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을 나서려다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 눈이구나! 점퍼의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장갑에 손가락을 꼼꼼히 쟁겨놓고 내리는 눈을 맞으며 길을 걸었다. 눈길을 걸으면서 포근하고 내리는 눈이 좋았다. 뽀드득 소리만큼 발걸음이 가볍다. 아 그래, 겨울은 눈이 와야 겨울답지!
문득 어제 뉴스 한 컷이 떠올랐다. 삼성 본관 앞에서 태안 어민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 그런데 그들의 시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사정인 즉, 30분만 하고는 다시 방제작업을 하러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그래, 그들은 방제작업이 중요한 거지!
눈을 맞으며 눈길을 걷다가, 이 겨울은 겨울답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 아니 겨울답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오면 방제작업이 더욱 힘들어질 테니! 이내 가볍던 걸음이 무거워졌다. 눈이 온다고 강아지 마냥 좋아만 할 일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그런 것일까? 간혹 이것도 어쩌면 위선의 여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어김없이 오늘은 어떤 책들이 내 눈길을 끄나 살펴본다.
[역사]
문명식 외, 『조선 블로그』, 생각과 느낌, 2008.
역사와 블로그의 만남. '역사와의 새로운 접속, 21세기에 조선을 블로깅하다"란 부제의 이 책은 신선하고 색다른 시도로 역사를 풀어낸다. 라주미힌 님의 소개를 보고 흥미롭게 생각하던 차에, 얼마 전 서점에서도 확인해 보니 역시나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보니 라주미힌 님의 리뷰가 올라와 있어 참고해 보셔도 좋겠다.
[인문/종교]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알마, 2008.
이 책은 며칠 전 로쟈님의 페이퍼와 리스트를 보고 알게 되었다. 오늘 보니 신간 목록에도 올라와 있다. 지난 번 눈길주기에 도킨스를 비판한 『도킨스의 신』과 『도킨스의 망상』이란 책을 올렸는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 책은 도킨스의 지원군인 셈이다. 히친스가 또한 꽤 이름난 사람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책과 함께 로쟈 님의 페이퍼로부터 히친스의 책 몇 권을 더 알게 되었다. 이 참에 눈길주기에 함께 올려 놓아야겠다.
[인문/종교]
크리스토퍼 히친스, 『자비를 팔다』, 모멘토, 2008.
위의 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와 동시에 출간된 책인듯 하다. 비판이 금지된 줄만 알고 있던 '마더 테레사'에 대한 정면 비판 서적이다.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히친스는 이 책으로 지옥에 갈 것이다." 이 한 마디로 이 책의 비판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고전/중국시가]
왕유, 『왕유詩全集』, 박삼수 역주, 현암사, 2008.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당나라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왕유의 시 전집이다. 이런 왕유의 별칭은 이름하야 시불(詩佛)이다. 시에 관한한 부처님 경지라는 얘기다. 나는 현암사에서 나온 것 중에 이백과 두보의 시선집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나온 왕유의 것도 이백과 두보 옆에 나란히 꼽혀야만 한다. 그럼 나는 시선과 시성과 시불을 보유한 셈이 되는 건가? 행복한 상상이다.
[사회/정치]
이해영 외, 『한미 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 시대의 창, 2008.
‘정인교 VS 이해영 맞짱토론’이란다. 알만한 사람은 알듯이, 이 둘은 한미FTA에 관한 한 극과 극을 달리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얼굴 맞대고 맞짱을 떴다. 책이 나온 것 보니 주먹은 오가지 않았나보다. 싸움 구경이 빼놓을 수 없는 재밌는 구경이라지만 이 싸움을 재미로만 볼 수는 없겠다. 예상대로 결론이 나지는 않았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맞짱뜨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설득하고 설득되는 무언가가 있기도 할 테니까.
[역사/문화]
이옥, 『연경, 담배의 모든 것』안대회 역, 휴머니스트, 2008.
18세기 조선의 문인 중 가장 개성 넘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옥일 것이다. 그의 저서 중에 독특하게도 담배에 관한 것들이 있다. 이 책은 그것을 번역한 것이다. 일단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지만, 이옥이란 매력 넘치는 문인의 글이라기에 더욱 눈길을 빼앗는다. 담배에 관한 옛 사람의 생각이 어떠했을지 무척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