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生活 바로잡기> 한글專用論과 國漢混用論의 虛實(5)

말과 뜻과 소리와 글자

鄭琦鎬(仁荷大 人文學部 名譽敎授)


  글은 ‘말의 소리’(1914年 刊行된 周時經 先生의 冊 標題이기도 하다.)를 적은 것이요 글자는 소리를 적는 符號다. 우리에게는 世界 最高의 한글이라는 소리 符號가 있다. 그러니 한글만 쓰면 되고 한글만 써야한다.―우리의 停滯가 漢字 때문이라는 20世紀 初 以來의 專用論의 이 金科玉條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言語의 基本 公理를 내세운 ‘소리’얘기를 또 들어도 ‘事實’은 別般 새롭지도 않다. 이 學術的 公理도 모르는, 도깨비씨름 얘기 같은 混用論이라 하지만 公理가 그렇게 밖에 解說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으니 ‘事實’은 別般 부끄럽지도 않다.

  筆者는 “恣意的 音聲 記號의 體系”라는 어려운 말을 제대로 理解할 能力도 없으며, 그 公理 뒤의 理論이 어떻게 展開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言語學의 門外漢이지만 그저 常識으로 생각해 보자.

  言語(말)는 사람의 생각을 規制하고 사람의 생각을 表現 ․ 傳達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뜻’이다. 그 뜻이 소리로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뜻과 分離된 소리는 말의 次元이 아니다. 그저 物理的인 소리(空氣의 振動), 動物의 울음소리를 말이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形態의 ‘素’라 해도 뜻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 ‘말의 소리’는 뜻에 따라 各各 달라지는 構造物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하나 다르게 짜여진 소리 덩어리’다. 그것이 “恣意的 (音聲) 記號의 體系”라는 것일 게다. 專用論者(言語學者?)는 ‘恣意的’ ‘體系’같은 ‘소리’ 다음의 말의 ‘뜻’을 모르는 模樣이다. 그리고 ‘소리만’ 내세운다. 그 소리 덩어리(體系)를 어떤 글자로 어떻게 적느냐 하는 것까지 言語 公理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적힌 文字(表音) 構造가 말의 소리 構造와 一致하는 法도 別로 없다. 一例로 英語를 볼 때 alphabet 26字와 소리 덩어리 表記의 一定한 對應關係는 없다. ‘man make banana party daughter’―그 글자들의 ‘짜임’의 個別性도 그렇거니와 그 속의 ‘a’만 보더라도 그 소리는 ‘æ ei ə ɘ: ɑ ɑ: ɔ: …’ 等으로 다르다. ‘소리 적는 符號(글자)’를 익혔다고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中-高 그 위에 大學까지 그 많은 時間 配定으로 英語 敎育 받고 얼마나 英‘語’를 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말이 되기 위해 入力되어야 할 單位가 다만 소리 그 소리 符號 單位인 것은 아니다. 表音文字의 宿命이다. 그런데 글은 말의 소리를 적은 것, 글자는 소리 적는 符號일 뿐이라고 强調하는 專用論者의 뜻은 무엇인가. 公理를 提示한 다음에도 “言語는 文字 記號의 體系가 아니다.”라고 덧붙이고 “文字와 關係없이 理解하는 것이 言語”라고 强調하니―一般은 소리말이면 그만이고 글자말은 있어도 없어도 相關없는 것으로 듣는다. 幼兒語, 日常語 말고 모든 知識語를 우리는 文字를 通해서 익힌다. 初等學校부터 ‘敎科書’를 通해 익힌다.

  말의 소리 소리글자만을 내세우는 것은 表音文字 漢字는 소리와 關係없는 文字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적어도 소리文字의 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소리글자들이 글자와 關係없는 뜻의 複雜한 構造物들을 따로 入力시키는 것과 달리 漢字는 한 소리 한 뜻을 同時에 入力한다. 初等學校 2千餘 字면 1萬餘 ‘語’를 쉽게 익힌다(後述). 2,000餘 字 익히기는 1萬餘 單語의 소리덩어리와 함께 익혀야 하는 소리말 敎育 配定時間의 몇 十分의 1이면 足할 것을 말과 글자의 次元을 뒤엎어 쉽고 어려운 逆의 論說을 일삼아 韓國人을 戱弄하다. (<語文생활> 통원 제109호,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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