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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1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지식, 지식 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건 도무지, 괜찮을 수가 없다. 무슨 지식이 이래? 이런 지식은 영 심기가 불편해지고, 눈물이 나고, 부끄러워져서, 이녹이가 쓰던 썬글라스가 필요해 진다.(이녹은 홍길동이 준 썬글라스를 부끄러울 때나, 눈물이 날 때면 쓴다. 너무 단순해서 자기 눈에 보이지만 안으면 아무도 자기를 못 보는 줄 안다. 그래서 맘대로 부끄러워도 되고, 맘놓고 울어도 된다.) 그러나 이 지식을 알고 나면, 도무지 이 썬글라스로도 달랠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이라고 했다. 가슴으로 '감동'하면서 읽는 '智識'이라고 했다. '지혜로운[智] 앎[識]'이라고? 도대체가 이게 어떻게 '지혜로운 앎'이 될 수 있지? 어떻게 이걸 가슴으로 읽을 수 있지? 어떻게 감동할 수 있지? 운디드니에 묻힌 성난 말의 죽음이 어떻게 지혜로운 앎이 될 수 있지? 커피 한 잔에 담기 저 불합리한 이윤 착취를 어떻게 가슴으로 읽을 수 있지? 햄버거 때문에 파괴되는, 죽어가는 환경과 자연을 읽고 어떻게 감동할 수 있지? 이 모든 불편한 진실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지혜롭게 하겠다는 거지? 도통 난 동의할 수가 없는 '智識'들이다.
이런 걸 지식이라고 가슴으로 읽고 감동하기엔 너무나 불편한 진실들이다.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하고도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피부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539시간 동안 일하고 받는 임금이 고작 70만 600원인 이들이 있는 것은 또 어찌하고? 오늘도 어디선가는 외톨이로, 왕따로 어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이 있지는 않을까? 몇 개의 번호로만 남아 기억되는 5.18의 영령들을 무엇으로 위로하겠는가? 이런 것들은 담고 있는데, 어떻게 이게 한가하게 감동이나 하고 앉아있을 지식이겠는가?
제발, 이것을 더 이상 지식이라고 말하지 말자.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하고, 폭발하는 행동이 되자.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질질 짜면서 감동받고, 극장을 나와 좋았다면 그만이던 그런 싸구려 감동이 되서는 안되는 진실들, 이녹이의 썬글라스로도 감출 수 없는 이 거대한 불합리의 역사들, 여전히 착취당하고 억압받고, 굶주리고, 죽어가고, 고통받고, 미약한 힘으로 투쟁하는 그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이상에는, 그들의 그 현실로부터 한가한 감동이나, 지혜로움을 얻는다는 것은 못할 짓이다. 감동할 시간도, 눈물 짤 시간도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주춤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문제다. 이렇게 떠드는 나 조차도. 어쩌겠는가? 이런 불편한 진실들에 감동은 고사하고 애써 외면하고 모른체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은 걸. 또한 어쩌겠는가? 너무나 불편해서 왜곡하고 포장하고, 숨겨버리는 인간들이 있는 걸. 그들이 가려놓은 세상에서 그저 나 편한 것에 만족하고, 나 배부른 것에 만족하고, 나 대접받는 것에 고마워하며 사는 사람들이 우린 걸.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불편한 진실의 원인자들이 되는 걸. 나 조차도.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울음을 참느라 애썼고, 감동하지 않으려고 용썼으나, 울지 않을 수 없었고, 마구마구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밖에는 내가 뭘 어찌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고 마구마구 울고 있는 것 밖에는, 혼자는 그냥 화만 내고 말 수 밖에 없는, 그저 그럴 수 밖에 없는 내가 아닌가? 우리는 아닌가? 아 도무지 괜찮지가 않다. 괜찮지가 않잖아!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왜 이걸 智識이라고 했을까? 왜 가슴으로 읽으라고 했을까? 감동을 느끼라고 했을까? 그래, 가슴으로 읽고 감동했으니 된 걸까? 그런 난 지혜로운 앎은 얻은 걸까? 그럼, 知識이 아니고 智識인 이유는 뭐지? 智에는 知가 갖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세상을 밝혀주는 태양[日]이다. 이 불편한 진실로부터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知가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따뜻한 햇빛으로서의 智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그래서, 더, 괜찮지가 않다. 괜찮지가 않잖아!
이 리뷰를 너무나 순하여 옥 같이 아름다운 분께 바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