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隨想]

‘難易度’는 있어도 ‘高難易度’는 안 써

鄭龍起(前 <서울新聞>編輯委員)


  特히 只今으로부터 40年 後인 2046年은 大韓民國에서 한글專用 敎育을 始作한 지 100週年이 되는 해다. 現在와 같이 方向을 잃고 漂流하는 漢字敎育이 繼續되거나 그나마 中斷된다면 아마 그때쯤 우리 땅에서 漢字는 自然 消滅되고 자취를 찾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이 무렵 어느 시골 中學校 3學年쯤 되는 國語 時間을 想定해 보기로 한다.


敎師 : ‘조령모개’라는 것은 임금도 좋고 대통령도 좋고 하여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침에 이렇게 하라고 영을 내렸다가 저녁이 되자 아니다 저렇게 하라고 딴소리를 한다는 뜻, 한마디로 변덕을 부린다는 뜻이다.

學生 : 선생님 예, ‘조령모개’라카는 게 와 그런 뜻입니꺼? (이 선생님은 애당초 漢字를 배운 일이 없으니 ‘朝令暮改’라는 漢字를 구경한 일조차 없었다. 그러나 질문에 대답 안 할 수 없다.)

敎師 : 먼 옛날 우리 조상 때부터 그런 뜻으로 써 왔다. 조령모개.

學生 : 조상들은 와 그런 뜻으로 썼습니꺼?

敎師 : 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어? 조령모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아버지, 조령모개는 조령모개, 알간?


(以上은 月刊 <한글+漢字文化> 通卷 87號에 실린 金聲翰 님의 「第3의 機會」의 한 대목이다.)


  漢字 없는 時代 國語敎育 現場의 한 場面을 잘 描寫해 주고 있다. 敎師도 學生도 漢字를 모르니 ‘朝令暮改’의 質問에 對한 答辯이 神經質的이고 若干 强壓的이다. 하긴 더 以上 잘 說明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버지가 아버지인 것처럼, 조령모개는 조령모개라니 참 답답하다. 全혀 知的이지 않다.

  이런 답답한 心情을 굳이 40年 後에서 찾아볼 것이 무어 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데 當場 配達된(2006年 10月 11日) 한 朝刊 新聞 ‘讀者칼럼’ 「韓國語가 眞짜 어려운 言語인가?」에서 그 답답함을 또 接했다.


  얼마 전 미국 국무부가 전 세계에 파견된 외국어 보직자들이 사용하는 69개 언어를 난이도에 따라 ‘세계어, 고난이도어, 기타 언어, 초고난이도어’ 등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한국어는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등과 함께 초고난이도 언어로 선정됐다.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미약하나마 한국어의 세계화에 힘써 온 필자로서는 한국어가 초고난이도 언어에 선정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하략)


  以上 韓國語 專門家의 글이다. 韓國語가 ‘초고난이도 언어’라니 도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아주 어려운 言語라는 말인가, 아니면 매우 쉬운 言語라는 말인가. 앞뒤 文脈으로 미루어 韓國語가 中國語, 日本語, 아랍語와 함께 아주 어려운 ‘超高難度 言語’로 分類된 것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難易度’란 어려움[難]과 쉬움[易]의 程度를 헤아린다[度]는 뜻이다. ‘難易度’란 말은 있어도 ‘고난이도’ ‘초고난이도’란 말로는 안 쓴다. 그렇게 써서는 問題가 어렵다는 말인지 쉽다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修能考査 問題의 難易度 調節’ 하면 어려운 問題와 쉬운 問題를 고루 챙기겠다는 뜻의 말이 된다.

  ‘難度’는 어려운 程度를 말한다. ‘高難度’ ‘超高難度’로 말할 수 있다. 앞의 글 가운데 ‘69개 언어를 난이도에 따라’라는 表現은 맞다. 한데 “한국어는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와 함께 ‘초고난이도’ 언어로 선정됐다” 라는 表現은 語法에 안 맞는다. 美 國務府에서 韓國語가 배우기 어려운 言語 축에 分類됐다는 뜻이라면 ‘高難度語’ ‘超高難度語’라 말해야 한다.

  덧붙여 ‘선정됐다’라는 用言은 肯定的 意味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 用言에 ‘超高難度 言語’라는 否定的 意味가 强한 말이 오는 것은 共起制限이 되는 語塞한 말이 된다. 筆者 또한 新聞에서 韓國語를 바르게 쓰는 일을 平生의 業으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초고난이도 언어로 선정됐다’는 文章에 어리둥절했다.

  都大體 어떤 좋은 條件이 ‘초고난이도 언어로 선정’되게 된 理由인지 알 수가 없다. 美國에서 英語를 基準으로 해서 볼 때 韓國語가 배우기 매우 어려운 言語라는 뜻의 말인 것만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초고난이도’가 아니라 ‘超高難度 言語로 分類됐다’ 또는 ‘屬했다’로 말해야 맞다.

  漢字를 안 쓰니 ‘초고난이도’인지 ‘超高難度’인지를 分揀 못하고 있다. 또 ‘分類됐다’ 또는 ‘屬했다’로 말해야 하는데, 漢字를 모르니 ‘分類’의 뜻도 ‘選定’의 뜻도 대충 類似語로 두루뭉술 넘어가고 있다.

  소쉬르가 말한 恣意性 單語는 어느 言語에나 그 言語의 基礎的 要素로 存在한다. 비, 물, 나무, 불, 밥, 손, 발, 다리, 길, 바위, 바다 等等 大槪 形態 單一語가 恣意性 單語에 屬한다. 이런 單語들은 듣는 瞬間 意味가 느낌으로 把握되는 自然言語로서 多分히 情意的인 面이 强한 말이다. 말의 뜻을 말처럼 비는 비, 나무는 나무, 바다는 바다로 認識한다.

  오늘날 韓國語는 한글專用으로 그 많은 漢字語가 恣意性的 單語로 變하고 있다. 假令 ‘조령모개’도 漢字를 알면 ‘아침 朝, 하여금 令, 저물 暮, 고칠 改’ 4個의 形態素로 이루어진 合成語인 것을, 漢字를 모르니 ‘朝令暮改’는 ‘조령모개’로 말해 意味를 條理 있게 說明하지 못한다. 漢字를 모르고 소리만 적으니 意味의 有繫性을 喪失하여 類似語가 氾濫한다. 意味의 外延이 넓고 明晳性이 不足하여 긴가민가하는 대충 느낌의 말이 된다. 이런 言語는 詩語로는 어떨지 모르나 學問의 言語, 매스컴의 言語로는 不適合하다.

  이러니 韓國語가 ‘초고난이도어로 선정되었다’해서 異常할 것이 없어 보인다. 漢字語를 한글로 表記함으로써 意味를 斟酌으로만 아는 言語, 읽기는 하되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全혀 知的이지 못한 言語, 自國民에게도 알기 어려운 ‘超高難度語’로 變해가고 있다. 한글專用이 가져온 韓國語의 오늘이다.

<語文生活> 通卷 第111號,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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