그였기에 그는 그가 그토록 혐오하고 타파하고자 하던 제국주의의 신식민사회의 청년들에게 깊은 꿈 하나 던져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은 '혁명'의 붉은 물결이 아닌 '열정'의 더욱 강한 물결로 말이다.
체 게바라의 삶을 읽어가면서 나는 몇가지 점에서 그가 영웅이 될 수 있었고, 그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그는 열정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이 그 첫째다. 둘째는 그는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이다. 게릴라의 야전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누구보다도 늦게 잠에 들었다. 이유는 물론 독서라는 사실. 그가 그토록 많은 역할을 그 누구보다도 잘 감당해 낼 수 있는 완벽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점도 어쩌면 이 점에서 연유하는지도 모른다.
세번째, 그는 가족을, 친구를, 부하를, 민중을, 조국을 사랑할 줄 알았다. 언제 어디서나 가족을 생각하고 걱정하며, 친구와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부하들을 다스리고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닌, 가르치고 인도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진정한 혁명가가 되도록 도움을 주며, 민중들의 삶의 고통과 아픔을 몸소 느끼고 그들과 같이 그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조국을 위해, 나아가 민중해방을 위해 삶을 바쳤던 체, 그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사랑했던 것이다.
네번째, 그는 자기를 돌아볼 줄 알았다. 이 책을 보면 그의 다양한 필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그의 게릴라 생활의 기록돌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반성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 게바라였기에 이 땅, 이 나라 청년들에게 강한 열풍으로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자본가들의 눈에도 강한 상품성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이 사회가 이제는 아무리 체 게바라가 살아온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무작정 산 속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펼쳐봐야 돈키호테로 봐주면 다행이요, 곧장 교도소아니면 정신병원으로 들어가야할 처지가 될 만큼 성숙(?)했기 때문에 체의 그 열정과 모험, 다이나믹한 삶 등을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이 책에서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 리뷰를 마무리하며, 그의 혁명정신과 투쟁, 사회의 변혁 등에 대해 그 중요도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단지 그의 열정만을 찾아내려고 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체 게바라가 주는 한가지 금언 만큼은 우리에게 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이 21세기에 어떻게 펼쳐낼 것인가를, 그리고 우리들 마음속에 체 게바라의 뜨거운 열정과 정신은 무엇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