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수록 시의 시인을 만나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정.일.근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된 시인을 찾아가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은 바람직한 시교육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직업이다. 해당 작품을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자신의 시를 어떻게 교육하기 바라는지, 혹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것들을 배우고 느끼길 바라는지를 물어보고, 그들의 대답을 듣는 것은 바람직한 시 교육을 위한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는 중학교(1-2)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연작시「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 유리창 청소」의 작가 정일근 시인을 만났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학생들이 어떠한 것들을 배우고 어떻게 감상하기를 바라는지, 더 나아가 바람직한 시 교육을 위한 선생님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 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 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 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01년 지금 살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솥발산 자락에 들어오면서 '전업시인'을 선언했습니다. 전업시인이란 시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쓰는 일이 주업이니 시를 많이 씁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마당 텃밭에 어머니와 함께 배추 15포기를 심었는데 5포기는 실패하고 지금은 남은 10포기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올해 제 손으로 키운 배추로 김장을 담는 즐거움에도 빠져 있습니다.

연작 시「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유리창 청소)가 현재 중학교 1-2학기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 창작 당시의 상황이나 작품을 쓰게 된 배경, 후일담 등을 말씀해 주세요.
1985년에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진해남중학교에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3년 반을 시의 제목 그대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인 모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지금의 교육여건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는데 정규 수업이 30시간, 보충수업이 13, 4시간으로 주당 43시간 이상을 수업하는 후진국 교사였습니다. 저는 그런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불만이 많앗습니다. 대학시절과 휴학시절을 포함해서 7년을 야학교사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1984년 10월에 '야학일기'라는 연작시 등으로 당시 무크지였던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을 하고 1985년 1월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 당선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교육시'를 썼던 시인일 것입니다. 그 이후에 교육시와 교육문제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해남중에 근무하면서도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시를 썼습니다. 모두 피가 뜨거웠던 20대에 썼던 시들입니다. 함께 했던『시힘』동인 중의 한 명인 안도현 시인도 당시 이리중학교에 국어교사로 있었는데 안 시인에게 교육현장의 시를 쓰자고 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은 모두 11편을 썼습니다. 제가 담임을 했던 '열이'에 대한 이야기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홈(HTTP://WWW.1318POEM.NET/)에서 제가 쓴 '처음의 아름다움'이란 산문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현재 일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시를 다음<첨부1>과 같이 배우고 있으며 평가<첨부2>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첨부1>과 <첨부2>는 어떤 문제집에서 따온 듯 하다.)
저는 시는 읽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수업에서의 시는 시험을 전제로 한 학습이 되다보니 어려서부터 시를 읽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배웠고 저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만 시의 이해는 교육을 통해서 이뤄지기 보다 시를 읽는 사람 스스로 시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모 중학교 국어선생님께서 제 시에 대한 시험문제를 들려주고 답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모두가 답이 될 수 있고 답이 아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관적인 시에 너무 객관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이 시 읽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에 혼이 난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멀리하게 됩니다. 시가 시험이 아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그 처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시를 통해서 독자(학생)들이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길 바라는지, 말씀해 주세요.
교과서에 수록된 제 시는 스무 해 전에 쓴 시입니다. 그 사이 저의 시 세계는 많이 변화되어왔습니다. 그 한 편의 시를 읽히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다른 대표작들도 함께 읽혀서 한 시인을 이해하는 교육도 함께 되었으면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과서에 실린 저의 작품은 연작시「바다가 보이는 교실」중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나머지 9작품도 함께 읽어보고 감상함으로써 다양한 시적인 감수성과, 시적 상황을 폭넓게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들이 좋은 시를 많이 외웠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한 사람이 인생을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외운 시는 지금도 외우고 있습니다. 평생을 외우는 명시는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을 통해서 꼭 이뤄졌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시 교육이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울러 시 교육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루어져야 한다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생각이 있으시면 덧붙여 말씀해 주세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위의 물음에 대한 답과 중복이 됩니다만, 먼저 스스로 시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만드는, 시와 친구되게 하는 교육도 필요합니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시를 읽게 한다면 한 사람의 평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급학교 진학이 아닌 평생교육으로 시를 가르쳐주었으면 합니다. 현재의 평가방식에 관해서는, 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시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행평가에서 좋은 시집을 많이 읽고 좋은 시를 많이 외우고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는 학생들에는 국어점수에 가산점이 있었으면 합니다.

교과서라는 매체의 특성상 수록된 작품의 영향력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수록 작품 선정기준이 있다면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생각하는 시 선정은 필요합니다. 곧 중학교 국정교과서도 검인정 교과서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시를 선정하시는 분들이 시인의 명망에만 기대기보다는 시를 우선하는 시인(詩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선생님들에게 많은 의견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안빈낙도가 즐거움이니 욕심 없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늘 건강이 조심스러운데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시를 쓰는 것이 꿈이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일이 제 계획입니다.

정일근 선생님은 자신의 시를 통하여 학생들이 시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셨다. 때문에 시인은 단순히 교과서에 실린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연작시들도 함께 교육되길 기대하였으며 아울러, 학생들에게 시를 많이 접하게 하고, 많이 외우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 시를 가까이하고, 시적인 체험을 경험하는 것은 자기를 발견하고 반성과 발전의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현재 학교에서의 시 교육은 시험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어서 안타까우며, 주관적인 시에 너무 객관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은 시 읽기를 방해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에 혼이 난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멀리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가 시험이 아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그 처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정일근 시인의 말은 학교 현장에서 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미약하지만, 바람직한 시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시 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 지속될 때, 학교 현장에서의 시 교육은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일근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바람직한 시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다짐해 본다.

정일근 시인은 현재 울산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문화공동체-다운재(http://www.ulsan21.com/)'에 가면, 그가 지역 사회 문화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애정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문학은 그동안 너무 중앙 중심적이었다. 다양성을 상실한 채, 몇몇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에 의해서 한국 문학은 이야기 되어 왔던 것이다. 지방 문학의 발전은 결국 우리 문학 전체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또한 한국 문학의 한국다움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일근 시인의 노력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일근 선생님을 첫 번째 인터뷰 시인으로 선정하였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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