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옥편 - 한문학자의 옛글 읽기, 세상 읽기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지난 2월에 인천 교보문고 나들이를 갔다가 이 책을 만났다. 지하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교보문고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보이는 신간서적 코너를 살펴보다 이 책이 눈에 확 띄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민 선생의 책을 좋아해서 그의 신간소식에 귀를 기울여 왔었다. 그 즈음에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과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이란 책이 연이어 출간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던 때였다. 이 책이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같은 시기에 출간되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의 옥편'이라! 그 자리에서 집어들고 <책머리에>를 읽어보았다. "지난 10년간 쓴 글을 모았다.", "책 속에는 올해 열다섯이 된 둘째의 다섯 살 때 이야기부터 최근 이야기까지가 섞여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의 삶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있는 책이란 얘기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2권의 책과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른 종류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여러 편의 단문들을 모아두고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단문이 책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보았다. 그가 지금의 한문학자가 되기까지 이런 스승의 삶의 가르침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덜누덜해진 스승의 옥편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던 제자 정민의 모습이 아른거려 그만 책을 덮고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사실 교보문고 나들이의 본래 목적은 책사러가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 책을 구경하는데 있다. 간혹 몇 권의 책을 사오기도 하지만, 그날 구경한 책들을 메모지에 꼼꼼히 적어오는 것에 주 목적이 있다. 그 날도 이 『스승의 옥편』을 메모지의 가장 윗편에 굵은 글씨로 적어놓고, 집에 와서 알라딘의 보관함에 담아 놓았다. 보관함에 담아 놓은 책은 오래 묵히는 것이 많았지만, 이 책 만큼은 며칠을 묵히지 못했다. 그렇게 이 책을 주문하여 구입한 후에 책상의 한 자리에 올려두고 매일 몇 편씩 읽어갔다. 사실 단숨에 읽어도 별 무리없는 책이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10년의 삶의 향기가 배어있는 이 책에서 정민 선생의 진한 향기를 맡기는 조금의 시간과 여운을 가져야만 했던 것이다.

한문학자라고 하면 흔히 좀 보수적일 것 같고,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옛 사람들의 사상을 되풀이하는 것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부분에서 그것은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고전이라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지루함의 대명사니까 말이다. 하지만 또한 많은 부분에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많은 한문학자들이 고전을 현대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구성해내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한문학자들 가운데 가장 선두주자는 바로 정민 선생이 아닌가 한다. 그의 책 『미쳐야 미친다』나 최근에 나온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등이 그런 작업의 성공적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런 작업 속에서는 옛사람은 살아 있고 오늘의 사람은 어느 틈으론가 사라져 버린다. 정민 선생의 이런 작업들 속에서 그의 면모를 살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성격이 사뭇 다르다. 한 두 쪽의 짧은 글들은 그의 생활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그의 작업들과 비슷한 방식의 글들은 이 책의 1부와 4부에 실려 있기는 하지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정민이라는 개인의 삶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그리고 솔직한 고백으로 울려나고 있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4학년짜리 누나가 덧셈 뺄셈을 못하고 일곱 살배기 제 동생이 못내 한심했던지 제가 가르치겠다고 먼저 나섰다.
  "7 빼기 5는 뭐야?" "7 빼기 5?" "그래! 7에서 5를 빼면 뭐냐구?" "7!" "뭐? 어째서 7이야! 7에서 5를 뺐는데?" 누나의 말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답답하다는 듯 동생이 말한다. "자! 여기 7이 있지?" "그래." "그리구 여기 5가 있지?" "그래." 동생은 손가락으로 5를 가린다. "7에서 이렇게 5를 빼고 나면 7만 남잖아? 그러니까 7이지." 할 말 잃은 누나가 쪼로록 달려와 말한다. "아빠! 얘 좀 봐. 7에서 5를 빼면 7이래요."
  나는 에디슨이 생각나서 기특해서 혼자 막 웃었다. 
    -「에디슨이 생각나서」전문, 144쪽.

이런 그의 '생활 속의 단상'들에서 정민이라는 개인의 삶과 사유를 엿본다는 것은 이전의 그의 성공적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그가 한문학자로서 살아온 인생의 여정들 속에 이런 내면이 있었다는 사실들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한문학자로서의 성공적 작업들, 그러니까 고전을 현대적으로 번역해 내고 그것은 오늘날에 적합하게 재구성해내는 그의 고전을 보고 해석해 내는 시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내면의 고백과 같다. 정민이라는 한 개인이 올곧이 살아있는 책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이 책을 그는 소리소문없이 세상에 내어놓은 까닭은?

옛사람의 글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문학자가 한문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 또한 예외가 아니가.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에 다 뜻이 있어, 그것을 문자 그대로 풀어내기만 한다고 그것이 번역이랄 수는 없다. 그 안에 담긴 상황과 문맥을 함께 풀어내야 진정한 번역일 것이다. 그런 작업들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는 인상깊은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있다. 한시를 번역하다가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로 했던 것은 그의 스승은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이라고 더욱 간단히 바꿔버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시가 가지고 있는 운치와 운율과 여운을 더욱 살려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민 선생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아찔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그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민 선생의 문학적 감수성을 이 책에서 자주 엿볼 수 있다. 특히나 그는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여러편에서 시를 읽으며 느낀 감회들을 적고 있다. 보통 한시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정주나 신석정, 김용택의 시들도 즐겨 읽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나,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배웠던 노래들에 얽힌 단상들도 이 책에는 등장한다. "피곤한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은 또한 명문장이다. 그의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주변 생활의 단상에서 오는 다양한 사유 속에서 그의 고전의 현대화 작업들은 보다 창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아닐까?

또한 이 책에서는 그가 자식을 키워오면서 느끼는 기쁨들과, 세상의 여러 씁쓸한 단상들, 그리고 지난 추억에 대한 구수한 정취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정민이란 한 개인이 있기까지의 희로애락을 이 책 한 권에 담아놓은 것이다. 옛 글 뒤에 묻혀있던 오늘날의 한 한문학자가 옛글이 아닌 자식의 글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옛사람의 풍취 그 이상으로 정민이란 개인의, 우리 시대의 뛰어난 한 학자의 짙은 내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애착이 간다는 3부의 '생활의 발견'에 모은 글들이 그만큼 나에게는 값지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 독서에 관한 좋은 글들이 담겨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다만 부록에 지나지 않게끔 느껴진다. 이 책의 진한 정민이란 사람의 향기에 깊게 취할 따름이다. 언젠가 그의 이런 글들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옛글의 명문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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