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의 꽃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시인 정희성의 4번째 시집 『詩를 찾아서』에 수록된 시다. 시인은 늦은 나이에 첫 시집 『답청』(1974년)을 펴내서인지, 여타 시인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느릿느릿 시의 걸음을 걸어왔다. 4년만에 두번째 시집으로 그 유명한 「저문 강에 삽을 씻고」가 수록된 동명의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출간한 것은 그의 느릿한 시작을 놓고 봤을때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얼마 전 시인의 인하대 강연에서, 아직도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인으로 기억되고 소개되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쉽고 멋쩍은 일이라고 한 바 있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오래 기억되는 법이긴 한데, 살아남은 노시인에겐 그게 뛰어넘기 힘든 높은 벽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정희성은 이것으로 1981년 제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다. 아무리 봐도 정희성 시인은 김수영을 생각나게 한다. 중고등학교의 시험문제에서도 시인의 「답청」과 김수영의 「풀」이 비교지문으로 곧잘 등장하니 말이다. 이후 두번째 시집으로부터 13년만에 세번째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펴냈고, 그로부터 10년만에 바로 이 시집을 펴낸 것이다.(시인은 올해 『돌아다보면 문득』(창비, 2008.)를 펴낸 바 있다.)

 

 

 

 

10년을 묵혀온 시들을 모아 펴낸 시집이라면, 참 묵직하기도 하겠다 싶지만, 그마저도 기대를 저버리고 마는 시인이 정희성이다. 시집이란 이미지에 걸맞게 시인의 시집은 제법 가볍기 그지 없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는 43편에 불과하다.(대부분의 시인들은 보통 70~100편 가량을 시집으로 묶는다.) 과작(寡作)의 시인 정희성. 오랜 동안 교직에 몸담으면서 일과 생활에 지쳐서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울 성 싶지만, 그게 그의 과작을 이끈 주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많이 갈고 닦아서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그의 과작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적은 시 중에서 기억에 오래 남고 읊조릴 시들이 비교적 많다는 사실이다.

한 권의 시집에는 어떤 천재적 시인이라고 할지라도 각각의 시편들의 성취정도는 둘쭉날쭉이기 십상이다. 물론 정희성의 시도 예외일 수 없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가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인으로 기억되는 일을 중단시킬만한 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시집 『詩를 찾아서』에서 무척이나 주목되는 시가 바로 위의 시다. 이 시 「민지의 꽃」은 특별나거나 의미심장하거나, 시적 성취가 뛰어나거나, 뭔가 문제적이거나, 아름답거나, 괴기하거나, 어렵거나, 재미나거나, 독특하거나, 기타 등등의 시에 대한 찬사를 바치기에는 미흡한 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이 시를 주목하게 되고, 자꾸 읊조리게 된다.

시를 읽어보자. 강원도 어느 산골에 귀농한 제자를 찾아간 시적화자는 거기서 몇날을 묵었던듯 싶다. 그집 딸 민지와의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이다. 앞마당의 잡초에 물을 주는 민지를 보면서, 시적화자는 어떤 성찰을 얻는다. 잡초를 꽃으로 여기는 민지의 그 행위와 인식이 때묻은 시적화자에게 주는 어떤 파토스는 커다란 충격으로 남은 듯 하다. 그게 다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의 제목이 '詩를 찾아서'라는 점이고, 다시 눈여겨 볼 점은, 이 시가 「시가 오는 새벽」과 「詩를 찾아서」사이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이 시집이 13년만의 소산이란 점을 염두에 두자. 그러한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시는 이 시집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시가 오는 새벽」에서 시인은 "내 이마 서늘"할 정도의 시적 영감을 받지만, 그것이 어떻게든 시로 탄생되어질 수 있었는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는다. 그런 시적 영감 혹은 시에 대한 어떤 깨달음, 혹은 시에 대한 충격은 어느 한 날의 새벽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시적 영감이 시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시적 언어, 시적 인식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이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지의 꽃」이 필요했다.

「민지의 꽃」에서 시적화자는 때묻은 자신의 언어(말), 곧 세상의 때 묻은 인식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바로 민지가 보여주는 그 따뜻하고 순수하며, 시적화자와는 달리 결코 때묻지 않은 언어와 인식으로부터 언은 충격이다. 어떤 시가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인에게 시는 그 시를 읽는 독자를 감동시켜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때 묻은 언어는 그로부터 어떤 시가 되어도 그런 감동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시가 오는 새벽'에 얻었던 시적 영감이 시가 되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시인의 자신의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 것이 아닐까? 뒤로 이어지는 「詩를 찾아서」에서 줄곧 찾아되는 것이 '말'이란 사실에서 그것을 확인하게 된다. 시인은 시의 언어를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지만, 결국 찾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끝없이 저잣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詩를 찾아서」)는 체념만을 찾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체념만이 아니다.

시를 찾아 나선 시인이 생각한 "그 고운 사람"은 '우바이'만이 아닐 것이다. 이미 시인은 때묻은 말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나 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이어서, 시인은 자꾸만 그 볼 수 없는 마음을 찾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뇌하고 떠돌 수 밖에 없을 따름이다. 그러나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이가 있으니, 그게 바로 '민지'다. 그렇게 시인은 '우바이'를 생각하고 '민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여전히 시를 찾지는 못했지만, 어떤 마음을 볼 것인지, 어떤 마음에서 오는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대한 인식인지, 어떤 언어여야 하는지를 슬며시 깨달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시인은 늘상 '시가 오는 새벽'에 몸을 부르떨며 시적 영감을 얻고, 민지의 언어와 마음과 인식을 넘지 못하는 자신의 때묻은 언어와 인식을 한탄하고, 또한 시를 찾아 떠나는 행위를 반복해가며, 그렇게 살다가 뜨엄뜨엄 뜻대로 되지 않는 고통들을 뱉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산고의 산물이 이 시집에 엮인 시들일 것이고, 그것이 소량이고, 과작이어야 함은 분명한 이유를 가질 수도 있겠다. 연로한 시인에게 시를 토해내는 것은 말라가는 피를 토해내는 것일수도 있으니, 건강상으로도 과작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겠다.

민지는 세상의 눈으로는 '잡초'일 따름이지만, 그 마음으로부터는 '꽃'이다. '민지의 꽃'은 그래서 특별한 꽃이 된다. 시적화자가 그런 민지에게 세상적 인식, 곧 그것이 '잡초'란 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은 아이에 대한 자애로움에서 온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틀렸다는 부끄러움에서 오는 오싹함이다. 시적화자가 입을 다물며 느껼 수 이 치떨림과 부끄러움이 느껴져 오는 듯하다. 그것이었으면 족하지 않을까? 시인의 "내 말은 때가 묻어/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는 마지막의 첨언은 사족과 같이 느껴진다.

정희성 시인은 아마도 이 「민지의 꽃」에서 시심을 본 것이 분명하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연로한 시인은 어쩌면 민지의 마음까지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근래에 펴낸 『돌아다보면 문득』이란 시집에 대한 기대는 그런 것들이다. 시인의 신작시집『돌아다보면 문득』을 진작에 손에 넣고도 아직 읽고 있지 않은 것은, 그런 기대감을 만끽해보고 싶은 짖궂음이다. 이 겨울을 틈타 한적하게 읽어보아야 겠다. 내일은 어느 잡초에게 물을 주어볼까? 아차, 겨울이잖아! 역시 나도 어쩔 수 없는 때묻은 인간을 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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