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불렀던 '하여가'보다 더 유명한 것은 하여가의 원조격인 이방원이 불렀다는 일명 '하여가'란 시조다.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 건국에 그 공이 매우 컸다. 이후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로 인해 결국 두 차례의 난으로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된다. 그가 불렀다는 이 '하여가'하면 또 자연스러 떠오르는 것이 정몽주의 '단심가'다. '일편단심'의 처절한 사랑노래의 원조격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 「하여가(何如歌)」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 정몽주, 「단심가(丹心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냐? 저 산의 칡넝쿨 좀 봐라. 얼키고 설키어 잘만 살지 아니하냐? 고려면 어떻고 조선이면 또 어떻겠는가? 우리도 저 칡넝쿨처럼 얼키고 설키어 잘 한 번 살아보자고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이 노래를 전했단다. 어찌보면 이방원이 정몽주에 대한 애착으로 그를 설득하여 조선건국을 함께 하고자 하는 듯이 보이지만, 이래저래, 그냥저냥, 잘 살만 되지 않겠냐고 떠보는 폼이 썩 건방져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니 정몽주가 이방원의 진심을 못 알아볼리 만무하다.

이방원의 건방진 듯 떠보는 '하여가'에 답하여 안색을 고치며, 우문현답을 하듯이 단호하게 변절불가, 일편단심을 노래한다. 내가 골백번을 죽더라도, 죽고 또 죽어서 뼈가 문드러져, 한 줌의 넋이라도 존재치 않더라도, 어찌 두 임금을 섬기겠는가? 난 말이야 일편단심이라구. 결국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수하들에 의해 피를 토하고 죽는다.

이처럼 '하여가'와 '단심가' 속에는 여러가지 역사적 요소들이 녹아들어가 있다. 서로 그저 흥이나 돋구자고 주고받는 노래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늘날까지 불려졌고, 앞으로 불려질 노래들이 모두들 그러하겠지만, '하여가'나 '단심가'와 같은 시조는 무엇보다도 그 노래가 불려졌던 당대적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활상들이 밀접하게 관계된다.

정몽주나 이방원, 그리고 조선건국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그것을 시조를 통해 접하게 될 때 보다 흥미롭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조란 장르의 특색이 강하게 부각된다. 국어나 문학 시간을 통해 배우게 되는 일부 시조들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시조의 역사적, 문화적 속성들을 부각시켜 이해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조선후기에 지어진 사설시조류들 또한 당대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시조를 순수 문학적으로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시조에서 외재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내재적 의미만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가능은 하겠지만, 온전한 이해를 갖기에는 여러가지로 힘이든다. 이 점은 또한 시조를 배우고 익히기 어려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 편의 시조를 익히기 위해서는 당대의 역사와 문화를 폭넓게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시조가 고려말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조선 중기까지 사대부들의 전유물로서 기능해 오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그 작자층이 폭넓어지며, 시조의 깊이와 폭이 넓어지기에 이른다. 그럼으로 해서 시조는 다채로움을 획득한다. 사대부의 감회와 포부에서부터 당대 서민들의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시조는 다양한 생활상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흔히 시조를 고정된 형식의 틀에 갇힌 매우 딱딱한 장르로 인식하지만, 시조가 담아내는 그 다양함 만큼 비교적 다채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초기 시조의 형태가 단시조, 단가의 형태였다면, 이것이 차츰 연시조의 형태로, 조선후기 작자층의 변화와 더불어 사설시조라는 형태적 변이가 일어난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시조의 특징으로 알고 있는 '종장 첫음보의 3음절'의 제한도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간혹 4음절 이상도 보여진다. 시조가 어떤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유연하게 변화하는 포용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유연한 형식은 시조가 다채롭게, 그리고 손쉽게, 즉흥적으로 지어지면서 흥을 돋울 수 있게 한다. 시조란 말이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이라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본디 노래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여럿이 모인 즉석에서, 때로는 혼자서 감흥이 오를 때, 즉흥적으로 이런 유연한 형식에 가사를 붙여 불렀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시조의 특성이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주된 시가의 역할을 시조가 감당하게 만들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옛 노래인 시조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생생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시조를 보다 깊이 들여다 볼 때, 시조가 담아내고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다양한 당대 생활상들, 그리고 선인들의 내면을 대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시조는 "옛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그러한 시조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의 "사회와 문화의 내밀한 풍경화"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시조를 접하는 기회는 대부분 학교교육을 통해서다. 학교에서의 문학교육이 종종 비판받는 것이 문학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시험을 위해서 순 암기식으로 가르쳐진다는 것인데, 이는 시조에서 더욱 여실히 나타나는 문제다. 시조를 단순히 정형시의 특징들로서만 주목하고 가르쳐지며, 그것을 암기토록 강요하면서, 시조는 따분하고 고릿적 사람들의 얘기들로만 치부하게 만들고,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교육의 문제와 더불어 이제는 사어가 되버린 옛 우리말들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이 더하면서 시조를 수시로 읊고 감상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된다.

시조가 담아내는 옛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생활상과 내밀한 내면의 풍경들을 우리가 외면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이 책 김용찬 교수의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을 시조에서부터 처음 보는 시조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조를 담아내면서, 그것을 당대의 역사와 문화, 생활, 당대인들의 내면을 들추어내면서 올곧이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른다 시조로 보는 옛사람들의 문화사, 혹은 생활사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시조에 대한 딱딱한 설명은 제하고, 친절하고 정다운, 쉬운 말들로의 해석을 들려준다. 거기에 꼼꼼하게도 시조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시조 읽기를 더욱 재밌게 해준다.

우리가 옛 노래를 통해 당대인들을 이해하고 그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다만 옛것에 대한 앎으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오늘을 현실을 비추어보고,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보다 희망차게 그려보는 것이, 고전 읽기의 가장 큰 이유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담아내고 있는 시조 이야기들은 모두가 오늘의 현실과 관계된다. 저자가 몇 가지의 테마로 엮을 여러편의 시조들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치와 문화, 생활상들에 대한 반추와 반성, 그리고 그로부터의 새로움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그간 외면받아 온 우리 고전시가, 특히 시조로의 충실한 여행 길잡이가 아닐까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를 따라 참으로 흥미롭고 즐겁게 시조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가령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무척 재밌고 익살스런 시조들을 보면서, 옛 선비들의 그 익살스런 내면풍경들을 엿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시조들 말이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玩月長醉) 하려뇨.  - 이정보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請)하옴세
백년(百年) 덧 시름없을 일을 의논(議論)코저 하노라.  - 김성최

 
   

옛 사람들의 술타령이라고 해야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술을 마시는 사연들은 모두들 제각각이었으면, 술로 벗을 부르고, 세상의 시름을 한꺼풀 벗어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조들을 통해 몇 백 년 전의 선인들과 교감하고 동감할 수 있는 것이 사실 놀랍기까지 한 일이다. 이렇듯 시조는 선인의 깊은 내면들을 다채롭게 담아내고 있는 거의 유일한 문학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인지를 이제는 충분히 알 수 있겠다. 보다 구구절절한 시조 속에 담긴 '조선의 영혼'들을 직접 감상하고 저자 김용찬의 안내를 받아보는 것은 재미난 일일 것이다. 끝으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대목은 시조 놀이라고 할까? 사랑 놀이라고 할까? 다음 시조를 소개해야겠다.

   
 

북천(北天)이 맑다커늘 우장(雨裝) 없이 길을 나니
산(山)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 임제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 한우

 
   

임제는 조선시대의 문인이다. 한우는 그 유명한 평양 기생인데, 위의 두 시조는 당대 문인과 명기의 절묘한 화음으로 빛난다. 그리고 익살넘치고 음흉한 임제의 수작걸기와 한우의 재치넘치는 화답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하게 한다. 한우(寒雨)는 말하자면 차가운 비, 그러니까 찬비다. 그래서 임제가 종장에 "찬비를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는 중의적으로 읽힌다. 평양 기생 한우를 만났으니 함께 어울려 자지 않겠느냐는 노골적 수작인 셈이다. 이에 대한 한우의 화답또한 기막히다. 임제가 (추위에) "얼어" 잔다니까, 왜 따뜻한 "원앙침 비취금" 나두고 얼어서 자느냐? "오늘은 찬비 맞"아서 추우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원앙침' 베고 따뜻하게 "녹아" 자야지? 하는 것이다. 참으로 명문장가의 능청스런 수작에 명기의 재치넘치는 화답이다.

시조의 재미는 이런 즉흥성에서 나타나는 재치와 익살, 그리고 놀이적 특성이다. 장기말을 소재로 절묘한 시조를 지은 소백주의 시조 또한 우리를 놀랍게 한다. 이런 다채로운 시조를 통해 다양한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사족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현행 우리의 문학 교육, 특히 시교육에서 이런 시조의 특성들을 폭넓게 이용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시조의 유연한 틀(형식)을 이용한 간단한 시(시조) 짓기라든가, 재치와 순발력을 발휘한 글쓰기 등은 시조를 지어봄으로써 효과적으로, 더불어 재미와 함께 기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시조를 감상하고, 거기에 담긴 옛선인들의 자취와 내면들, 그리고 옛사람의 생활과 흥취를 생생히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이런 작업이 고전시가 전반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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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22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고전문학의 안내자는 역시 멜기님이에요!
임제...그 무덤이 우리 집에서 목포 가는 길에 있어요~~~
광주이벤트는 6월 14일 토요일 오전 10시 광주역에서 집결...가사문학의 산실 담양 돌아보기인데 시간 좀 내 보세요!!

멜기세덱 2008-04-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천에서 광주까지~~ 오전 10시면? ㅋㅋㅋ
제가 내일 일을 도통 모르고 삽니다.... 그때쯤 가봐야 광주이벤트의 수혜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