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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
하재근 지음 / 포럼 / 2008년 2월
평점 :
서울대학교는 과연 어떤 기준과 지침을 가지고 학생들을 선발할까? 아마도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열에 아홉은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싶어할 것이다. 돈을 수백 들여서라도 그 답만 알려준다면 거뜬히 지불할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저 강남의 유명학원, 유명강사들에게 엄청난 돈이 집중되고 있는가보다. 알고보면 그게 딱히 기밀 아닌 기밀인 셈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게 돈 꽤나 벌어주는 영업기밀이다. 그런데 큰일났다. 어느 이상한 사람이 이 영업기밀을 단돈 18,000원에 세상에 폭로하고 만 것이다. 서점에 가면 누구나 구할 수 있다. 그 이상한 사람이란, 얼마 전 백분토론에 디워논쟁으로 나오기도한(그래서 이상한 건가?) 하재근이란 양반이다. 이 사람이 떡하니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이라고 써붙인 일급비밀(?)을 세상을 뿌린 것이다.
돈 꽤나 있는 집 자식들은 강남으로 몰린다. 없는 집 자식들은 빚을 져서라도 강남으로 몰린다. 이도저도 안 되는 집 잡것들은 강북으로 일산으로, 기타등등, 되는대로 집 근처 동네 학원이라도 몰려간다. 강남 최고 유명학원에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끊이질 않는다. 수천명일지도 모르겠다. 유명강사들은 드넓은 강의실에 이 학생들을 빼곡히 쌓아놓고 열변을 토한다. 강남에만 몰려있는 대형학원들 몇 개만 싸잡아도, 몇 만은 족히 되지 싶다. 얘네들은 다 서울대 가고 싶어 할터이다. 그런데 서울대학교가 무슨 복지재단도 아니고 얘네들 다 받아줄 리 만무할 터이다. 지 말만 듣고 따라하면 서울대가 문제냐는 강사들 학원들이 강남에 널렸는데, 대부분은 낚인 셈이 될 터이다.
모든 학원은 낚시질이다. 그런데, 하재근이란 양반, 전국민 상대로 낚시질하고 있다. 이게 미치지 않고서는 가능하겠는가? 이렇게 떡하니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을 공개하다니, 그럼 서울대는 어떻게 학생들을 뽑겠는가 말이다.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죄다 서울대 입학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궁금하기는 무지 궁금할 것이다. 서점을 기웃거리던 어느 학부모나 학생들이 이 책을 봤다면 필시, 혹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 덕에 꽤나 팔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이 "나처럼 해봐라 요렇게"식으로 서울대 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책은 아니다. 그나마 그런 방법이라도 적고 있는 책이라면 심한 모멸감을 안 느낄 것인데, 이 책보고 옳거니 집어들고 누가 볼새라 몰래 집에와 펼쳐들고 열심히 탐독한 저 미혹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실망과 좌절은 피해가지 않을 것이니, 하재근은 일단 석고대죄를 먼저 해야지 싶다.
겉표지를 보면 우선 빨간색 '샤'표시가 서울대를 향한 열망과 열정을 북돋운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게 하는, 무언가 비밀스럽게 글자에 살짝 장난질을 친,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이란 문구가 눈을 크게 뜨게 만든다. 이것만 보고 누가 볼까 무섭게 집어들고 나온다면 간단히 낚인 셈이다. 눈길을 살짝만 좌측으로 옮기면, 비교적 작은 글씨로 씨뻘겋게 새겨놓은 문구가 실망스럽다.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 이 무슨 알듯 말듯한 소린가. 뭔 소린지는 모르지만 '서울대'라는데, 뭔가 있겠지 하고 집어든 어느 불쌍한 부모님들, 학생들 계실 것이다.
이 불쌍한 우리 학부모님들, 학생님들 중 이 책 머리말 이상 읽고는 실망을 금치 못한 분들 많으실 것이다. 언젠간 그 일급비밀을 말해주겠지 하고 끝까지 읽으신 분들 계실까? 아마도 없겠지 싶다. 우리 자식 서울대 한 번 넣어보겠다 했더니, 아무렴 18,000원에 그게 가당키나 하려고! 그래도 이왕 산 책, 어느 뭔 소리하는지 읽어나보자 하시는 분들 계셨다면 나름 다행스러운 일이니, 그런 분들은 사실 하재근에게 낚인 것도 아니고, 안 낚인 것도 아닌 셈이다.
알고 보면 이 책은 정확하게도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을 꽤뚫고 있는 책이다. 어느 강남의 유명 강사들이 말하는 서울대 들어가는 방법과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얘기들이 담겨있다.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들이 하는 말이 뭐 별 게 있겠는가? 돈 많이 쳐발라서 내 강의 듣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서울대 넣어준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재근은 이걸 보다 간단히 말한다. 서울대는 돈질이라고.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이 좀 안되면 연대, 고대도 비슷하다. 전국의 일류 대학교 들어가는 방법들이 이 책에는 덤으로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학부모님들 안 낚인 것이 분명할 터인데, 이게 이상하게 낚인 기분이 들 것이다. 여하간 낚인 것도 아니고 안 낚인 것도 아니다.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하재근이 말하는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은 곧 돈질이라는 소리다. 머리말의 제목은 이렇다. "도박장 학교, 정글 사회". 비교적 정확하다. 그런데, 학교가 도박장이라는 데에는 좀 동의하기 어렵다. 도박에 있어서 총알이 많은 사람들이 딸 확률이 조금 높은 것이긴 하겠지만, 제대로된 도박장에서는 돈이 많건 적건 모두 잃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돈 많은 인간들이 '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도박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 돈많은 인간들이 이 도박장을 소유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다. 암튼 돈 놓고 돈 먹기, 돈 놓고 학교 먹기는 사실이다. 그렇게 돈 놓고 학교 먹은 인간들이, 정확히는 돈 많이 놓고, 일류 학교 먹은 인간들이, 이 사회를 죄다 먹는 것이 적나라한 현실이니까, 이 사회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정글? 맞다.
하재근이 말하는 우리나라 일류 대학교의 선발 지침이라는 것이,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워 놓고, 서울대부터 챙겨가고, 그 다음 일류대들이 챙겨가고, 어중이 떠중이들을 나머지 미천한 학교들이 마지못해 데려가는 방식이다. 이것, 사실 당당히 반박할 재간 있는 사람들 많지 않다. 진중권이 와도(안 오겠지만)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성적순으로 애들 챙겨가서, 제일 먼저 챙겨간 놈들이 반 먹고, 두번째 세번째 챙겨간 놈들이 또 반 먹고, 나머지를 또 제각각이 반먹고, 전국민의 80%가 얼마 안되는 것으로 연명하는 이 사회를 만든다. 몇 십년을 이 지침이 완벽하게 작동해 왔다. 이런 젠장.
하재근이 400쪽이 넘는 이 '지침'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학벌 문제다. 그런데 이 학벌에 걸린 것이,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별 요상한 것이다. 그래서 학벌에 밀리면 모든 것이 밀리는 인생이 된다. "학벌사회 입시는 국민 절대다수를 패배자로 낙인찍는 게임"인 것이다. 이 학벌이란 게, 아까 성적순으로 나뉜다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이 성적순이 사실은 '재산순'이었다고 (모르는 사람빼고는 다 아는데) 하재근은 말한다. 그러니 아무리 학벌에 목숨 걸어봤자, 돈 없으면 그냥 죽어야할 뿐이다.
강력한 학벌주의는 대학의 서열에 따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끊질기게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하재근이 장황하게 대학서열타파, 학벌주의 타파를 말하면서, 그 원인과 대안들을 내어놓고 있지만, 사실은 이 모든 걸 우리는 다 알고 있고, 이것이 이른바 대학평준화 혹은 국립대 네트워크 구축으로 나아가야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재근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 곧 '자유화' 기조에 따른 사회 전반의 변화가 곧 사회 파탄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결국 그것이 교육 파탄을 불러오고, 대학서열체제를 공고히 하며, 영원히 학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 굴레속에 갖혀있게 되는 것이다.
하재근이 이 알만한 이야기들은 너무 장황하게 해서 곧잘 지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애써 외면했고, 앞으로의 해결이 더욱 장황하고 지난하고 더딜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하재근의 논리들이 촘촘하지 못한 부분들도 거슬리고, 특히나 박정희식 모델에 대한 지나친 긍정도 불만스럽지만, 대체적인 맥락에 있어 학벌이란 문제에 대한 원인과 결과, 그리고 대안들은 너무나 명확하기만 하다. 유일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학평준화가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드는 것이라기보단, 그 길이 참 멀고 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68혁명을 통해 프랑스의 학생들은 그것을 이루어냈다는 얘길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여차하면 피를 좀 많이 보고야 가능하지 싶다.
여하튼, 낚인 것도 아니고 안 낚인 것도 아닌 사람들은, 아무래도 좋다. 이 책을 어떻게 읽었건 간에, 이것 하나만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뭐냐하면, 오늘날 우리의 대학서열체제, 학벌주의, 그 지독한 굴레하에 벗어나지 못하는 입시지옥, 돈 놓고 돈 먹는 학교, 승자독식의 정글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인간말종'으로 선발되고 길러질 뿐이라는 사실을. 제목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고민해 봤다. "인간말종 선발 지침". 하재근에게 이 제목을 권하지는 못하겠다. 이 제목으로는 책 팔기가 쉽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참 답답하고 갑갑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부분은, '언어'의 문제였다는 걸 고백하고 마쳐야겠다. 자유화, 경쟁, 자율 등등의 언어들이 학벌사회를 끊질기게 이어온 저 말종들에게 먼저 선점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답답함이랄까?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자유화는 진정코, 절대 자유화가 아니다. 자유가 난 그런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젠장. 경쟁은 좋은 것이고 '투쟁'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는 농후한 것 같다는 생각도 갑갑해진다. 경쟁과 투쟁은 뭐가 다를까? 아이들에게 한없이 경쟁하라고 하면서, 노동자들이 투쟁하면, 학벌타파 투쟁하면, 이것은 간간히 죄악이 되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프레임 싸움이라는 말들도 하는 것 같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재근을 비롯한 학벌타파의 주도적 세력에서 이 언어적 문제들도 심각히 고민해 주었으면 싶다. 많은 사람들이 '평준화'란 말 앞에 가로치고 '저질'을 새겨놓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지 싶다. 모르겠다. 두서없다. 젠장. 난 학벌이 안 좋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