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시 어떻게 가르치고 계세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설령 이 말이 과장된 것이라 할지라도 교사는 학교교육에서 언제 어디서든 큰 의미와 비중을 지닌다.
물론 이는 어느 교과나 마찬가지이다. 문학교육, 그 중 시교육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교사들에게 물었다. 설문은 2006년 10월 한 달 동안 전국의 국어교사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설문의 결과는 응해주신 선생님들께 다시 전달했다. 설문에 답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모쪼록 이번 설문의 결과가 우리의 시교육을 살피는 데 작으나마 성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성별] 남자 32% / 여자 68%
[교직경력] 4년이하 / 4~8년 / 16~20년 / 20~24년 / 12~16년 / 8~12년
[담당학년] 고2 / 고3 / 고1 / 중2 / 중3 / 중1

예상에 비해 답신은 많지 않았다. 서둘러 마감한 탓이기도 했다. 아무튼 최종응답자 수는 74명이며 응답자들의 교직경력은 10년 미만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중학교 교사와 고등학교 교사의 비율은 35:65로 나타났다.

[가르치기 어려운 분야는 무엇입니까?] 시 40% / 소설 30% / 희곡 20% / 없음 / 수필
[문학장르 중 가장 흥미롭게 가르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시 56% / 소설 34% / 없음 / 희곡 / 수필

시, 관심 많으나 어렵다
교사들은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를 가르친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본격적인 설문에 앞서 '시교육'에 대한 교사의 개인적인 취향을 물었다. 그 결과 다른 장르와 비교해 보았을 때 '시'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흥미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더욱 주목해야 할 결과는 시가 가르치기 어려운 문학 장르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시'란 가장 흥미롭게 가르치는 장르이지만 동시에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장르인 셈이다.

[시 수업에서 시 한 편 당 할애하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1차시 36% / 1차시 미만 32% / 2차시 28%

시 수업 상황
시 한 편을 가르치는 시간을 물었다. 설문의 결과를 보면 시 한 편을 수업하는 데 1차시 또는 1차시 미만의 시간을 할애한다는 교사가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각각 45분, 50분간 진행되는 중, 고등학교 수업. 이 시간동안 하나의 시를 완전히 이해하고 느끼고 나눌 수 있을까? 현재 우리 교실의 학생 수는 35명 안팎이다. 시교육을 할 때 적정한 한 반의 학생 수는 몇 명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설문 결과에서 공통된 의견은 현재의 학생 수보다는 분명히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명의 교사가 35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감상을 하나하나 듣고 이야기할 만큼의 시간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또 주어진 교육과정 안에서 갈 길은 멀고 가르쳐야 할 것들은 많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한 편의 시를 가르치는데 45분, 50분이면 족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평가의 형태는 무엇입니까?]
객관식 평가 58% / 질의 응답식 구술평가 12% / 서술형 주관식평가 12% / 단답형 주관식평가 9% / 감상쓰기 7%

평가 형태
평가의 형태를 묻는 설문이다. 대부분의 교사가 두 가지 평가형태를 병행하지만 그 중에서도 객관식 평가를 실시한다는 교사가 58%를 차지했다. 교과서에 자신의 시가 실린 어느 시인의 말이다. "시에 대한 질문에는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오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교실에서는 아직까지도 다섯 개의 답지 중에 가장 적절한 하나를 고르는 형태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답이라기보다는 가장 적절한 대답이 정답의 이름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여러가지 모습이 그려내는 삶의 양상, 그리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들은 어느 틈에 단 한 가지만을 빼놓고는 모두가 오답이 되고 만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선명한 대안은 없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가방식이란 평가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정말 문제이다.

[시 수업 방법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개선되어야 한다 77% / 생각해 볼 문제다 19%
[시를 지도한 후에 만족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대체로 만족 55% / 만족하지 못 함 41%

시교육, 물론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수업에는 만족한다? 
이렇듯 시교육을 하기에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체의 77% 이상의 교사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시교육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 응답교사의 반 이상이 자신의 시 수업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시 수업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수업에는 만족하는 교사들. 이는 결국 현재의 시교육은 이중의 잣대 아래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 하나는 많은 시를 접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인생을 경험케 하여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고 깊게 갖도록 한다는 이상적인 시교육론이며, 다른 하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정답을 잘 찾아 높은 점수를 받게 하고 좋은 입시결과를 얻게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시교육론이다. 그래서 전자는 개선으로 이어지고 후자는 만족으로 이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보면서 정작 우리가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새 안주해 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런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대답만 횡행할 것이 두렵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만일 현재의 시교육이 개선되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시교육이 개선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양한 시교육 방법 부족 51% / 학생수가 너무 많다 22% / 교과서 시 선택 잘못 16% / 학습목표 잘못 7% / 기타 5%

시교육, 개선되어야 하는 이유
절반 이상의 교사들은 시교육의 방법이 다양하지 못한 것을 개선의 이유로 말하고 있다. 색다른 방법론에 대해 교사들은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시교육 방식을 묻는 설문에서 전체의 75%가 강의식이라 답했으며 학생 발표라 답한 교사는 16%, 토론 수업은 4%의 교사만이 답했다.
분명 시교육 방법이 다양해져야 한다. 하지만 교사들에게만 이를 책임지울 수는 없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고, 한 교사가 감당하기엔 벅찬 학생 수와 빡빡하게 주어진 교육과정 등등, 교사에게 주어져 있는 각양의 장애물을 알면서도 교사들에게 시교육의 대안과 방법을 찾안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러한 희망적 방법을 찾아내고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주체는 누구여야 하나? 물론 교사가 여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직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시험적인 노력과 시도에 참여해야 한다. 오래지 않아 시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되었을 때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범대학생들의 모색은 필요하다.

간략하나마 설문을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좋은 시교육을 해보고 싶다는 교사들의 의지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실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4~5쪽.)


 

기존의 시(교육)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그러니까 시교육의 여러 문제들을 재확인하는 설문조사 결과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시는 가르치기 어려운 분야이면서 가르치기 쉬운 분야이다. 말장난 같지만, 오늘날 우리 시교육의 현실에서는 그렇다. 제대로 된 시교육은 오늘날의 교육여건상 무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재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르치기 쉬운 분야이기도 하다는 것은, 오늘날의 시교육 현실을 질타하는 말이기도 한데, 시를 가르치는 것은 무슨 수학공식처럼, 암기과목처럼 되어 버려, 시교육의 현장에서는 뚝~딱 요점정리해서 간단한 공식들, 외워야 할 것들 가르치면 되는 것이니, 어찌 이보다 쉽지 않으랴?

어떤 점에서 시에 교사들이 흥미를 느끼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시를 가르치는 국어교사 본인도 시교육을 제대로 받았을까? 나는 분명 시교육 혹은 교수법을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국어교사들도 많은 이들이 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아는 바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나마 시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니 희망이 보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하듯이 얼마나 시교육이 얼렁뚱땅인지는 시수업상황 설문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시 한 편 가르치는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시 공식에 집어넣고, 몇개 특별한 것 외우게 하면 끝이니 오래 걸릴래야 걸릴 수가 없겠다. 소설 한 권은 대략 300쪽이 넘는다. 시 한 권은 끽해야 100쪽이다. 그런데, 나는 시 한 권을 읽고 이해하는 데 소설 한 권을 읽어내는 것보다는 곱절 이상이 걸린다. 시 한 편은 어지간한 단편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기는 하는가?

얼마전 안도현 시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내가 질문했던 것이 시교육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안도현 시인의 얘기가 재밌다. 안 그래도, 자기 시가('우리가 눈발이라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시인 아들이 그것을 학교에서 배웠다면서 문제를 내더란다. 자기 시이기도 하고, 아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질문을 하니 아니 대답하기가 그래서, 정성껏 대답을 했다는데, 아들 왈, 2개는 맞고 하나는 틀리단다. 허허!

이게 오늘날 시교육의 현주소다. 시를 놓고 객관식 문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싶다. 시는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기에 의미가 있다. 시가 어느 하나의 정답과 일대일 대응을 한다면 그건 시가 아닐지 모른다.

현직 교사들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분명 그들은 오늘날의 시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지만 자기 수업에는 만족을 한다.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혹시나, 내 수업은 괜찮은데, 다른 선생들 수업이 문제지 하는 생각일까? 그것도 하나의 해석으로 가능할 듯 하다.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자기 수업은 괜찮다는 심보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아는 선생님들 중에서는 제대로된 시교육을 위해 어려모로 도전하고 시도해 보는 분들이 많다. 교육과정이 바뀌고 나라에서 정말 제대로 된 시교육을 하라고 시켜야 바뀌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일선에서의 작은 목소리가 합쳐져 큰 목소리를 이룰 때, 큰 울림으로 울릴때 그때서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시교육 방법의 부족을 들고 있는데, 더 근본적인 것은 시를 시로서 대하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시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 그것을 우리 시교육은 회복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