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은 이래저래 바빴다. 봄을 맞아서 해야 할 일들이 밀려들었다. 봄이어서 그런지 이런 바쁜 일상 속에서도 생동하는 느낌을 갖지만, 그래도 바쁘고 정신 없는 건 딱 질색이다. 내 본질적 게으름일지, 대다수의 바쁜 일상에 대한 반항적 게으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바쁜 것이 좋은 것이고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바쁘게, 주위를 돌아다 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을 볼 때, 내가 다 어지럽다. 예전 군대에서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을 '바쁘게' 읽은 적이 있다. 세 권이나 나왔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세 권을 다 읽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몇 권 없는 소대의 책꽂이에 이 책이 꽂혀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 때는 책 읽을 만한 여유로운 짬밥이 아니었던지라, 눈치코치 살펴가며 '바쁘게' 읽었다. 그래서인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척 궁금했지만, 진정으로 그 의미를 깨닫지는 못했다. 그래서 제대하면 다시 찬찬히, 제대로 '느리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그 생각을 이루지 못했다. 하여간 바쁜 탓은 아니었던 걸로 안다.
(어라! 그 새 4권도 나왔네.)
** 아침부터 서울서 일이 많았다. 지금까지 사교육을 혐오하고, 나 자신도 사교육을 혜택을 받은 바가 없었지만, 이 땅에서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어쩜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는 강하게 든다. 그래서 요새는 고시생들이 칩거하는 옆동네에서 토요일 오전엔 기웃거린다. 사실 뭔가는 해야겠는데, 내 스스로의 의지로는 그 뭔가를 하기가 너무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사교육과 손잡았다. 여전히 공부는 안 되지만, 토요일 아침을 잠으로 허비하지 않고 깨어 있게 해주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낮에는 바둑 동호회 모임엘 가서 바둑 몇 판을 두고 왔다. 변화 무쌍한 바둑의 세계에서 나는 한갓 하수에 지나지 않지만, 361개의 바둑판은 하수의 돌을 가리지 않는다. 내 무모하고 허접한 인생의 수를 놓을 세상의 바둑판은, 그리 썩 보이지 않아서, 나는 그저 바둑을 두는 것에 무력하게 심취하게 된다.
*** 세상이 자꾸 거꾸로 가는 것 같다. 구 시대적 발상이 광기를 선동하는 것일까? 삽질의 신화로 경제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세상, 이런 세상에 자꾸들 몰입하면, 적어도 미국에 가서 어륀쥐는 사먹을 수 있으려나? 오늘, 지하철 1호선 막차를 타고 주안역에 1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버스는 모두 끊기고, 비가 오는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았다. 나도 택시를 타야해서 역 앞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이상한 것은 승강장으로 마련된 지붕있는 공간은 텅 비어 있고, 죄다들 우산을 쓰고 승강장 반대로 줄을 서 있다. 나는 어쩌라고? 나는 승강장에서 혼자 우뚝하게 서서 택시를 기다려봤다. 하지만 택시는 내 반대로 줄을 서 있는 우산쓴 사람들 차지였다. 내가 선 옆으로 어느 중년 부부가 무거운 짐을 들고 다가왔다. 여기가 택시 타는 줄 맞냐고 묻는다. 나도 택시를 타려고 하는 데, 이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우산 쓴 사람들의 줄을 본 그 중년 부부는 뭐가 뭔지를 몰라 했다. "비 오는 데, 왜 다들 승강장에서 줄을 서지 않고 거기들 비맞고 있어요?" 그 부부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우산을 들고, 그들은 줄을 서서 간혹 오는 택시를 자기들 줄의 순서대로 탑승했다. 나는 몇 분을 그냥 우둑하니 혼자 서 있다가, 비를 맞으며 조금 먼길을 돌아, 택시가 종종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