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散文의 香氣]
漢字 通譯 笑話
얼마 前 새로 開店한 어느 毛物廛(털옷)에 들렀었다. 그때 마침 中年 紳士 한 사람이 들어왔는데 홍콩 아니면 臺灣에서 온 듯한 中國人이었다.
털옷은 거의가 女子 옷인데 ‘마이 와이프니, 프레센트니’ 하는 말을 하며 그 中國人은 自己 婦人에게 膳物로 줄 털옷을 고르기 始作했다.
그런데 그 中國人은 韓國말을 全然 못했고 가게 主人은 相對的으로 中國말을 全然 알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손짓 발짓 제스추어를 쓰면서 벙어리式으로 털옷 흥정이 始作되었는데, 그 中國人이 ‘이 털이 무슨 털’이냐고 묻는 模樣이었다.
가게 主人은 그 털이 토끼털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토끼를 英語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唐慌하다가 나에게 “토끼를 漢字로 어떻게 씁니까”고 묻기에 ‘兎’字를 써 보이니 그 中國人은 알았다는 表情으로 나에게 微笑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그 中國人은 또 다른 털옷을 가리키며 ‘저 털은 무슨 털’이냐고 묻는 模樣인데 주인은 또다시 나에게 “저 털은 삵괭이 털인데 삵괭이는 漢字로 어떻게 씁니까”고 묻기에 ‘狸’字를 써 보였더니 中國人은 또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微笑를 지었다. 結果는는 그 中國人은 털옷 한 벌을 사갔고 가게 主人은 開店 마수거리를 財數 좋게 잘하였다.
위와 같은 얘기를 紹介하는 까닭은, 이즈막에 ‘漢字敎育’ 問題를 둘러싸고 曰可曰否하는데, 極히 작은 例이지만, 가게 主人은 高校 出身이었지만 解放 後 學校에서 漢字敎育을 못 받은 한글專用論者들에 依한 犧牲者가 되었고, 筆者는 普通學校 4年 卒業生이지만 常用漢字를 배웠던 탓으로, 英語도 中國語도 못하지만 漢字 한두 字로 中國人과 充分한 意思疏通을 할 수 있었으니, 漢字敎育은 絶對로 國民學校에서부터 하루빨리 實施할 것을 强調함에 있는 것이다.
解放 後에 우리나라에서는 言語政策面에서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無定見 ․ 無思慮한 文敎政策의 拙劣 貧困으로 4半世紀에 걸쳐 國 ․ 中 ․ 高校에서 漢字敎育을 全廢했는데, 그 結果는 大學을 나왔어도 新聞 한 張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酷評을 免치 못할 程度의 學士文盲을 大量 輩出했고, 恩師에게 보내는 問安 便紙 끝에 “先生님의 冥福을 빕니다”라는 넌센스 風聞도 있었고, 各種 公納金 告知書에도 ‘魚魯不辨’으로 筆者의 이름字에 誤書가 頻繁하니 이 責任은 確實히 文敎部에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言語와 文章에 漢文과 漢字語를 많이 使用해 왔고 앞으로도 使用치 않을 수 없는데 漢字語와 文章을 純 한글로만 記錄하면, 漢字의 素養이 全然 없는 사람은 그 글을 읽기는 하되, 그 內面에 包含되어 있는 참뜻을 充分히 理解할 수가 없는 것이다.(中略)
넓고 깊고 긴 眼目으로 보아 한글專用論者들이 아무리 ‘不共載天之讎’와 같이 怨讐視하는 漢字이지만 부지런히 배워서 우리 傳統文化를 硏究하고 社會活動에서나 또는 國際 舞臺에서도 有能하고 完璧한 活動을 할 수 있는 人格者를 많이 養成해 내야 되지 않겠는가? 視野를 넓게 또 멀리 내다보라.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 않은가. (<讀書生活> 15號, 77.2)
(『通文館 冊房秘話』의 「學士文盲」中에서)
이 冊은 李謙魯 先生이 新聞과 雜誌에 寄稿한 글, ꡔ月印釋譜ꡕ와 ꡔ月印千江之曲ꡕ 같은 古書 收集에 얽힌 事緣, 書誌學에 對한 硏究 論稿를 모아서 刊行한 것이다.
李謙魯(1909~2006)
略歷
․ 1909年 平南 龍岡 出生
․ 1925年 삼화公立普通學校 卒業 後 上京
․ 1934年 金港堂 運營
․ 1945年 通文館(前 金港堂 書店) 代表
․ 1969年 韓國語文敎育硏究會 創立理事
․ 1992年 韓國儒道會 理事
著書
『通文館 冊房秘話』(1987)
『文房四友』(1989)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