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
천양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천양희 시인. 그녀를 만난 건 요 몇달 전의 일이다. 오늘은 2007년 정해년. 돼지는 돼지인데, 600년에 한 번 온다는 황금돼지의 해란다. 황금박쥐가 아닌 황금돼지가 날아온지 꼭 1시간 37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막 천양희의 시 에세이를 고즈넉하게 읽고 말았다. 여기서 잠깐 천양희의 시 한 편 다시 새겨보자.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위눈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 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천양희 시인이 어느 해 신년시로 주었다는 <바람을 맞다>란 시다. 몇 년도의 신년시인지를 따져서 황금돼지해 벽두에는 아니올시다 하는 것은 어리석다. 시란 時와 같아서 흐르고 흘러 어느덧 또 한 번의 1월 1일이 왔으니, 여전히 오늘 이 벽두에는 이 시가 썩 잘 어울린다. 찬 바람이어도 좋으려니, '바람을 맞다'가 문득, 옛시인의 노래가 떠오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읊었던 발레리의 시구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천양희의 우리를 위한 신년의 희망찬 목소리는 2007년 새해의 찬바람을 맞고서 또 한 세상 열심히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라는 것에 다름아닐 터이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당신도 알고 있는가? 알지 못한다면, 이 책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를 읽어보시라. 내가 이 책을 2006년의 끝자락에서 읽고, 2007년 벽두에 되새기는 것은 다만 우연의 작용이었을까? 필연이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만은 우연치고는 제법 내게 느껴지는바 많고, 그 시의적절한 울림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를 되뇌이게 한 것은 꼭 이날의 나를 위한 변주곡처럼 느껴진다. 시와 함께 가는 해와 오는 해 사이에서 '거닐'었다는 것은 내게 허락되어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생 동안 행복했던 시간은 겨우 17시간이었다고 고백"한 괴테보다 내 지금까지의 여생에서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았을 것 같지 않지만, 이 행복한 시간은 빠지지 않고 계산되어져야 할 것 같다. 시를 만나는 기쁨은 그것이 사랑이었건 이별이었건 슬픔의 통곡이었건 간에, 행복한 시간에서 빠져서는 안 될 것이리라.

이 책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는 한 가슴여린 시인의 시 감상기라고나 할까? 그 시의 숲에서 울고 웃었던 한 여인의 살풀이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읽기만 해도 좋으련만, 천양희가 울고 웃었던 데서는 나도 모르게 울고 웃었고, 그녀의 살풀이 춤사위에 교묘히 빠져들었다. 같이 숲을 거닐었거니와 한동안은 그 숲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이 주옥같은 시들의 마을에서 누가 감히 탈출을 시도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반역을 꿈꿀 수 조차 없다. 아니 꿈꾸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함께 '시의 숲을 거닐'면서 나는 천양희의 길고 긴 시의 낭송을 듣는 듯 했다. 옛시인들이 남긴 가슴의 한 움큼 어린 그 무엇들을 천양희의 가슴울림으로 전해 들으면서, 그에 덧붙인 천양희의 감성어린 되새김을 내 가슴으로 담으면서, 한 구절 한 구절들이 마치 하나의 시와 같았다. 이 책은 그래서 한 편의 시라고 말하고 싶다. 제목은 "시의 숲을 거닐다". 천양희는 바로 이 시를 써내려간 것은 아닐까?

여기에 엮인 글들은 천양희 시인이 조선일보 <문학의 숲>에 연재한 것들이란다. 조선일보라는 것이 좀 꺼림직하지만 뭐 어떠랴? 이 주옥의 시편들도 조선일보의 독자들에게 골고루 은혜를 부어주어야 할 것을. 우리의 귀에 낯익은 듯한 구절들도 만날 수 있고, 또는 전혀 듣지 못했던 귀한 시구들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헤세에서 괴테, 발레리와 뮈세, 그리고 신석정과 백석에 이르기까지 귀하고 귀한 우리의 옛 시인들의 구구절절 귀한 엑기스들이 들어 있다. 몇 구절 맛좀 볼까?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들어보자.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것 / 아름다움을 헤아릴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의 현재 살아 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성공'이라니? 그러고 보면 나는 '성공'한 사람일까? 우리 어머니가 있지 않은가? 그래, 적어도 난 단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봄직 하다.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 <슬픔>의 이 시구절은 어떤가?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내게 남은 진실이라는 것은 '이따금 울어'보지도 못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닐까? "사랑은 시인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랑은 시인에게 의미가 없다"고 뮈세는 말했다. 아 그래서 난 시인이 못되나 보다. 앞으론 나도 나의 진실을 찾아서 '이따금 울어'보아야 겠다.

예세닌과 마야코스프키의 죽음을 넘은 시의 대화를 한 번 볼까? 예세닌이 죽기 전에 <안녕 내 친구>라는 시를 남겼는데, 그 마지막 구절에서 "이 세상에서 죽음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건만 / 삶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네"라고 읊었다. 여기에 그의 죽음을 가슴아파한 마야코스프키는 이렇게 답했다 한다.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네 / 살아내는 것이 더 어렵다네." 절친한 친구를 잃은 마야코스프키는 그 "살아내는 것"의 어려움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또한 자살을 하고 만다.

유치환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에서처럼 <그리움>은 우리를 어쩔 수 없게한다. 그래서 이 '그리움'은 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천년을 가도 변하지 않을 시의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다. 우리의 천상 시인 천상병의 시도 한 번 보자.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아! 천상병의 헤맑은 웃음이 떠오르면서 천상병 그는 천상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천상 시인이란 걸 다시 한번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그에게 무슨 '생활'이 부유해서 '걱정'이 없었을까? 그깟 대학 나와서 뭐하나 제대로 해 본 것 없으니 '부족' 없었다 말할텐가? '시인'이라는 그 명함이 뭐에 그리 '명예'로왔던가? '아내', 이것은 인정하자, 천상병 시인의 사모님은 참 아름다우시다. 세상에 천상병의 천씨 손을 내어놓지 못한 것은 그에게는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정 행복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 모든 것에 만족하고 즐거움을 찾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던 시구를 떠오릴때, 천상병은 그래도 웃음지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그 주옥의 시 줄기들의 몇몇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구구절절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천금과 같은 노래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래서 '주옥'이라는 과장법의 수식어구는 이 책에 있어서 만큼은 결코 과장법의 수사가 아니다. 아니 너무 평범하기까지 하다.

대부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이다. 우리의 상식과 교양의 수준에서 몇몇의 이름은 떠올리고, 몇몇의 시구들은 읊조려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상식과 교양의 수준의 지평은 넓어질 수 있고, 깊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시인 수팅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외에도 세계적 시인, 천재적 시인들과 얽힌 기묘한 이야기들, 에피소드들을 곁들이고 있어 재미 또한 남다르다. 천양희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시의 숲을 거닐' 당신에게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나는 읊어본다. 사는 것이 슬픔이어도 좋고, 그리움이어도 좋다. "이따금 울어'볼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것이 내게 '진실'로 남을테니 말이다. 삶의 진실은 다른데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의 옛시인들이 눈물 흘리고 가슴시리게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시들에 분명 우리 삶의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아!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라던 백석의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 시구들을 이 밤에 읽어보고 싶어진다. 나는 '시의 숲'에서 당분간 나올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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