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追慕辭]

安秉禧 先生을 追慕함

南豊鉉(韓國語文會 副理事長)


  安秉禧 先生이 지난 10月 24日 別世하셨다. 10年餘의 오랜 동안을 超人的인 意志로 病魔와 싸웠지만 그예 돌아갔으니 哀痛하기 그지없다.

  安 先生은 나의 大學 3年 先輩이지만 學問의 깊이와 圓熟함에 있어선 스승과 같은 분이었다. 내가 大學에 入學해서 첫 學期를 마쳤을 때 大學에서 獎學生의 名單을 揭示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成績도 함께 揭示하였는데 先生의 成績은 올A이어서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先生은 學生 時節부터 出衆하였었다. 先生이 碩士論文을 準備할 때는 心岳 李崇寧 先生님께서 稱讚을 아끼지 않으셨다. 講義 時間마다 中世國語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주는 資料가 繼續 發掘되고 있다고 흐뭇해하시면서 한便으론 先生을 後輩들이 奮發하도록 하는 表象으로 삼으시었다. 그 碩士論文 ‘十五世紀 國語의 活用語幹에 對한 形態論的 硏究’는 豊富한 資料와 緻密한 分析으로 中世國語의 語幹 形態를 記述한 것으로, 只今도 國語史 硏究의 古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以後 先生은 中世國語의 文法論에 對하여 珠玉 같은 論文들을 發表하여 이 方面을 代表하는 硏究者로 認定되어 왔다.

  1970年代부터는 國語史 資料에 對한 文獻學的 硏究에 힘을 기울였다. 資料의 書誌가 分明해야 基盤이 튼튼한 國語史를 確立할 수 있다는 信念을 가지고 15, 16世紀 國語의 文獻 資料들을 涉獵하여 書誌學的으로 그 年代와 資料的 價値를 究明하였다. 이 方面에 對한 先生의 造詣는 매우 깊어서 後에 文化財委員의 重責을 맡아 貢獻한 바가 컸다. 한便 吏讀와 口訣의 硏究에도 새로운 길을 터서 ‘中世國語 口訣의 硏究’는 이 方面 硏究를 草創한 業績이 되어 있다.

  1990年부터는 國語硏究所長과 初代 國立國語硏究院長으로서 硏究院의 基盤을 튼튼하게 세워 나갔다. 한便 南北韓의 言語가 圓滿하게 疏通될 수 있게 하기 爲하여 南北韓의 國語를 아우르는 大辭典의 編纂을 着手하여 後에 그 結實로 ꡔ標準國語大辭典ꡕ이 나왔다. 또한 漢字文化圈에 있어서 漢字 字形의 統一이 重要함을 認識하고 韓 ․ 中 ․ 日 三國이 共通 字形을 協議 ․ 確立하기 爲한 共同 硏究를 推進하였다. 우리 韓國語文會의 理事로서 國漢混用을 通한 國語生活의 正常化를 爲하여 或은 論文을 通하여, 或은 有用한 忠告를 通하여 學會의 發展에 寄與한 바가 매우 컸다.

  先生은 誠實함의 極致로써 學問에 臨하여는 充實한 資料 收集과 明快한 分析으로 成就한 바가 크고도 깊다. 그리하여 同學과 後學들에게 學問하는 姿勢의 指標가 되어 왔다. 이제 先生이 돌아갔으니 그 빈자리를 채울 만한 이는 좀처럼 나오기 힘들 것이다.

  어허! 先生의 永眠은 이 後輩에게 그립고도 哀痛한 마음을 그지없게 하는구나.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