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란 이름을 안 것은 대학에 갓 입학해서다. 내 전공이 국어교육이고, 그러다보니 대학 1학년 필수과목 중의 하나가 <국어학개설>이다. 이런 언어학 관련 강의 첫 시간에는 의례히 언급되는 몇몇의 이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촘스키다.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 격으로 촘스키는 언급된다. 변형문법은 최근까지의 언어학계에 있어 거의 지배적 이론의 위치에 있다. 그렇기에 촘스키란 이름은 세계적 권위의 언어학자  쯤으로 기억되어졌다.

  촘스키란 이름은 그렇게 기억되었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발음상 쉽고 재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그의 이름이 들려오는 곳에 <언어학>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촘스키가 그 촘스키가 아닌가 보다 했다. 그러나 이 촘스키는 그 촘스키였던 것이다.

  언어학자, 그것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언어학자, 언어학계에서 ‘한 획을’ 굵직하게 그어 논 大언어학자가 언어학하고는 별반, 아니 거의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그 이름이 크게 울리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정치, 외교, 언론 등의 분야에서 그의 비판적 목소리에는 그의 언어학자로서의 목소리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 관심을 끌었다.

  사실 촘스키의 이름이 내게 크게 울리면서 ‘그를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우선 촘스키란 이름을 처음 접했던 그때의 모습, 바로 언어학자로서의 촘스키를 아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언어학 관련 저서를 접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저서를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촘스키 읽기는 지금까지 미뤄져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촘스키 과련 서적을 구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어학 관련 서적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촘스키 읽기를 시작하겠다는 뜻은 없었다. 단순히 언젠가는 읽게 될 것이니, 이 기회(값싸게 살)에 사 둬서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구입하게 된 것이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3권의 시리즈였고 덤으로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를 얻었다. 그 후로 조금은 오랫동안 내 책상위에 쌓여 있었다.

  이제야 그 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이 책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이다. 그리고 하루하고 반나절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이 책을 읽었다. 쉽고 흥미 있었기 때문이다. 촘스키의 명쾌하면서 신랄한 비판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이제 촘스키 읽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만약 내가 애초의 언어학 관련 저서로부터 촘스키 읽기가 시작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면서, 아 이게 천만다행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촘스키가 말하는 것들은 우리가 대부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는 것들이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 ‘돈을 가진 자’, 그리고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권력’, ‘권력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를 잘 알지 못한다. 촘스키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언어학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날카로운 시각의 정치비평가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언어학자의 모습이 아닌 촘스키는 더 다가가고 싶게 나를 유혹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천만의 다행.

  사실 촘스키를 ‘집어 들게’한 것은 『시대의 양심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이다. 거기에 실린 짤막한 인터뷰에서 촘스키의 비판적 목소리를 엿들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도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시대의 양심~』에서 접했던 촘스키의 모습을 계속해서 읽어볼 수 있었다. 좀 더 친근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촘스키가 말하는 것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현대의)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지식인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곧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식인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족속들은 그 진실이 말해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제도라는 이름을 그것을 가둬둔다. 여기에도 촘스키의 목소리는 칼날을 드리운다.


“내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생각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정직하다면 반대편의 주장까지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탄원서에라도 서명하겠다는 촘스키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는 촘스키에게 “표현의 자유”란 생명과도 같다.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의 촘스키의 사명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거기에 “표현의 자유”는 지식인으로서 살아있게 하는 숨결과도 같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물음은 너무 자명하다. 그러나 너무 자명하기에 우리는 거기에 무관심하다. 우리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그러한 무관심 속에 우리를 지배하는 그 무엇들은 더욱더 그 세력을 공고히 하고 우리를 헤어 나올 수 없는 암흑 속으로, 곧 無知 속으로 밀어 넣는다. 촘스키는 우리들에게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앎이 곧 힘이다.

  이 시대를 일컬어 우리는 ‘자본주의’의 시대라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의심하라”(『시대의 양심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는 촘스키는 진정한 “자본주의는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 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라고 ‘현재의 경제체제’를 정의한다. 몇몇의 거대한 기업들이 이 세계의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를 어떻게 ‘자본주의’라 칭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라는 이름하에 이러한 세력들은 모든 ‘경제’를 독점하고 지배한다.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위해 별의별 수단을 동원한다. 여기에 우리는 무기력하게 지배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촘스키의 목소리는 친절히(?) 다가온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미국의 지배하에 떨어지고 말았”다고 말이다. 모든 것들을 먹어 삼키기 위해 범죄로 서슴지 않는 그들인 것이다.

  그들은 경제를 지배하고, 자본을 독점하기 위해 ‘권력’을 동원한다. 나아가 ‘권력’을 소유하고자 한다. 다국적 기업들은 어지간한 국가보다도 그 힘이 세다. 국가보다도 힘이 센 다국적 기업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촘스키는 말한다. “대중이 저항하고 싸워서 때때로 승리를 거둘 때에야 진정한 변화가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알지 못하면 저항할 수 없고, 싸울 수 없다. 그러니 오늘날의 현실에 어떤 변화가 있겠는가? 우리는 알아야 하고, 지식인은 ‘진실’을 말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민주주의’ 또한 의심한다. 의심의 도를 넘어 아예 ‘가짜’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라고 과감히 말한다. ‘방관자’, 그렇다. 그래야만 그들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함부로 시비 걸지 못하게 아예 그 근본을 없애겠다는 노릇인 것이다. 때로는 협박을 동원하기도 한다. “전쟁에 대한 공포심 조장”이 그것이다. 우리도 이 대목에서는 크게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협박에 어지간히 당해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렇게 ‘방관자’를 만드는 민주주의, 그리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은 오늘날의 지배체제는 그 ‘정당성’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 “모든 형태의 지배구조를 찾아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촉구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할 수 있는가? “가난한 흑인은 암살해도 상관없지만 권력을 움켜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 사회에서 말이다. 언론? 지식인들? 그들을 촘스키는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에게 ‘정당성’을 묻지 않는다. “권력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에게 순응하고 동조한다.

  그러나 모든 지식인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촘스키와 같은 극히 일부의 지식인들이 있어 우리에게 이러한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와 같은 지식인들이 너무 미미하기에 그들의 대략 ‘미친 놈’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굴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내 목표”라고 말하는 촘스키의 목소리는 더욱더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절대 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미국과 영국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두렵게 생각하고, 그들이 언제라도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 국가이익을 위협받을 때마다 미국은 ‘비합리적이고 반드시 보복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동네 뒷골목의 불량배쯤으로 여기면 그만일까? 폭력조직 일제단속 기간에 조직폭력배로 구속시키면 되는 것일까? 어불성설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아래 우리는 시나브로 종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라면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줘야” 하고 “비밀로 감추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며, “모든 문서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우리는 참 무서운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이 책을 통해 촘스키의 날카로운 시각과 명쾌한 열변에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두려움과 무서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힘’을 기르고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떠오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세상일을 염려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그 사람, 바로 촘스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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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6-12-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전투적인 조직의 초청이라면 전국, 전세계 어디라도" 간다는 촘스키를 우리 알라딘 서재님들과 함께 초청해 보면 어떨까? ㅎㅎ 근데, 우리가 '전투적'이기는 한가? ㅎㅎ

딸기 2007-01-1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촘스키는 그 촘스키였던 것이다." 재밌어요 ^^
반대로 저는, 비판적 지식인 촘스키의 글은 많이 읽었는데,
정작 언어학자 촘스키를 몰라서 많이 아쉬워요. 생성문법에 대해 들은 거라곤
과학책(생물학책)들에서 단편적으로 본 것 밖에 없거든요.

그러고보니,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멜기세덱 2007-01-1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 유명한 딸기님 맞으시죠! ㅎㅎ 몸소 찾아와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너무나 기쁘답니다. 많은 분들의 귀한 서재를 몰래몰래 훔쳐보면서 먼저 인사드리지 못하는 저는 참 못났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드려요. 아참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랍니다. 너무 좋아요...ㅎㅎ

딸기 2007-01-1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히히 그 유명한 딸기냐고 하면, 유명하긴 하지요. '딸기'를 모르는 사람은 갓난아기 말고는 없을테니까요.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
근데 저는 정작 딸기를 안 좋아해요. ㅋㅋ 시어서... 인삼딸기는 그래도 괜찮아요, 안 시니깐.

멜기세덱 2007-01-1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삼딸기도 있나요? 난 왠지 인삼은 싫은뎅..ㅎㅎ 하긴 알라딘 갓난서재인 말고 '딸기'님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거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