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字'냐 '글짜'냐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말을 글로 적는 것(표: 부호)을 우리말로 '글자'라고도 하고, 그것을 우리말이 아니고 '글+字'로 이루어진 '글字'라고도 한다.

문제는 '글자'냐 '글字'냐 하는 시비보다 더 급한 것이 그 적기다. 어떤 쪽으로도 '글자'로 적고 있는데, 그 소리가 [글자]가 아니고 [글짜]이어서 그 적기를 '글자'로 하느냐 '글짜'로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字'가 말밑이라면 '글자'로 적고, 말밑이 아니라면 '글짜'로 적기로 되어 있는 것이 한글 맞춤법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전들의 적기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문세영『조선어 사전』(1938), 이윤재『표준 조선말 사전』(1947), 한글 학회『큰사전』(1957) ·『우리말 큰사전』(1992), 북한『조선말 대사전』(1992) 들에는 '글자'로 우리말로 다루었다. 또 하나는 조선총독부『조선어 사전』(1920), 민중서관『국어 대사전』(1961), 삼성출판사『새 우리말 큰사전』(1974), 민중서림『국어 대사전』(1982), 연세대학교『한국어 사전』(1998), 국립 국어원『표준 국어 대사전』(1999) 들에는 '글字'라고 반한자말로 다루었다.

『두시언해』초간본(1481) 16권 15쪽에 "글ㅈㆎ(字ㅣ)",『번역소학』(1518) 8권 16쪽에 "글ㅈㆍ 긋(字劃)",『신증유합』(1543) 상권 1쪽에 "字 글ㅈㆍㅈㆍ"들이 '字'를 '글ㅈㆍ(글자)로 적고 있으나, '글字'식 적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한자밖에 모르던 이들이 '글자'를 그대로 놓아둘 리가 없다. 『금강경 삼가해』(1482) 5권 8쪽에 "구름 가운데 기러기는 두어 줄 글字를 스고(雲中鴈寫數行字)라는 것이 있다. 원문의 '字'를 '글字'로 옮긴 것이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한나라'(우리나라)를 '한國'으로 적는 것이 "한이라는 國"이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글字'가 "글이라는 字"라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글字'가 "글을 적는 字"라면 말이 되는가. 이것도 말이 안 된다. 그것은 '字'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字'를 새겨 읽을 때 "글자 자"라고 하는데, 그때 그것이 '글자 字'일까 '글字 字'일까? 다른 보기를 들어 보자. '瓦'가 '기와 瓦'일까 '기瓦 瓦'일까. '件'이 '물건 件'일까 '물件 件'일까. '巾'이 '수건 巾'일까 '수巾 巾'일까. '樣'이 '모양 樣'일까 '모樣 樣'일까. '全'이 '온전 全'일까 '온全 全'일까. '檎'이 '능금 檎'일까 '능檎 檎'일까.『훈몽자회』(1527)에 옛말로 '닝금 檎'이라고 했다. 덧붙이건대, '곡식 穀, 기운 氣, 보배 寶, 아이 兒, 재주 才'를 '穀식 穀, 氣운 氣, 寶배 寶, 兒이 兒, 才주 才'라고 하면 안 되고, 우리 국어사전들의 '邊두리, 醜접, 缸아리'도 '변두리, 추접('주접'의 거센말), 항아리'로 적어야 한다.

'글자 · 글字' 문제는 '글字'가 아니라 '글자'라는 것이다. 사전들의 올림말 '글자'에 [-짜]라는 소리 표시가 붙어 있다. 그게 아니다. '글자'가 우리말이면 소리만 [-짜]가 아니라 '날짜'처럼 낱말 자체가 '글짜'인 것이다.

우리말 '글짜'의 '글'은 '글발, 글씨, 글월' 들의 '글'이다. '글짜'의 '-짜'는 '가짜, 공짜, 날짜, 대짜, 말짜, 민짜, 별짜, 뻥짜, 생짜, 알짜, 얼짜, 정짜, 조짜, 진짜, 통짜, 퇴짜' 들의 '-짜'이다. 이 '-짜'는 '것'이나 '물건' 또는 '일' 따위 뜻의 말조각이다. 따라서 '글짜'는 '글字'가 아니라, 글을 적는 '-짜'다. 그 '-짜'는 '것'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날짜'(날을 적은 것)와 '글짜'(글을 적은 것)는 같은 유형이다.

<한글새소식> 416호(2007.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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