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에 시비걸기를 시작한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시비는 아니고, 우리가 흔히 쓰는 우리말들 중에서 괜히 잡생각이 드는 말들에 대해 깐죽대보자는 것이다.

파이팅 / fighting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있을 정도로 이제 거반 우리말인 듯 싶다. 우리말의 분류를 따르더라도 이 말은 외래서로서 우리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그 뜻을 풀이하고 있다. 품사로는 감탄사다.

영어 fighting은 형용사로서 '싸우는, 호전적인, 투지 있는, 무를 숭상하는, 전투의, 전투에 적합한, 교전중인, 전쟁의'란 뜻이 있으며, 명사로서는 '싸움, 전투, 교전, 회전(會戰), 논쟁, 격투, 투쟁'의 뜻을 가지고 있다.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뜻으로 볼 때, 영어로서의 fighting과 우리말의 파이팅은 좀 차이가 있다. 우선 우리말의 파이팅은 감탄사인데 반해, 영어의 그것은 주로 형용사나 명사로서 기능한다.

내가 영어를 원체 못해서 잘은 모르겠으나, 우리말의 파이팅과 같은 용례가 영어권에서 실제적으로 (우리말에서처럼)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지는 확인한 바 없다.

여기서는 많이 쓰고 안 쓰고의 문제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영어권에서 어떻게 쓰이건 간에, 우리말에서는 감탄사로서 이 사람 저 사람,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두루 사용되고 있다. 그게 중요한 거다.

실제로 파이팅이라는 말은 어느 회사의 광고에서도 비중있게 표현되었다. 코리아팀 파이팅이라던가.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자기 회사의 이름과 이 파이팅을 연결시켜 표현한 것 같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리지 않고 쓰는 표현이 이 파이팅인데, 이 파이팅으로 인해서 우리 전통의 감탄사들, 이를테면 얼씨구니, 지화자니 하는 것들이 저만치 밀려나 버렸다. 많은 부분에서 이 파이팅으로 대체되었는데,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서구화의 영향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의 호전적 성격때문이 아닐까 한다.

근대화는 곧 전쟁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전쟁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대표격이 운동경기, 특히 축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 자체를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파이팅은 적재적소에서 빛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좀 생각해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말을 '힘내자'로 순화하고 있다. 2005 우리말 다듬기 자료집에는 '아자' 정도로 순화하고 있다. 이외에 '영차, 잘 하자, 패기' 등의 말로 파이팅을 순화하고자 한다. 나는 원래가 이 인위적 언어 순화에 반대하지만, 파이팅의 경우 순화가 아니라, 그 말의 사용 상황에 따라 더 적합한 언어를 선택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얼마전 사무실에 불우이웃을 돕자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 내가 바쁜 중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던데, 그 사람은 연신 '파이팅, 파이팅'을 외쳐댄다. 좋은 뜻에서 이겠지만, 어려운 사람 돕자는 사람이, 싸우자고 부추기는 듯해서 영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싶었다.

그래서 생각인데, 이 호전적 성격의 단어의 사용은 조금 줄일 필요가 있겠다. 운동경기나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하되, 우리 사회에서 호전적일 필요가 전혀 없는, 아니 호전적이서는 안될 상황에서는 이 단어는 좀 꺼려져야 하지 않을까? 나랑 싸우자는 게 아닐진대, 파이팅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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