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生活 바로잡기] 한글專用論과 國漢混用論의 虛實(6)

우리가 學習하고 쓰는 單語

鄭琦鎬(仁荷大 名譽敎授)


  單語의 意味는 그 構成 成分이 가지는 意味를 單純히 合해서 얻(어지)는 것, 그 語源에 依支해서 學習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幼’ ‘稚’ ‘園’의 세 形態素에 關한 知識이 全혀 없이> ‘幼稚園’…‘自動車’ ‘(세발)自轉車’…같은 말들을 音聲言語를 媒介로 해서 배워 쓴다. (漢字가 무슨 所用이냐!) -어른이라 해도 ‘掌匣’ ‘惹端법석’…같이 形態素에 關한 知識(漢字 知識) 없이 배워서 쓰고 있는 말은 있습니다. 우리가 論議의 對象으로 하는 말들이 그런 日常語 幼兒語는 아닙니다. 專門用語도 包含해서 좀더 高級(表現이 適切한지 모르겠으나)의 知識語(漢字語)들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 말 모두를 ‘語源에 依支해서’ 學習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質 ․ 量에서 日常語 幼兒語의 比가 아닌 그 ‘말’들의 槪念을 漢字 없이 學習(把握)하고 쓰는 것이 더 ‘쉽고 正確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에 적는 말씀 가운데의 몇 事例만으로도 그것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單語는 나름의 歷史가 있고 個性이 있다. 道路는 山길, 논길, 들길에는 쓸 수 없으며 移動은 集團이나 덩치가 큰 對象을 指稱하는 單語를 主로 하여 쓴다. (漢字가 무슨 所用이냐!) -道路가 山길, 논길, 들길밖에 없었던 때의 ‘길’은 아닙니다. 比較的 큰 길의 새 槪念의 造語이니 山길, 들길에 쓰지 않는 것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첫째 槪念은 ‘길’입니다. ‘道’가 그렇고 ‘路’가 그렇습니다. 辭典에도 그렇습니다. 山길, 들길에 쓰지 않는다는 것은 그 다음의 問題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될 것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固有語 ‘길’이라고 그것도 어디 山길, 들길, 또는 道路의 뜻만 입니까? 그런 性格이라고 漢字가 무슨 所用이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道路 地圖…와 같이 글字의 뜻대로 그 뜻을 알 수 있는 말이 ‘透明語’, 春秋 矛盾…과 같이 글字의 뜻 外에 다른 뜻을 따로 學習해야 하는 말이 ‘不透明語’다. 國立國語院의 調査에 따르면, 初等學校 敎科書에 쓰인 漢字語의 透明語와 不透明語의 比率은 60:40인데 그 透明語 調査가 쉬운 일은 아니다. 國漢混用論의 根據는 透明語에 限定될 것인데 透明語 調査가 先行條件이다. 그 調査를 한 일이 있는가. -어마어마한 말씀입니다. 歷史上 그런 調査가 있었다는 말 들어본 일 없고 그런 調査를 하고 漢字를 쓴다는 나라의 얘기도 들어본 일 없습니다. 우리말의 그런 調査를 한 일은 있는지 寡聞의 탓으로 그것도 들어본 일 없습니다.

  不透明語는 漢字로 적을 必要 없다. 그것에 對해 反論하라. 初等學校 敎科書에 2,687個의 漢字로 된 12,787個의 漢字語가 漢字로 表記되지 않고 쓰이고 있다는 것은 이들 語彙가 굳이 漢字를 通해서 習得하지 않아도 될 것들로 判斷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錯覺하신 듯. 한글專用 ‘令’ 으로, ‘施策’으로, 漢字 廢棄로 그리 된 것입니다. 그래서 2,687字(語)면 될 12,787語, 字數(音節)로는 그 倍數 25,000余字로 되는 말의 뜻을 따로따로 習得하는 苦生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도 ‘警笛’의 뜻은 ‘빵빵’이 되는 것입니다. 不透明語는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語文생활> 통권 제110호,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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