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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ㅣ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대충 들어 알고 있다. 뭐, 미학자라던가? 모 대학에서 미학관련 강의를 하는 교수(겸임교수)시다. 그런데 아마도 요새 많은 사람들, 촛불시위에서 마이크 들고 뛰어다니는 그를 보고 환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그냥 진 교수 정도로만 알지 않을까? 그가 대학에서 뭘 가르치고 전공이 뭔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 중에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미학이 뭔지, 그의 전공 영역을 내가 건드리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난 미학의 미자도 모른다. 따라서 단순히 그를 진(중권) 교수님으로만 아는 사람들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진중권 교수가 이번에 새로 '야심차게' 내어놓은 책 『서양미술사Ⅰ』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사람이 참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뭘하는 사람이지를 집요하게 따져봐야겠다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 교수님으로 아는 한편에는, 디워 덕에 또 많은 사람들이 진중권을 영화평론가쯤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뭐,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해대며, 디워에 목숨건 네티즌들을 얼빠지게 만들어버렸던 그 악명높은 이름이 진중권이었으니 말이다. 그 전에는 황우석 덕분에 매장되기도 했던, 독설가로도 진중권은 널리 알려졌더랬다. 그 전에는 저 수구꼴통 파시스트들에 필마단기로 돌진했던 무모하기까지한 돈키호테이기도 했더랬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대스타 반열에 등극하셨다. 미친소를 타고 촛불 밝힌 곳에 마이크를 들고 설치고 다닌다.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진중권 교수는 예전의 모든 단점(장점?)들을 여실히 발휘한다. 따자고짜 마이크를 적이고 나발이고 들이밀고 인터뷰를 하는 거침없음, 그러다가 전경에게 몇 대 얻어맞기까지 하면서, 왜때려요 쏭을 탄생시키셨다.
도대체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 그럴 것 같아서일까? 이번에 그가 펴낸 이 책은 그가 마련한 자신의 정체성 홍보차원은 아닐까?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 각양각색 활약하고 다니는 진중권의 모습을 보면서, 각종 토론에서 시원스레 쏟아내는 그의 말발을 들으면서, 나는 참 오하고도 묘한 생각에 잠긴다. 아 이사람 참 알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아 쑤시고 다니는 데가 없는 이 사람, 알고 보니 이 책 저 책 참 많이도 냈다. 책 날에게 대표작들은 아마도 그의 전공관련서들만 올려놓은 것 같다. 이 밖에도 수십권의 책이 있을텐데. 아무튼 내가 읽은 이 책은, 내가 읽은 진중권의 책이 많지도 않지만, 그가 펴낸 그의 전공관련 책들로서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진중권이 미학자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전혀 미학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진중권에게는 이런 모습이 본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 이상한 생각에 잠겼다가도, 아프리카에서 그의 활약을 보면서는 아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책을, 하는 오묘한 생각에 다시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예술하는 사람, 미술하는 사람, 아니 예술이니 미술이니 안다는 사람치고, 그처럼 그렇게 날카롭고 집요하고 빈틈없고, 하여간 참 냉철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게 진중권에게 있어서는 명실상부 편견이구나 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자 이제 책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 진중권이 들려주는 미술이야기는,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다. 미술에는 관심없는 나이지만, 그래서 미술은 아는게 없고 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빠르게 독파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진중권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었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를 중권이형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아니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만큼 맘 좋은 사람은 아니다. 여기에 진중권이 풀어주는 이 미술이야기에 나름의 장점이 있을 것이란 확신, 그 증거는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것 뿐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이 책을 '서양미술사'를 파악해보자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고 읽었다. 다만, 그림보는 재미라고나 할까? 혼자봐서는 전혀 모르겠는데, 중권이 형이 설명해 주는 그림 이야기는 나름 흥미로움을 준다. 그리고 그림책은 여간 빨리 읽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곳곳에 독설가 답지 않은 명문들을 보여주는데, 이런 문장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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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실재(reality)'란 합의된 세계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유일한 실재지만, 중세에 그것은 유일한 실재도, 중요한 실재도 아니었다. 중세에 '합의된' 진정한 실재는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세계였기에, 가시적 세계를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이는 현대 예술이 처한 상황을 닮았다. 카메라의 등장 이후 현대 예술에서도 재현은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미술사가 아순토는 여기서 중세 예술과 현대 예술 사이의 평행선을 본다.(8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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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말인지 대충 감은 온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유일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것일지 모른다. 아무튼 이후 설명하는 중세 예술과 현대 예술의 어떤 공통점들이 나오는데, 알듯 말듯하다. 아무리봐도 중권이형이 보는 걸 나는 못보고 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 될 것만 같다. 중권이 형이니까.
"러시아어 문장을 이탈리아 문법으로 읽을 수 없듯이, 역원근법으로 그려진 그림을 선원근법의 문법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림을 읽을 때는 그것을 그릴 때 사용했던 그 코드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뭐 그림만이 그러할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세상모든 만사가 이렇게 그림과도 통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내나름의 문법으로 족하다. 역원근법이니 선원근법이니 하는 것은 좀체 이해가 가지 않아도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뭐든지 뭘 알고나 보인다는 것이다. 누가 그랬듯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기 이 책에서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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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서구의 예술 역시 예로부터 미리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이었다. 헤브라이즘은 서구에 성서라는 토대를 제공해주었고, 헬레니즘은 신화와 고대 저술가들의 문헌으로 서구 문명을 다채롭게 해주었다. 서구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이미지는 이 문헌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 제재들을 해독하는 데는 서구의 문화적 코드에 대한 이해가, 서구 문명을 만들어온 문헌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16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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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마운 말이다. 애초에 이 책을 읽고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한번 알아보자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아예 나는 포기하고, 그림이나 구경하자는 생각으로만 읽었다. 그런데, 중권이형의 친절한 설명덕분에, 그냥 볼때는 '아하'하는 탄식이 간혹 섞이기도 하니 기쁜 일이다.
여하튼 진중권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가는 이 책을 아마도 다 읽지 못하고 놓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참 보이는 것과는 다름을 느낀다. 그림을, 미술을, 예술을, 미학하는 눈은 우리가 보는 진중권의 눈은 아닐 것이다. 게기에는 뭔가 따듯한 감수성이 농후하지 않을까? 간혹 우리가 익히 잘아는 진중권의 독설들이 생각나는 서술도 있긴 하지만, 이 책에는 본디 진중권의 모습이 녹아들어있기도 하다. 짤막짤막한 그림과 함께 읽는 그림이야기들도 나름 흥미롭고, 좀 의외다 싶은 수학이야기, 별별 이야기들도 몇몇 있기도 하다. 아무튼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있으신 분은 일독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아 이제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자'하는 결심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지만, 이거 하나는 얻어가 보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현대가 아닌가? 어디가서 아는체라도 해야지 않은가? "현대 예술의 과제는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이 또한 이미 수백 년 전에 엘 그레코가 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어디 전시회라도 가면 요렇게 멋지게 한 마디 내뱉어도 좋겠다. 이게 1권이니까, 몇 권이 더 나올 것이다. 장담은 못하지만, 두번째 권쯤은 다시 따라읽어보고 싶음이 살랑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