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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한국인 - 중독과 거리두기 사이에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어느 시대에나 논쟁은 있었더랬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한복음 1:1) 말이 있는 곳에 논쟁이 있다. 곧 인간의 논쟁은 '태초'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논쟁이 없는 사회는 더이상 사회가 아닐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나, 왜곡된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논쟁은 있었더랬다. 다만 숨죽인 논쟁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어느 정도 큰 틀에서의 논쟁의 역사이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논쟁의 추이를 따라가보는 것은 사뭇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 시대 논쟁의 주역을 꼽자면, 이 사람 강준만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폭넓은 문제적 사안들에 강준만은 빠지지 않고 참견한다. 넉살이 좋은 것인지 이곳저곳 껴들지 않는 데가 없다. 그들 이런 참견을 두고 혹자들은 강준만의 오입질에 눈쌀을 찌푸린다. 때론 지나치달 정도로 안 껴드는 곳이 없는가 하면, 또 한편으론 강준만이 오죽 답답했으면 시시콜콜 그렇게 참견질을 하겠는가 하는 어느 정도의 수긍도 간다. 이런 강준만이 있기에 잠잘 뻔 했던 우리 사회 곳곳의 문제들이 들추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 의미부여를 해 볼 만도 한 일이다.
사실 내가 강준만이란 인물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간의 내 관심사에 강준만은 그 주변부에서도 머무르지 못 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강준만의 '오입질'이 내 관심사 주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한국 문단의 신진 문인들과 더불어 '문학권력'을 비판이 일기 시작할 무렵, 강준만은 빠지지 않고 『문학권력』으로 내 관심사의 경계를 침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강준만 따라 읽기는 시작되었다. 그의 글들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다루는 것들이 다분히 '논쟁적'이어서, 싸움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의 논쟁을 따라가면서부터 나의 관심사의 외연이 점차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얼마전 강준만의 『인간사색』이란 책을 읽다 말았다. 강준만식의 글쓰기를 한마디로 평하자면 '짜깁기'라고 하면 어떨까? 거기에 몇 마디 수식을 붙여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테면 '절묘한' 혹은 '창조적' 짜깁기라고. 그는 그간 내게 '짜깁기'에도 수준이 있고 품격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논지와 주제에 알맞은 다양한 텍스트들을 절묘하게 인용하는 능력은 강준만이 가장 뛰어나지 않을까? 그런데 그간의 읽기에서는 이런 것이 나름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었던데 반해, 『인간사색』에서의 그의 짜깁기는 그런 절묘함과 창조성을 거의 갖지 못해, 읽기에 지루함과 괴로움만을 더해 주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강준만식 짜깁기 수준의 고저를 『문학권력』과 『인간사색』을 비교해보면 그 극과 극을 맛볼 수 있을 듯 싶다.
『인간사색』을 읽다가 치워버리면서 어느 정도 강준만에 대한 허망함을 느꼈다고 해야겠다. 그런 중에 이 책『고독한 한국인』이 나온 것인데, 다소간 이 책을 선택하는데 망설임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논쟁적 강준만에 대한 중독을 끊을 수는 없었지 않나 싶다. 그렇게 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고, 그간의 강준만식 짜깁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그의 글쓰기를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가 <한겨레21>과 월간 <인물과사상>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의 시론, 칼럼적 성격의 이 글들은 강준만식 글쓰기의 진수라고 하면 어떨까? 참견하기 좋아하고, 문제들을 들추기 좋아하고, 여기저기서 논쟁을 불씨는 당기기 좋아하는, 문제적 · 논쟁적 인간 강준만의 본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한국인'이란 타이틀 아래 묶인 30편의 글들이 이런 맛들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지속적으로 두드려 온 대통령 노무현과 유시민, 그리고 정치권에서부터 보수세력의 든든한 지원군 이문열을 큰 테마에서 다루고 있고, '대중의 고독'이란 테마 아래에서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고독성'을 강준만의 필치로 담아내고 있다. 아울러 지방 소외의 문제들을 적시하며 강준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간 강준만이 자주 다루어 왔던 것들이지만, 1장의 '대중의 고독' 편에 모인 글들은 강준만이 얼마나 다양한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나 대중가요의 '사랑타령'을 풀어낸 글에서는 세월따라 흘러간 대중가요를 흥얼대는 '노래하는 강준만'을 상상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이 책에서의 재미는 치고 받고, 되치는 강준만의 열띤 논쟁의 추이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유별한 강준만의 사랑 혹은 애증을 이 책에서 확인하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강준만은 왜 이리 논쟁적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강준만은 그래서 다분히 문제적이다. 아니 문제적이기 때문에 논쟁적 인간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했듯이 한국인은 고독하기 때문일까? 강준만도 한국인의 한 사람이기에 그 또한 고독하다. 고독한 인간 강준만에게 논쟁은 그의 고독해결의 유일한 통로일 수도 있지 싶다. 무엇이 먼저고 나중인지 알 수 없지만, 논쟁의 한 가운데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강준만은 어느 곳엔들 몸둘 데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고독할 밖에. 고독에 치여 숨죽이고 있자니 강준만은 참을 수 없어 사회 곳곳의 문제들에 불을 붙이는 이 시대 고독한 논쟁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책 날개에서 강준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매일 글을 쓴다. 끊임없는 글쓰기를 통해 학문간의 경계, 전문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학문 신비주의에 갇혀 있는 지식을 대중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또한 그가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지 싶다. 하여간 고독한 인간 강준만의 논쟁은 우리를 흥미롭게 한다. 그러나 흥미를 넘어 강준만의 지적에 대한 일말의 깊은 사려를 우리가 보여주어야 그의 논쟁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