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1
이덕일, 김병기, 신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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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우리 역사의 자랑거리로 “역사상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입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곤 한다.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으면 그런 것을 자랑할까?’ ‘뭐, 내세울 것 없으니 임기응변으로 갖다 붙인 것 아니겠는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간혹 이런 생각들을 해오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또한 그만한 자랑거리가 없다. 드넓은 벌판을 누빈 징기스칸의 몽고나, 아직도 거대한 영토를 거느린 중국 등의 대제국의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찬양을 받아왔다. 우리의 역사에서 그렇지 못한 것을 한탄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의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한편, 우리 역사에서 숨은 대제국의 역사거리가 없는가를 열심히 찾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침입을 수백차례 당한 것은 뼈아픈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역사에서 다른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어찌 과감히 ‘단 한 번도’를 내세울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역사가 말 그대로 다른 나라를 침입하여 칼과 창을 흔들어 파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자랑거리가 아니겠는가? 난 요즘들어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지난한 문제에 골머리를 앓아오던 차에, 저 기세등등의 대륙의 지배자께서 우리의 역사를 갈아먹으려 하고 있으니, 양수겸장을 맞은 것이 아닌가? 난감한 노릇인 것은, 말도 안 되고,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논리로 우리의 고대사를 가로채려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의 역사학계에서는 당황한 탓인지 속수무책으로 이렇다 할 대응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차라리 우리의 역사가 한낱 보잘 것 없는 영토를 차지해 왔다손 치더라도 ‘다른 나라를 단 한 번도 침입한 적이 없는’ 평화를 수호하고 지켜온 아름다운 역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무력과 전쟁의 목적, 즉 대제국의 옛 꿈을 다시금 실현하고자함에 그 기저를 두고 있다. 이것은 다만 지나간 역사의 왜곡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거기에는 피와 전쟁의 참혹한 역사만을 남긴 제국주의의 부활의 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들과 똑같은 논리, 똑같은 목적에서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대결적 대응은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옛 역사에서 “광활한 저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며 대제국을 지배했었다”느니 하는 대응 말이다. 제국주의에 제국주의로 맞서는 것은 끝없는 파멸을 자초하는 것일 터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가 사실과는 다르게 왜곡되는 것에는 어떠한 타협과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변 강대국의 무서운 의도가 숨어 있는 역사왜곡의 문제에 대해 유효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실한 우리 역사의 발굴과 체계화가 필요하다. 허무맹랑의 논리에 실증적 사료와 논리적 역사기술을 내세운다면 그들의 역사왜곡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는 다소 선정적 제목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보다 유효적절한 대응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이 선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 역사 인식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좀 위험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적 대결이 바로 이러한 인식이다. 어린아이들의 싸움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 자기 아빠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서로 주장하는 것이다. “너희만 강대국이었니? 우리도 강대국이었어 임마! 까불지 말라고. 확 그냥!”식의 논리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는 한 마디에 담겨 있지는 않은 것인가?

  그러나 이런 제목을 담은 의도가 보다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방편이라고 보여질 뿐, 책 속의 내용은 꼼꼼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고조선의 역사를 재검토하고 서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고조선이란 나라가 역사적 사실일 뿐 아니라, 과거 중국 고대의 한나라와 견주어 손색없었던 강대국이었음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난 적어도 저자들의 집필의도가 거기에 있을 뿐이라고 보고 싶다. 그들과 똑같은 제국주의의 끝없는 열망이 담겨져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들이 밝히고 있는 이 책의 의도를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패권주의 사관은 한 세기 가까운 시차를 두고 있지만 두 사관의 한국사 공격이 고조선이란 동일한 대상에게 집중”되고 있고, “우리 국민들의 현재의 역사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식민사관’에 대해 그를 바로잡고자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역사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이다. 그것을 위한 이 책의 노력은 가히 높이 살만하다.

  이 책에서는 우선 국사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고조선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진다. 우리 국사 교과서는 대강 훌터 보아도 오류와 정리되지 않은 서술임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고조선에 대한 우리 학계의 체계화되지 못한 역사서술의 문제가 담겨 있고, 또한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 기술의 더 큰 문제가 담겨있다 하겠다. 우리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초석을 다잡는 것은 바로 우리 역사 교육의 현장부터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고조선에 대한 신화적 인식은 우리의 역사의 기초를 단순한 신화로 치부하게끔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 인식의 기초가 그런 오류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신화속의 고조선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적 사실로서, 정확한 역사 인식을 위해서 이 책은 단연 돋보이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흔히 ‘고조선’의 ‘고’가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붙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아주 기본적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었으니, 다 아는 듯하지만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 역사의 시작이랄 수 있는 ‘고조선’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이 외에도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전체적 맥락이 고조선이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던 강대국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만 우리 역사가 광대한 제국의 역사를 가졌었다는 뿌듯한 자랑거리로만 다가오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이 우리에게 보다 가치가 있는 부분은 고조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갖추게 하는 것임에 있다고 하겠다. 고조선을 알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 책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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