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論說]

文字 選擇의 基準

李炳銑(釜山大 名譽敎授)


  只今 우리는 한글專用이냐 漢字 混用이냐 하는 重大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新聞 ․ 雜誌 ․ TV의 字幕에서는 勿論 學術 論著에서도 젊은 讀者層에 맞추어 거의 한글을 專用하고 있다. 어려운 漢字는 括弧 안에 넣고 있으나 漢字를 모르는 讀者들에게는 無意味하다. 또 大學마다 先學들이 애써 쓴 山積한 書籍을 學生들이 읽지 못하고, 할아비[祖]가 쓴 冊을 孫子가 읽지 못한다. 이는 學問의 斷絶과 世代間의 斷絶을 招來한다. 우리는 왜 이와 같은 슬프고도 不幸한 일을 해야 하는가?

  한글을 專用해야 할 理由로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우며, 또 우리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쉬운 것이 能事가 아니니, 이것이 文字 選擇의 基準이 될 수 없다. 한글專用이냐 漢字 混用이냐 하는 選擇의 基準은 첫째, 兩者 中 어느 것이 視覺上으로 읽기가 쉽고 思考를 돕느냐 하는, 文字生活의 效率性에 比重을 두어야 하며 둘째, 말(낱말 ․ 語彙)의 槪念 形成과 縮約性 ․ 造語力 等 言語의 經濟性에 무게를 두어야 하며 셋째, 傳統文化의 繼承과 넷째, 漢字文化圈의 여러 나라들과의 連帶를 생각해야 한다.

  위 첫째 基準에 있어서, 漢字는 視覺性이 있어서 읽기가 便利하다. 또 表意性이 있어서 思考를 도우며, 表音文字인 한글보다 뜻을 생각하며 글을 읽을 수 있다. 한글은 制字上으로는 매우 科學的이기는 하나, 글字의 꼴이 비슷하여 英語의 大文字와 같이 읽기가 不便하다. 한글專用의 글은 한 字 한 字를 같은 速度(템포)로 읽어야 하나, 漢字 混用의 글은 몇 字 或은 몇 낱말이 한눈에 들어오며 뜻도 쉽게 理解된다. 1970年代에 全國圖書館協會에서 調査한 바에 依하면, 圖書館 利用者의 84%가 漢字 混用의 글이 讀書의 能率을 높인다고 하였다. 國語의 文章은 名詞와 動詞 ․ 形容詞로 된 意味部와 이에 助詞 ․ 接尾辭 等이 添加된 形態部로 構成되었는데, 漢字語로 된 意味部는 漢字로 表記하고 形態部는 한글로 表記함이 바람직하다. 다만 生活에 익은 말은 한글로 表記해도 좋으나, 한 줄[行]에 漢字가 몇 字씩 섞여 있는 것이 읽기가 便하다. 이와 같은 表記方法은 新羅人의 文字生活에서도 볼 수 있다. 卽 鄕歌(慕竹旨郞歌)의 “去隱春皆理米”(가는 봄 그리매‘慕’)에서 가[去]와 봄[春]은 漢字의 訓으로 表記하였고, “毛冬去叱沙哭屋尸以憂音”(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에서 시름[憂音]도 ‘근심 우(憂)’ 字를 借用하였다. 日本人들은 漢字 한 字를 읽는 데 걸리는 時間이 1千分의 1秒 以下라고 한다. 우리는 아직 이러한 報告가 없으나, 假令 한글 한 字를 읽는 데 1千分의 1秒가 걸린다고 하더라도 한글에는 뜻이 없다.

  言語는 소리[音聲]와 뜻[槪念]으로 이루어진 生命體이다. 그 中 어느 것이 不分明하여서는 生命力을 잃는다. 言語는 時代의 變化에 따라서 生成하고 消滅하는데, 하나의 말에 槪念이 形成되는 데는 經驗이나 敎育 等 時間이 걸린다. 아래와 같은 우리 文化의 基盤을 이루는 漢字語를 漢字로 表記하면 先驗的 知識이 없어도 그 뜻을 쉽게 理解할 수 있고, 또 槪念이 形成되는 데 걸리는 時間이 節約된다. 食藥廳 ․ 行自部 ․ 勞使政 ․ 聯政 等 機構名과 政治 用語, 抗訴審 ․ 損賠訴 ․ 言渡 等 法律 用語, 自社株 ․ 船團式 經營 ․ 産業 空洞化 等 經濟 用語, 無敵艦隊 ․ 地對艦 미사일 ․ 鶴翼陣 等 軍事 用語, 有實樹 ․ 水耕栽培 ․ 天日鹽 等 農 ․ 水産 用語, 骨多孔症 ․ 血糖 ․ 中耳炎 等 醫學 用語, 脫亞入歐 ․ 遠交近攻 等 政策上의 用語, 易地思之 ․ 事必歸正 等 四字成語. 이를 한글로 表記하여서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이는 生命力을 잃은 것이다.

  오늘날의 文字生活에서 努力의 經濟를 爲해 말을 줄여 쓰는 일이 많다. 建交部(건설교통부) ․ 終土稅(종합토지세) ․ 安保理(안전보장이사회) 等은 그러한 例이다. 이러한 말도 漢字로 表記하는 것이 理解를 돕는다. 漢字는 글字마다 뜻을 가지는 字素文字로서 造語力이 豊富하다. 卽 守成 ․ 守備 ․ 守舊 ․ 守己…, 城門 ․ 城山 ․ 城主 ․ 城域…과 같이 쉽게 말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有緣性으로 漢字 二千字로 워드프로세서(打字機)에서 약 五萬 個의 말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造語上의 經濟를 생각해야 하며, 또 言衆들의 語彙數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 漢字語에는 多樣한 思想이 담겨 있다. 語彙가 不足하여서는 未開民族으로 轉落한다.

  셋째 ․ 넷째 基準에 對하여서는 說明을 要하지 않는다. 한글이 우리글이니까 하는 우리의 主體性을 말함을 본다. 그러나 歐羅巴 各國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로마字는, 元來 라틴語를 表記하기 爲하여 로마時代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文字란 國籍을 따질 것 없이 自國의 말을 便利하게 적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宗敎가 그의 國籍을 따지지 않는 것과 비교된다. 漢字는 二千年 동안이나 우리 祖上들이 써 온 文字로서, 漢字語는 우리 文化의 中心部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漢字를 굳이 中國의 글字라 하여 排斥함은 閉鎖的이고 國粹主義的 思考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의 칼도 내 칼집에 들면 내 칼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글專用을 主張하는 사람들도 漢字를 배워만 놓으면 便利하다고 한다. 漢字가 어렵다고 하나, 마음만 먹으면 二千字 程度를 배우기란 큰 問題가 아니다. 1948年 한글 專用法이 制定되던 當時는 國民 一人當 GNP가 100弗도 못 되었다. 國民 95% 以上이 農民으로서, 이 法은 晝耕夜讀하던 時代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法은 오늘날의 狀況과 맞지 않으니 廢止되어야 한다.

  日本에서는 初等學校에서부터 漢字를 배워서 한平生 便利한 文字生活을 하고 있다. 이는 ‘先苦後樂’이다. 이에 比해 우리는 于先 便한 것을 좋아하여 ‘先樂後苦’를 하고 있다. 이러하여서는 日本에 더욱 落後될 것이다. 우리는 한글專用으로 漢盲者를 量産하여 漢字의 表意文字로서의 優秀性을 모르게 해 놓고― 漢字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게 해 놓고 한글專用으로 가고 있다. 이와 같은 政策은 하루빨리 바꾸어야 한다. 愛國과 文字의 機能을 混同해서는 안 된다. 漢字의 利點을 살려 國力을 키우는 것이 더 愛國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語文生活> 通卷 第112號, 6~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