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욕망공화국 - 어느 청년백수의 날카로운 사회비평서
신승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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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욕망'은 있다. 백수가 아니라 흑수(黑手)를 가진 저 아프리카 오지의 어느 청년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불특정 다수 혹은 개인, 즉 인간을 지칭하여 '(어느) 누구'라 하지만, 제시된 첫문장의 그 '(어느) 누구' 속에는 단지 인간만을 지칭하진 않는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언어학적으로 '욕망'한다는 것은 주체는 유정명사(有情名詞)이어야 할 것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정명사까지도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욕망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대한민국 욕망공화국』속의 '욕망'은 그 단어의 사전적 정의 및 철학적 정의(혹은 구분)를 언어학적, 사회과학적으로 철저히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할 때, 여기서의 '욕망'은 '(본능적) 욕구'에서부터 '의욕' 혹은 '욕심'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욕망'은 전천후에서 발동하고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식물이라도 그 자체로 성장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이 또한 욕망(욕구)라고 할 때에, "모든 것은 '욕망'한다"는 단언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 단언을 증명하자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욕망의 정의가 어떻고, 그 사전적 의미가 어떠하며, 그 용법이 어떻게 제한되어 사용되어야 할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저자 신승철도 그렇다고 보여진다. "이 책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지 연구하라고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욕망이라는 것은 간단히 "현 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생명에너지"다. 살고자 하는 모든 에너지로서의 '욕망' 속에는 세상의 무수히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는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는 섣불리 분류하고 구분하자고 나서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어쨌든 그러한 욕망이 어느 누구에게나 있고, 어떤 사회에서건 존재한다고 할 때, 굳이 대한민국이 '욕망공화국'입네 선언하고 자시고 할 필요성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애써 그렇게 부르짖는 이유는 이 "자연스러운 생명에너지"로서의 욕망이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종종 '유죄'가 되고 억압되며 통제되고 있다는 현실 분석, 현실 인식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회의 보수, 기득권층은 이전에 보이지 않던(실은 감추어져 왔던) 새로운(새로이 발견되는) 욕망의 표출을 질타하고 억압하려고 하는 것은 저자의 별다른 분석이 아니더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잖은가? 그러나 저자의 이런 선언이 그렇게까지 식상치 않은 것은 지금까지 이러한 욕망해방을 떳떳이 요구한 이들이 많지 않다는 반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짤막짤막한 칼럼형식의 글이다. 이러한 각각의 글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대한민국의 욕망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그러한 욕망들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고, 저자마에게 추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느슨한 차원에서 분석하고, 거기에 가해지는 사회적 억제까지도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부제에서 제시한 "날카로운 사회비평서"로서 기능하기에는 다소간 부족함을 보이는 '느슨함'이 있다. 백수의 삶속에 펼쳐지는 소소한 욕망들, 어린 조카를 통해 보는 연예인에 대한 애정 등에서부터 섹스, 휴대폰, 홈쇼핑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불특정 개인(혹은 다수)가 가지는 욕망의 모습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다수가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이다. 뿐만아니라 사회적 문제들, 그러니까 종교와 정치, 현 정권의 욕망 구조도 분석해 내고 있다.(다소 부족한 면(일단 양적으로)이 있지만)

이러한 저자의 욕망 분석이 보여주는 장점은 일단 저자의 체험에서부터 오는 솔직함이다. 개인적 자위, 폰섹스, 화상채팅, 일종의 동성애 경험 등의 다소간 지나쳐 보이는 솔직함은 씁쓸한 웃음까지 짓게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용기가 가상하다고나 할까? 저자의 경험이 이 대한민국이란 사회의 다양한, 수많은 저마다의 욕망을 섭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일부분 만이라도 개인의 솔직한 고백(?)을 들으면서 재미와 함께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적어도 나는) 그로부터 조카의 연예인에 대한 (기성세대가 볼 때는) 맹목적 욕망에 대한 억압적 기성세대의 태도에서 보듯이, 이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그 자연스러운 욕망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지, 나아가 (동성애, 대마초, 성매매 등을) 범죄시하는지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감이나 수긍은, 이 책이 제시한 '욕망공화국'으로서의 선언적 의미에 값하기에는 부족함이 따르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이 책이 아쉬운 대목이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도 이 정도의 공감과 수긍은 우리 사회에 있어오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보다 새로운 의미의 '욕망해방'의 선포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전부터 욕망이 지배해온 나라였고, 전세계 어느 나라나 사회가 다 그러했고,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새로운, 즉 저자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생명에너지"로서의 욕망의 해방, 곧 욕망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철저한 욕망의 분석, 욕망 구조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욕망을 순환시키는 경제, 리비도 욕망경제에 대한 대안적 연구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경로를 제시해 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욕망 코드는 탈코드화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제시해주는 길"이라는 저자의 설명처럼 이 책이 그 "현재의 욕망 코드"를 부분적으로는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탈코드화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며, 이를 이 책을 읽은 독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넓은 강을 건너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보았던 그 "욕망해방운동의 미래"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저자가 친절히 안내해 준 "라이히의 『성해방』과 가따리의 『욕망과 혁명』이라는 책을"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이 책들을 "꼴리는 대로" 읽기에는 부담 백만배다.(라이히의 책과 가타리의 책을 검색해 보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책은 대부분 절판 혹은 품절이다. 동명의 책 제목으로는 검색도 어렵다. 자주 들어본 이름들인데, 이렇게 절판과 품절이 맹휘를 떨치는 것은 참 아쉬운 부분이다.) 어쨌든 이 책을 비교적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간간히 웃을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저자가 보다 '날카로운' 욕망해방선언을 추후라도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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