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시 좋아하니?

시교육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무래도 '학생들은 시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아주 편안한 자리에서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때, 바로 그 때 나오는 시교육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몹시도 궁금했던 만큼 실제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른바 난상토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의 영특함은 빛이 났고 표정은 밝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고, 시교육 전반에 관해서도 정확히 짚어 냈다. 우리는 이 난상토론을 이어나가면서 학생들이 우리에게 현재 시교육을 반성하고 하루 빨리 대안을 모색하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중학생들의 난상토론

수업시간에 시를 어떻게 배우고 있나요?
"시상(詩想), 내재율 같이 시 작품에 대해 분석한 것을 주로 배워요."
"저두요. 시 작품 분석하는 걸 배웠어요. 이 시는 무슨 율격이니, 무슨 심상이니 하는 거 있잖아요. 그리고 또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삶의 모습, 작가의 생각 그런 것들도요."

"그럼, 주로 수업시간에는 작품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 것 같은데, 그러면 작품분석 외에 수행평가나 학습활동은 안 하나요?"
"시와 관련된 학습활동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시 창작은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그래요."
"저도 예서처럼 학습활동에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우리 선생님은 근데 시 창작만큼은 빠짐없이 다 했어요. 선생님을 잘 만났나…(웃음)"
"음… 수행평가나 학습활동은 잘 안하는 분위기인 것 같네요. 그렇긴 해도 시를 배울 때 조금씩이나마 했던 학습활동이나 수행평가가 효과적이긴 하던가요?"
"창작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학생 여러분들은 어떻게 시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냥 시집 같은 걸 마음대로 보게 하구요. 선생님이 우리한테 '시는 숨어 있는 뜻이 있어서, 겉에서 볼 때는 여러 가지로 그 뜻이 해석될 수 있단다. 그러니까 너희들 마음대로 생각해 보렴.'이라고 말하면서요,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걸 보면 너무 한 가지만 강요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서가 말한 것처럼 시를 많이 배우는 것도 좋긴 하겠네요."
"저도 그래요. 자기 생각대로 시를 읽을 수도 있는 거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이상해요. 그리고 시를 직접 읽게 하지 말고 간접적으로 읽게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를 읽을 수 있게요."

"시를 많이 읽고 다양하게 해석해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여러분의 생각이 옳아요. 다만 지금의 교육방식이 그런 것들을 잘 못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보기로 하죠. 좀 어려운 질문일지 모르겠는데, 여러분은 시를 배운다는 게 작품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시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야 둘 다 배우는 게 맞죠. 어느 것 하나에다 비중을 두고 우열을 논해야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시를 통한 삶을 배우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다른데요, 작품 자체를 배우는 거 같아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예전에 어떤 시인이 수능문제에 출제된 자기의 시를 풀어 봤는데 5개 중에서 2개만 맞춘 일이 있었데요. 시인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의도와는 다르게 학교에서 가르쳐서 그렇다는 거죠. 시를 통해 인생을 가르쳐야 하는데 작품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게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여러분들이 중학생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군요. 시교육을 같이 고민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임해 준 덕분인 것 같아요. 이렇게 시간 내주고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등학생들의 난상토론

시, 좋아 하나요?
"저는 문학을 매우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시를 특히 좋아하죠. 분량은 적은 반면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거든요."
"저도 시 좋아해요. 숨은 뜻이 있잖아요!"
"저는 솔직히 시보다 소설을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소설이 역사적 사실과 연관이 되어 있으면 특히나 더 좋구요. 그렇다고 시가 싫은 건 아니지만요."
"저도 소설을 좋아해요. 시는, 시어의 의미가 함축적이라 그런지 쉽게 이해할 수 없거든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개인 취향에 따라 호감도가 다르겠지요. 시에 대한 선호도가 중 · 고등학교 때 시를 배운 방식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데, 다들 시 어떻게 배웠어요? 전반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지, 학습활동이나, 시 창작, 수행평가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말해 주세요."
"우리 학교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요, 대부분의 학교에서 입시 위주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 혼자서,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시에 대한 설명으로 일관하는 방식밖에 없겠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학습활동이나 수행평가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뿐이구요. 물론 시 창작은 다른 나라 이야기지요."
"저도 비슷해요. 주로 선생님이 시 한 번 읽어주고, 주요 시구에 밑줄 긋고 의미 적고, 비유법 같은 경우는 색연필로 밑줄 긋고 무슨 비유법인지 적고, 같은 비유법끼리 묶어서 따로 체크해 두고. 수행평가라고 해봤자, 저희 학교에서는 시를 외우고 시험 보는 거 정도였어요."

시를 어떻게 배웠으면 좋겠어요?
"입시 위주 학습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시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느끼고 분석해 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수업이 됐으면 좋겠어요."
"현우 말에 동감해요. 주입식이 아니라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데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죠. 저는 시를 배울 때 그 시와 관련된 제반 사항도 다 함께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그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좀 심한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학교에서 시를 배우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EBS교육방송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은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수능에 더 도움이 되는 건 EBS교육방송이죠. EBS교육방송과는 차별되는 학교만의 학교다운 시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바람직한 시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가르치는 선생님의 열정이 필요하겠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선생님의 열정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해요. 그리고 학생들 역시 '시'라고 하면 무작정 기피하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잠깐만요. 이스리 학생, 방금 학생들이 시를 기피한다고 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래요?"
"제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시 같아요. 시를 읽어보라고 하면 갑자기 느릿느릿하게 천천히 읽는 것처럼, 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거 같아요. 시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 느끼는 게 일반적인 거 같구요. 딱 드러나지 않으니까. 시가 함축적인 데다가 한 눈에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어렵다고 하겠지요."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하지만 제가 교단에 섰을 때, 제 제자들은 적어도 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제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지만요."

시를 배운다는 것은 시 작품을 배우는 걸까요, 시 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걸까요?
"현재 학교 수업은 주로 시 작품을 배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 자체가 작가의 경험과 생각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올바른 삶의 자세를 배우고 그렇지 않은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요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거야 다 수능 위주잖아요. 그냥 집에서 시 읽으면서 인생을 깨닫는 거랑 학교나 학원에서 '이게 중요해! 이게 나온다!' 하는 거랑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해요. 입시제도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은 시 작품을 배운다는 의미가 훨씬 강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생각들이 비슷하네요. 그러고 보니 시교육의 문제가 비슷하다는 말은 해결해야 할 방향도 단순하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결코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이제부터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개선과 갱신하느냐 하는 실천의 장만 남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이렇게 모여 줘서, 또 진솔하게 이야기해 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빕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8~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