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우리말이 살아온 모습을 찾아서
시정곤 외 지음 / 고즈윈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속담이나 사자성어, 격언 같은 관용어구들의 그것들이 속한 사회에서 일종의 지침 혹은 교훈으로서 기능한다. 선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농축된 후인들에게 내리는 뼈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간혹 우리의 언설에 이런 관용어구를 곁들이면 제법 그 표현효과가 확연히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관용어구들 중에 어느 사회에서거나 빠지는 않는 것은 '말'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조사해 본 바는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가장 많은 속담이 이 '말'과 관련있다. 우리만 하더라도 일일이 꼽자면 꽤 긴 시간을 요할 터이다. 그런 관용어구가 전달하는 중심내용은 주로 '말 조심' 혹은 '말의 중요성' 등이다. 하나만 떠올리면 "말 한 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세 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언설도 흔하다. 이게 모두가 선인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깨달은 지혜다. 그들에게 '말'은 그만큼 중요했다는 걸 의미하는데, 이는 오늘에도 전혀 변함이 없다.

'언어적 인간(Home loquens)'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언어로부터 시작되었고, 인간이 끝나는 말은 언어가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 혹은 기타 생물들과 다른 점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인간의 사고의 운용도구라고도 할 만한데, 인간은 언어적으로 사고한다고 하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 머리 속의 생각이라는 것도 생각이라는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언어적으로 구성되어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이런 의미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이전에 인간은 언어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이 '언어'가 구성되고 형성되는 그 요소들이다. 언어가 다만 음성기호의 체계로서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수만가지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을 품고 있다. 사고와 사유의 기본틀도 언어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이 '언어'에 내재된 다양한 요소들, 그리고 그 언어가 구성되는 다양한 요소들의 양상들을 알지 않고는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사유하는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어떤 문화속에서 존재하는지 그 근원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학은 철학이다. 또다른 의미에서 언어학은 실용성을 포함한다. 우리가 언어의 본질을 이해할 때 다양한 문화와 그것이 존재하는 다원성을 존중하면서 기타 문화의 언어들을 습득하는데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언어 속에는 다양한 문화를 내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言語)라는 중복적 표현(言과 語가 모두 '말'이라는 의미를 대표로 가지지만, 엄밀히 따지자만 言은 음성언어를 語는 문자언어를 통칭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언어는 음성과 문자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이라는 큰 의미를 중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을 달리하여 '문화어'(여기서의 문화어는 북한의 '문화어'와는 구별된다. 여기서는 문화와 언어를 동격으로 혹은 언어가 문화를 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도 하나의 문화임으로 '문화어'도 중첩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라고 불리어도 좋을 것이다. 

현행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상에서 언어교육은 '국어'와 '영어'로 대별된다.(기타 외국어도 고등학교과정에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영향은 극히 적다.) 여기서 '영어'를 실용영어 중심으로 영어회화말하기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어 본질적 언어교육으로서는 기능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국어'에서 언어교육이 이뤄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학교과정에서 '언어의 사회성'이니 '자의성', '역사성' 등이 살짝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언어의 본질을 가르칠 수는 없다. '언어'에 대해 보다 심도있게 다룰 수 있는 시간은 고등학교 선택과목의 '문법' 시간이다. 그러나 이 과목은 선택과목에다가 문법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해 많은 학교에서 선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러니 현행 학교교육에서는 이 언어교육이, 특히 언어의 본질적 측면이 거의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이 책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는 그런 학교교육에서 하지 못하는, 특히 국어나 영어 시간에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있는, 언어의 본질적 모습을 꽤 훌륭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사실 문법책에서 다루는 언어의 본질적 측면은 거반 수박겉핥기 식이지만, 이 책에서는 쉽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심도 있게 언어를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문법책(국정교과서)와 함께 문법 과목의 교재로 채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제목이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지만, 이 책은 언어 전반의 본질적 특성들을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언어의 기원, 언어와 문화의 관계, 언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들, 언어와 금기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런 언어의 본질적 측면을 다루는 여타 언어학 개론서에서의 원론적 설명들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첫장의 시작은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넬(Nell)」(1995)"을 끌어들이면서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조목조목 풀어나간다.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가 유발될 수 밖에 없게한다.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영화, 기타 영상, 최근의 연예인이름, 다양한 광고와 이미지들을 가져와 설명한다. 이런 것들은 보다 친근하게 언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왜 효과적이냐 하면, 언어의 본질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구체적 언어 현상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구체적 언어 현상을 통해 언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 언어가 형성됨에 있어 고대의 토템적 성격은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는데는 일본의 만화영화 「원령공주」가 도입된다. '고맙습니다'가 곰과 관련된 토템에서 왔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언어가 가지는 주술성은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 의해 설명된다. 무슨 소리냐고?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타임머신을 타고 저 멀리 삼국시대로 간다면 그들과 우리가 말이 통할까? 이런 의문은 "김유신과 계백은 말이 통했을까?" 등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과 우리의 지명이나 명칭들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 언어 변화의 양상, 곧 언어의 역사성 혹은 자의성에 대해 배워볼 수도 있겠다. 또한 외래어의 유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것이 어떤 양상을 띄는지를 일본의 한류 신드롬을 일으킨 「겨울연가」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3장에서부터는 이 책이 왜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였을까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옛날 선조들은 우리말을 어떻게 공부했을까를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추적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언문이라고 치부되던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말이 소외되고 천시된 이들에 의해 유지보전 전승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도 같은 외국어 열풍도 우리의 역사속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또한 흥미롭다. 몇 백년 전의 부부의 사랑편지도 읽어볼 수 있다. 4장에서는 언어 속에 문화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양상을 살피고 있는데, 언어와 사고의 관계의 본질적 측면과, 연예인 김C를 등장시켜 우리의 이름짖기에 반영된 사회상을 살피고 있다. 이 책이 또한 가치있는 것은 5장에서 다루는 언어의 권력과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반드시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 책은 저자들 연구모임의 세 번째 결과물이다. 『우리말의 수수께끼』가 그 첫째인데, 거기서도 재미나게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두 번째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인데, 한국어의 소멸이라는 가상의 현실을 설정하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흥미롭게 구성해내고 있다. 두 번째 결과물은 조금 시의성이 있었고 그들 연구모임을 주된 항로는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말의 수수께끼』에 적자동생은 이 책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라고 본다. 어쨌건 정주리, 박영준, 시정곤, 최경봉 이 네 명의 젊은 국어학자들의 이런 작업들이 앞으로도 의미있는 결과물들을 내어주기를, 그리고 그들의 이런 작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특히 학생들에게 읽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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