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글새소식》423호(한글학회, 2007.11.)에 실린 국어학자 고영근 교수의 글을 옮긴다. 수긍이 가는 대목도 있고, 좀 지리하지 않은가 하는 대목도 있다. 간혹 시비도 걸어보자.

문법에 맞는 표현을 골라 쓰자 - 고영근(서울대 명예교수, 국어학)

지하철을 타거나 병원을 찾으면 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표현을 더러 접한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와 같은 표현은 '내리시는 ……'로 바꾸어야 한다. 미래의 일을 표현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확정적이거나 보편적인 사실에 관련되는 '-는'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주차장의 '出口'와 '入口'를 우리말로 다듬은 표현이 '나오는 곳'과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 '내리시는 ……'이 옳다는 것을 누구든지 수긍할 수 있다. 병원에서 흔히 보는 '복도 앞으로 들어오실 분', '여기서 순서를 기다리실 분'과 같은 말씨도 당연히 '…… 들어오시는 분, …… 기다리시는 분'으로 다시 고쳐야 한다. 높임의 '-(으)시-'를 끼워넣는 것도 그렇게 좋지 않다. 특히 지하철의 '내리시는 문'은 '내리는 문'이 더 자연스럽니다.(이건 지하철공사에서 가급적 빨리 바꾸면 좋을 것 같다. 간혹 지하철을 탈 경우 차내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거북하게 느낀 적이 많다.)

약국이나 병원에 가면 "오늘 5일분 약이 나가십니다."와 같이 존경의 '-(으)시-'를 사용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으)시-'는 주어가 존경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할 때 붙이는 것인데 '약'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청자를 의식하여 '-(으)시-'를 붙이는 것으로 보이나 이런 말씨는 문법에 어그러지는 과잉공대의 예이다.(약국이나 병원뿐만 아니라, 백화점이나 쇼핑몰, 그리고 각종 전화안내 등에서 이런 과잉공대가 많다. 과잉공대인지 잘못된 공대인지 잘 모르겠다. 한때 YTN에서 골프 강좌를 하던 세미프로는 시종일관 이런 '~십니다.'로 일관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이런 것은 문법을 떠나서 좀 지나치다 싶다. 우리말의 존대에 대해 일각에서는 문제의식을 보이고는 있으나, 그것을 오랜 전통이고 문화로서 인정하고 수긍하는 편이다. 그러면 이런 과잉공대는 좀 지나쳐 보인다.) 전화로 자신을 소개할 때 '김XX 변호사입니다', 'XX일보사 박XX 기자입니다', 'XX대학교 정XX 교수입니다'란 말을 예사로 듣는다. 얼마 전 일본 교수에게 일본에서도 이런 말을 쓰는가 물어 보니 어떻게 자기가 자기 자신을 높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였다. 원래 직위나 직책은 'XX신문사 사회부 기자 XXX입니다'와 같이 성명 앞에 붙여야지 뒤에 붙이면 자기를 높이니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를 객관화시킬 때에는 "XX회사의 김XX 과장에게서 전화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라고 쓸 수 있다.(이 점은 이미 입에 굳은 표현이 된 것 같아 뭘 이런 것까지 시비를 거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지, 자신의 직책이나 직위를 붙여 권위를 들어내려고 하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꼭 있는 놈들이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신문지상이나 방송매체 등의 제호에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행동을 요구할 때 명령형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이런 상황은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직접 명령형을 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최근의 신문의 제호를 보면 직접 명령형을 사용하는 일이 자주 보인다. 학교문법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상대로 행동을 요구할 때에는 '-(으)라'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받침 아래에서는 '-으라'를, 모음이나 'ㄹ' 받침 아래에서는 '-라'를 쓴다는 것이다. '교장 고소하게 부모 도장 받아 와라, 탈당 의원들은 행선지를 밝혀라, 시정 연설 대통령이 직접 해라'에 나타나는 '~와라, ~밝혀라, ~해라'는 모두 직접 명령형으로서 당연히 '오라, 밝히라, 하라'로 바꾸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간접 명령형어미 '-(으)라'는 중세 이래 광복 후의 남북한과 재외교민(고려인)의 언론매체에서 거의 정확하게 사용되어 왔다. 이런 경우 간접 명령형을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면 '수재민을 돕자'와 같이 청유형을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주어가 화자와 청자의 합동이어야 한다.(신문이나 잡지 등에서는 또한 자주 보이는 오류는 인용할 때이다. 우리 문법에서 인용에는 간접인용과 직접인용으로 나뉜다. 신문 등에서는 직접인용의 경우가 많은데, 그때 어미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신문들이 보다 우리말 문법에 맞게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년과 금년에 걸쳐 우리 고대의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여러 편 방영되어 왔다. 이들 사극에는 명령형어미로 예외 없이 '보이거라, 칼을 뽑거라, 들라 하거라, 앉거라, 술이나 마시거라, 말해 보거라'와 같이 어간에 '-거라'를 붙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거라'는 '거라' 불규칙활용이라 하여 '가다' 등의 일부 자동사에 쓰인다는 것을 누구든지 안다. 앞의 예는 '보여라, ~뽑아라, ~하여라, 앉아라, ~마셔라, ~보아라'로 고쳐야 한다. 언론매체에서 규범에 어긋나는 말씨를 쓰면 그 영향력은 걷잡을 수 없다. 극작가나 연출가는 이런 점에 유의하여 출연자들이 규범에 어긋나는 말씨를 쓰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이것은 고영근 교수의 설명이 전적으로 맞으나, 현대 언중에게 있어 이런 구분은 모호해졌다. 고영근 교수대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말 교육을 제대로 안 받은 사람들일테다. '-거라' 불규칙이 무의식적으로 지켜지고는 있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별반 오류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런 불규칙의 규칙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사극에서의 '-거라' 남용은 어느 정도 문제라고 보여지지만, 그것이 보다 고어적 표현 효과를 잘 드러내주고 있어서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씨 가운데는 입말에 알맞은 것이 있고 글말에 더 어울리는 것이 있다. 같은 명령형어미라 하여도 '-어라'는 입말에 어울리고 '-(으)라'는 글말에 어울리는 형태이다. 말을 주고받을 때에는 직접 명령형어미 '-어라, -아라, -여라, -거라, -너라'를 문법에 맞게 써야 하고, 글말을 작성할 때에는 -으라'는 받침 있는 말 아래, '-라'는 모음과 'ㄹ' 받침 아래 써야 한다.

국어문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보급이 절실하다. 정확한 문법 지식은 맞춤법과 논리에 맞는 글을 쓰고 정확한 말씨를 골라 쓰는 기반이 된다. 실종된 문법교육의 강화가 시급하다.(맞는 말이다. 문법교육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긴 하다. 옳은 말씀이긴 한데, 공허해 보이는 건 왜일까? 이런다고 실종된 문법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애초에 문법이 실종된 적은 없다. 조금씩 성형수술을 해서 이전의 문법을 못 알아볼 따름이다. 문법교육의 강화는 어문 규범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창조적 사고력이라던가 언어가 가지는 여러가지 특성들을 창의적으로 탐구하게 하는 학습의 하나로 기능해야 할 것이다. 문법을 통해서 언어의 특성을 인지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언어를 가지고 논다면 어문규범이 그리 심각하게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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