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을 꿋꿋하게 버텨 온 숭례문(崇禮門)이 단 5시간만에 무너져 내린지도 열흘이 되어간다. 국보 1호라는 위상에 걸맞게 그 무너짐도 비장해보였다. 숭례문이 왜 국보 1호를 등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수도 서울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 현대 대한민국의 어떤 상징성이 강하게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문화재에까지 서열과 순위를 매기고 그 중요도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렇게 숭례문을 1등을 자리에 올려 둔 이들이 그토록 무참히 무너져내리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은 오늘날 순위와 서열 매겨지는 사회의 뻔한 앞날은 아닐런지 심히 걱정된다.

예를 높이고 숭상한다는 숭례문이 무너지는 순간, 바야흐로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禮'는 숭상받을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유교적 의미에서 禮가 왜곡되고 관념화되어 허례허식으로 치우쳐져 이제는 버려야 할 것이라는 편견이 생겼지만, 본디 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자에게 있어 예는 "몸가짐을 바로 하고 표정을 단정히 하는" 것에서부터[禮義之始, 在於正容體, 齊顔色] 시작된다. 그리하여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강조한다. 각 개인의 몸가짐과 행동에서 먼저 예의를 지켜 행하는 것이 공자의 예였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실을 외면하고 관념화 되면서 왜곡되고 폐해를 낳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선이 무너졌지만, 현재에는 숭례문이 무너졌다. 현실에 맞지 않는 예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유교주의 사회 조선이 무너졌다면,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예 조차 지켜지지 못해서 '숭례'의 상징 숭례문은 더이상 그 자리를 버티고 설 면목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예가 아님에도 돈이 되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일말의 예가 남아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서 숭례문은 임란 호란을 이겨내고, 동족상잔의 비극까지도 감내해왔지만, 예조차 남아있지 않은 이 현실에선 라이터 불꽃에서 시작된 그 화염에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고 했지만, 대통령도 장차관도 모두 최고의 CEO일 뿐이고, 아비는 자식을 죽이고 학대하고, 자식은 부모를 버리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숭례문은 무너졌어도 벌써 무너졌어야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숭례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숭례문이 불타 무너져내리던 그 5시간 동안 나는, 앞으로의 대학민국 5년을 보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것도 같다. 발화 초기 연기만 나던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화재가 순식간에 제어할 수 없는 화마로 돌변하기까지 우리 소방당국은 물만 뿌려댔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라가 무너지고 황폐화 되어가는 이 시기에 등장한 새 대통령이 "경제는 꼭 살리겠다"는 소리만 줄창 해대는 것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와 함께 오버랩 되는 것은 인수위원장이 어륀지인지, 오륀지인지 모를 소리를 해대며 몰입하라고 강권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요, 세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저 시골 5일장에서 이빠진 할머니도 살아남기 위해선 어륀지 해야할런지 모르겠다. 기와를 걷어내고, 뜯어서 그 작은 불의 원천을 꺼야 한다는 것을, 명박이도 경숙이도 몰랐던 것일까? 경제만 살려 놓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에 붙은 이 불이 꺼질까? 5년후 대신 무너져 줄 숭례문은 이제 없지 않은가?

한미FTA만이 살 길이라는 소리도 저 많던 수십대의 소방차에 불과할 뿐이다. 숭례문이 불타던 자리에 어느 누구도 공자가 말하는 "君君, 臣臣, 父父, 子子."를 다하던 이는 없었더랬다. 어느 인터뷰에서 외국인의 말은 뼈아프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숭례문을 관리했더라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거라며 우리만큼이나 안타까워 했다. 국보 1호라며 귀하게 여기던 숭례문을 벗겨놓으면서 가림막이라도 쳐 줄 사람 하나 세워놓지 못한 명박이는 아직 사과 한 마디 없다. 성금 모아 복원하자고 되로 줬다가, 헌납한다던 300억으로 해라며 말로 받았다. 그러나 그 꼴도 눈사나워 못보겠다는 성토가 이어진다.

일본놈들이 붙여줬다고 그러는지 '남대문'하면 영락 없이, '남대문'이 아니고 '숭례문'이 맞다고 하는데, 오히려 남대문은 다른 것을 상징할 때도 많다. 그럴때 남대문은 南大門인지 男大門인 것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지만, 분명 그것은 남자들의 중요한 대문이었고, 남대문이 열리면 인사를 꼬박꼬박 잘 했더랬다. 남대문이 열리면 참 민망하다. 그도 속옷이나 제대로 있었으면 모르지만, 꼬질꼬질 한 팬티를 입고 있다면 못 볼 일이다. 더욱이, 노팬티라면 할 말 없다. 대한민국의 '남대문'이 열렸는데, 알고 봤더니 노팬티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대통령 (당선자하면 안 되고) 당선인은 경제만은 살리겠다고 하고, 전봇대 뽑으라고 명령했더니 하루 아침에 뽑혔다고 자랑하고, 자기는 매일매일 변하는 인간이라고 하고, 대한민국 통째로 땅파서 걸레만들어 놓겠다고 한다. 참 정안가는 경숙씨는 미국가서 오렌지 사먹기 힘드니 어륀지 사먹자고 하고, 자꾸 어디엘 그리 몰입하자고 하고, 당선인 찬양하기에만 바쁘다. 같은 교회 장로, 권사가 잘 어울려 노니 에구 아름다워라. 그 밑의 인수위원인지 자문위원이지 하는 것들을 이곳저곳 돌며 장어구이 식당을 인수하러 다니는 것은지, 방송가를 인수하려고 하는 것인지, 여튼 그 인간들은 짤렸지만, 나머지 인수위원들은 지금 다른 걸 인수하려고 맘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쯤하면 막하자는 거"라던 노무현의 말은 여기서도 썩 어울리는 언설이다. 숭례문이 무너져내렸는데, 사실 예서 더 막장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5년 후, 무너질 것은 뻔하다. 경제라는 물만 뿌려대겠다는, 영어만 잘 하면 최고라는, 여기저기 땅만 파면 되는 거라는, 대한민국의 5년이 그들의 손에 있는 한, 숭례문처럼 그렇게 무참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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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2-20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을 하리요!
애들도 한숨 쉬는 우리 미래가 뻔하게 보이는데.ㅠㅠ

마노아 2008-02-2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 사설 보는 줄 알았어요. 멜기세덱님 얘기 모두 옳아요! 그래서 슬퍼요ㅠ.ㅠ

bookJourney 2008-02-2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한숨이 나오네요.
그냥 추천만 꾸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