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수수께끼 - 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
시정곤 외 지음 / 김영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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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아니 역사(history)라는 것은 그 기록을 전제하는 고로 인류의 역사는 곧 언어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사유가 전적으로 언어로 이루어진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언어가 인간 사유의 폭과 깊이를 무한히 확장해 주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언어를 통한 인간의 사유, 곧 상상의 날개는 오늘날까지 인류의 높은 문명의 하늘로 날아 오르게 하였다. "인류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이러한 놀라운 발전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사고하고, 사물을 인식하며, 개념을 형성한다. 인간적 활동의 대부분에서 언어는 중요한 도구로써 기능한다. 그러나 그런 중요하고 유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언어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인류 문명의 시작 이전부터 있었왔고("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인류의 문명을 꽃피웠으며, 오늘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낸 이 언어에 대해 우리는 그 근본을 거의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태생적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이 언어에 대한 궁금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많은 이들, 즉 언어학자들이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이것은 비단 인류 초기, 즉 인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멀고 먼 시대의 고대 원시 언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언어의 모습들은 가까이는 500여년 전의 우리말, 우리글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말했을까? 오늘날 우리와 직접 대면하여 말을 해도 통할까? 하는 의문의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의 비밀, 말과 글의 담긴 수수께끼들은 무한히 많다. 원시시대부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에 이르기까지, 그 끝없는 비밀을 문을 오늘날의 언어학자들은 탐구하고 있다. 여기 우리말의 비밀을 찾는 젊은 국어학자들이 있어, 그 수수께끼의 문을 열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우리말의 수수께끼』에서는 멀리는 인류 초기의 언어에 대한 수수께끼부터 우리 말과 글의 역사, 그리고 우리글의 표기법에 담긴 숨은 이야기들까지를 흥미롭게 탐구하고 있다. 언어의 비밀은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과도 같다. 다만 그 미로를 헤쳐나가려는 땀과 열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기에 충분하다. 그 책에서도 우리말과 글의 비밀들을 속 시원히 밝혀내고 있진 못하지만,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가능성을 추측해 보는 젊은 국어학자들의 노력의 결과를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나로 하여금 기쁘게 한다.

이 책 『우리말의 수수께끼』는 2002년에 출간되었다. 박영준, 시정곤, 정주리, 최경봉 4명의 신진 국어학자들의 사뭇 유쾌한 모임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존재를 뒤늦게 안 것은 최근 읽은 『우리말이 사라진다면』덕분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기획에 재미를 느끼고 일독한 후, 이 책이 그들의 2번째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으며, 그들의 첫번째 흥미로운 탐구가 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가볍운 마음으로 그들의 첫번째 여행에 동참하기로 마음 굳게 먹고 이 책을 구해 읽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우리말이 사라진다면』의 서문에 3번째 작업을 준비 중에 있었다고 밝혔고, 이미 그 결과물이 세상에 나와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았다. 조금 있으면 그것도 찾아 읽을 것이다.(그 책은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란 제목을 달고 2006년에 출간되었다.)

『우리말의 수수께끼』에서는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말에 대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우리글에 대한 질문들, 그러니까 언어전반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문자의 역사에 숨긴 이야기들에 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구태여 다시 달자면 "우리글의 수수께끼"라 해야 좀더 정확할 듯도 하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 다루는 수수께끼들은, 우선 문자의 탄생 배경에 대한 궁금증으로 문을 연 후, 우리 글의 역사에 대한 수수께끼로 이어진다. 한글 창제를 기준으로 볼때, 창제 이전의 문자사, 창제 후의 문자사에 대한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덧붙여 근대이후 한글 맞춤법통일안 탄생의 비하인드까지를 쉽게 재밌게 풀어나가고 있다. 여러모로 우리글의 전체적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된다.

1장에서 다루고 있는 문자의 탄생에 대한 부분은 이 책의 프롤로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내용으로 별반 다른 언어관련 기본서에 다 나오는 내용인데, 보다 쉽게 풀이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글의 역사는 2장부터다. 우리글이 없던 시대에 우리는 한자를 빌어 사용해왔다. 향찰이니 이두니, 구결이니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한자를 빌려와 한문으로 기록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었지만, 이외에 우리말을 우리식으로 적되 한자를 이용하여 적는 방법이 바로 향찰과 이두와 구결인 것이다. 이 향찰, 이두, 구결에 대한 따분한 이야기들, 특히 한자만 나오면 치를 떠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조금은 다행스럽게도 쉬운 이해가 가능하도록 서술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어서 6장부터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무엇이었으니, 어떻게 훈민정음이 창제될 수 있었는지, 훈민정음 창제를 두고 세종과 최만리의 논쟁등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이어지는 것은 한글표기법과 관련한 문제들, 그리고 세종대왕의 업적, 나아가 미래 사회의 새 문자, 혹은 원시문자로의 회귀 가능서엥 대한 언급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전혀 새로울 바는 없다. 내용의 많은 부분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며, 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어차피 이 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씌여지고 있어서 일반인들을 생각해서 본다면, 조금씩 신선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잘 아는 것이면서도 거기에 신선함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시종일관 신선하면 어려우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끈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최만리와 세종대왕의 대결 부분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종대왕을 칭송하면서, 한글창제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최만리를 천리 만리 배척해 왔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 최만리의 철학과 사상을 고려하면서, 그가 왜 반대해야 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어쩌면 세종에게나 최만리에게나 백성은 '어리석었고', 이 어리석은 백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나름의 시각차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하는 결론을 주고 있다. 또 다른 대목은 박승빈과 최현배의 철자법 논쟁에 관한 부분이다. 최현배는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국어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에 반해, 박승빈은 나도 여기서 처음 들었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맞춤법규정이 이런 논쟁을 통해 성립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롭지만, 또한 논쟁이란 것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지만, 국어발전에 있어서 최현배의 승리만큼이나 박승빈의 패배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이 박승빈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가지게 해서 더욱 이 대목에 끌린다. 앞으로 철자법 논쟁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은 또다른 이책이 주는 기쁨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대중서로서뿐만 아니라, 국어학입문서로서 전공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들이 의도한 것같지는 않지만, 국어관련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필독서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가지게 되었다. 특히나 어렵다는 향찰, 이두, 구결 부분에서 조목조목 대조비교하여 설명, 해설한 부분은 어떤 전공서적의 해설보다도 좋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은 그 표제대로 '우리말'에 대한 역사 여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글'에 국한되어 있다. 백년전, 천년전의 우리 말을 재구성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 점에서 글은 자료가 그래도 남아 있어 말보다는 쉽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 책이 표방한 대로 '우리말'에 대해, 즉,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전반에 대해 그 의문의 수수께끼들을 찾아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를테면 신라사람과 고구려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대화를 했는지, 지금의 전라도 사투리가 500년 전에는 또 어땠을지 등 재미나고 유익한 주제들이 많을 것도 같다. 추후 이들의 작업이 보다 활발히 그리하여 우리말과 글의 비밀들의 재미나게 밝혀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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