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작시(作詩)를 허(許)하라!

때는 1852년(철종 3) 10월 15일, 창경궁 춘당대. 넓은 마당은 전국에서 모인 유생들로 북적인다. 두-둥, 긴장감을 머금은 북소리와 함께 시험관이 냉랭한 목소리로 시험 시작을 알리며 시제가 적힌 종이를 펼친다. 드디어 공개된 시제는 '대악여천지동화부(大樂與天地同和賦)'. 부산했던 시험장은 한숨 소리로 가득 찬다. 하지만 이내 유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붓을 들어 글쓰기에 몰두한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과거장. 철종은 큰 걸음으로 유생들이 과문을 작성하는 모습을 살피며 과거장을 거닐고……두-둥, 다시 북이 울리자 유생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붓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얼마 후, 급제자를 발표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과거장의 긴장감은 절정에 다다른다. "문과 장원에 김준(金準)!" 연이어 올해 정시 문과에 급제한 7명이 호명되고 음악이 울린다. 철종은 급제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은영연(恩榮宴)을 베푼다.

과거제도는 국가의 관리를 선발하기 위해 고려 때부터 실시된 시험으로 지금의 공무원 선발 시험에 해당한다. 유교의 숭문주의와 입신양명 정신이 지배했던 조선. 그리고 학문을 다진 후 과거를 통해 국가의 관리가 되는 것을 으뜸으로 생각했던 조선시대 사람들. 그들이 느끼는 과거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과거에는 어떤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을까? 작시(作詩)가 과거제도에서 매우 중요한 시험 중 하나였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을 살펴보면 당시 과거에서는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을 시험봤으며 제술에는 작시(作詩)가 필수 과목으로 속해 있어 시를 짓는 능력이 관리 선발의 한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은 과거에서 작시를 시험 과목으로 선정했던 것일까? 작시를 통해 무엇을 보고자 한 것일까?

일찍이 공자는 "시를 읽으면 품성이 맑게 되고 언어가 세련되며 물정에 통달되니 수양과 사교 및 정치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시가 인성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김경용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작시 능력은 개인의 경학적 지식과 논리를 전개하는 힘, 그리고 한 사람의 인성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며 특히 넓은 성품은 국가 관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기 때문에 과거에서 작시가 하나의 과목으로 채택되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한 편의 시를 짓기 위해서는 인지 능력과 논리 전개력 그리고 인성 등이 고루 발달해 있어야 하는 만큼, 시를 지어 보게 하면 이 세 가지 능력을 두루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서는 작시 과목을 채택했던 것이며, 덕분에 유생들은 과거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지식과 인성을 함께 쌓아갈 수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오늘날의 과거라 할 수 있는 공무원 선발시험은 어떻게 치러지고 있을까? 얼마 전 보도된 내용에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162대 1을 기록했다고 한다. 엄청난 경쟁률이다. 경쟁률이 이렇게 높으니 평가는 공정해야 하며 기준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공무원 시험은 주로 국어와 영어, 한국사 그리고 지원 분야에 대한 지식을 측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으로서 갖춰야할 기본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해도 공무원을 선발하는 데 양적인 인지 내용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공무원 선발시험은 논리와 인성 그리고 표현과 정서에 관한 것을 적지 않게 간과하고 있는 셈이며, 덕분에 지금의 교육은 조선의 그것보다 이런 점에서 소홀해진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이 시대에도 공무원 선발 시험에 작시(作詩)를 허(許)하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교육에서도, 세상을 넓게 보며 만사에 두루 해박하고 다양하게 생각하며 또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인재를 길러내자는 것이다. 시를 통해, 그리고 시교육을 통해 한결 두툼한 인재를 길러내자는 것이다.
(<시교육> 001호, 3쪽.)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펴낸 <시교육>이란 잡지의 권두언쯤된다.

공무원 시험에 작시라니? 가상한 상상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공무원 시험에 작시를 포함시키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도 의문이고, 불을 보듯 뻔히 예상되듯이 격렬한 반발도 있을 것이다.

우선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과거의 과거시험과 현재의 공무원 시험을 동급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말하자면 현재의 공무원 시험은 그야말로 행정직 하급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과거의 과거시험은 이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 않겠는가? 격이 조금 다르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볼 문제는, 그때의 작시와 지금의 작시가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시험에서의 작시에는 큰 틀이 있어야 했다. 단순한 인지능력과 논리 뿐만이 아니라, 유교(성리학) 사상을 바탕으로 시 전체에 그것이 함축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담겨 있어야 했던 것이다. 거기에 당근 충효예가 빠질 수가 없을 것인데, 이걸 두고 인성이라 하다면, 어쩔수 없으리라.

형식적으로도 정형시의 형태를 띄었으니, 지금의 시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작시를 하더라도 거기에 평가의 기준이 명확했던 것인데, 형식과 내용면에서 명확한 기준은 평가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이것이 가능할까? 정형시를 쓰라고 해야할까? 내용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예를 지키며 살아가자, 뭐 그런 내용으로 시를 써야 할까? 사랑시를 쓰면 안될까? 풍자시도 어떨까? 해체시를 한 번 써볼까? 어려운 일이다.

딴지 걸자는 건 아닌데, 어떤 식으로든, 문학이든 시이든 간에, 각종 국가고시 등에서 반영된다면 그것의 중요성이 높아지게 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만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는 다소 의문이다. 하여간 시교육에만 국한하여 생각해도, 진정한 시교육이 국가고시에서 평가될 수 있는 종류는 아닐 것이다. 시교육의 미래를 보다 진중하게 생각해보고 그 대안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공무원 시험, 작시를 허하라!"고 하는 둥의 가상한 상상은 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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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2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은 '이를테면'의 의미가 아니라 정말 '작시'를 원한 것일까요? 그랬다면 상상력이 무지 풍부한 것 같아요^^;;;;

멜기세덱 2006-12-2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겠죠? 요즘 논술이 뜨고 있는데, 미래를 내다보고 작시 공부를 좀 해서 그쪽으로 함 나가볼까요...ㅎㅎ 제 생각은 우리나라 시교육은 여러 잡다한 것 빼고, 시가 시로서 다가가고 다가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랍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