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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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전쟁 후의 폐허의 도시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던 지옥의 꿈을 꾸곤 했다. 언제 총알이 나의 관자놀이나 심장을 관통하며 지나갈지 모르고, 언제 폭탄이 내 머리 위에 떨어져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런지도 모를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세상에 있는 꿈은 그 자체로 악몽이다. 여기 그러한 사회속에 나를 밀어넣는 책이 있다. 바로 폴오스터의 '폐허의 도시'이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이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다루는 전체주의 국가 또는 계획된 사회에서의 인간성의 파괴와 절망을 보여주는 면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한 여자의 보고서를 통해서 마치 우리가 그 속에 몸담고 사는 것같이 아주 현실감을 준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다. 실종된 사진기자인 오빠를 찾아 떠난 블룸 안나라고 하는 여자가 그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이야기들과 그가 생존의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마 지금의 우리 사회의 물질문명이 원료와 식량의 부족과 고갈에 의해 이루어질 미래상을 바로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하루하루의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거리의 부랑자들, 절도나 강도가 범죄로서 취급되지 못할 정도로 일상화된 사회의 풍경들, 다른 도시로의 출구를 봉쇄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의 역할만 하는 정부와 그 기관들, 오직 유일한 탈출구는 죽음이며 자살을 위한 많은 직업과 자살의 방법들이 만연화된 사회, 온갖 질병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 이 곳에서의 삶은 오직 절망이다. 단지 이 순간만이 내가 살아있는 순간이며 내일은 없다. 단지 지금 내가 숨쉬고 있을 수 있고 버티어내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사회. 그것은 바로 악몽이다.

이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해가고 버티어가는 열쇠는 역시 사랑이다. 오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이사벨로 이어지고 도서관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는 사무엘과의 깊은 사랑이, 워번 하우스에서는 빅토리아의 사랑과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현실의 절망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것이 절망의 근본이나 두려움과 공포의 싹마저 없애지는 못함을 우리는 안다.

이 사회에서 안나는 평범하면서도 이 사회의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편지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편지는 바로 우리 사회의 조금 앞선 미래에서 현재의 우리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우리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현재의 위기에 대한 무관심은 그녀가 살고 있는 사회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도 있다는 암시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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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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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의 글들은 모두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주제를 놓고 사실적이고 간략한 필치로 사용되는 언어들이 때로는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좀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고통을 인생의 여러 가지 사실들을 비유하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나, 일상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결국은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으면서 죽어가는 과정을 고독하고 힘들게 그리고 있다. '굴'이란 작품 역시 인생의 끝 지점 어디엔가에서 느끼는 존재의 불안과 고독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곰곰히 읽어보면 인간 존재가 가진 여러 가지 본질들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끔 한다. 때로는 존재의 가벼움을 때로는 존재 그 자체의 불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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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한국학
J. 스콧 버거슨 지음, 주윤정.최세희 옮김 / 이끌리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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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인 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이 한국에 체류하며 살면서 느낀 한국사회에 대한 자신의 문화적 진단서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아니면서 한국에 살면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한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한국적인관점의 결여와 애정성의 결여로 인한 무책임성의 단점도 동시에 가진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한국민족의 기원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한민족의 기원이 유태인이나 그리스인일 수 있다는 점)은 자칫 한국민의 정체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그야말로 발칙한(?) 한국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체류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인을 비롯한 유럽인들과 아메리카인들의 눈을 통해서 본 한국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느낌들과 진단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민의 문화적 정체성의 결여와 서구문화에 대한 무차별적인 추종이 보여주는 천박함과 그런 가운데서도 외국인들에 대한 반쯤의 동경과 반쯤의 배척적인 감정들 그리고 비 서구인들과 백인종을 제외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우리 사회가 가진 관용성의 수준이 얼마나 낮은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스콧 버거슨의 사회조사방법에 몇 가지의 만족하지 못한 방법론적인 문제점들이 있다. 국적이나 체류기간 또는 체류목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물음으로(그것도 추상적이어서 어떤 구체적인 지표나 증명할 방법이 없는 개념의 사용 등) 설문을 했다는 점과 북한 사회에 대한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똑같은 한국학으로 분류한 데다가 온통 비판일색으로 일관한 점은 적어도 그가 한국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 지표는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좋은 기분으로만 읽어가지 못한 원인중의 하나는 그가 우리 사회와 문화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고기 문화나 몇 가지의 내용에서 서구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그래도 그가 살면서 형성되어 온 문화적 가치관의 잣대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온전히 견지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국에 대한 진단은 가볍고 독특하며 정직하며 새롭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화가 가진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 쯤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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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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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햄릿, 맥베스와 함께 4대 비극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무어인이자 흑인인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라는 원로원 브라반시오의 딸과 사랑하여 결혼한다. 둘의 사랑은 오셀로가 전장으로 파견되자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오셀로를 따라 치열한 전장으로 따라 나서는 데스데모나의 의지로 더욱 솟아오른다. 키프로스에서의 만남은 '내 지금 죽더라도 가장 행복하리, 왜냐하면 내 영혼은 절대 만족을 맛보았으므로'라고 하는 오셀로의 말을 통해 그 사랑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데스데모나를 사랑하는 로데리고와 이야고의 음모를 통해 오셀로는 순결한 여인 데스데모나에 대한 질투와 미움을 점차 키워가게 된다. 이야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음모와 모반은 오셀로의 마음속에서 사랑과 질투, 선과 악, 이성과 감정의 대립과 모순을 낳고 오셀로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사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위험을 동정했기 때문이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험에 반응하는 그녀의 '동정'을 사랑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랑에 대한 자기만족적이고 허구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를 더욱 질투와 미움과 증오의 늪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둘 사이를 이간질해서 로데리고의 재물을 갈취하고 자신의 물적, 이기적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이야고는 이 작품에서 오셀로의 이분법적인 감정 분열과 내면을 꿰뚫어 보고 그의 마음속에 동요를 일으키고 분노를 일으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는 자이다. 어쩌면 오셀로는 전쟁영웅이자 명예로운 인격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그의 정신의 분열과정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은 보통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내면상태를 대변해 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데스데모나만큼은 이야고가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순결하고 선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따라서 그녀는 이야고의 술수가 통하지 않는 작품 속의 유일한 사람이다.

이 작품이 비극인 이유는 사랑하는 여인을 간계에 의해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자신도 그녀를 따라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보다 주인공 오셀로의 내면 속에서 그려지는 선악의 대립이 너무나도 일반적인 사람들의 감정을 따라가고 있고 또한 그의 사랑 역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고를 오셀로가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문제가 해결되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자신의 분열적이고 허구적인 사랑을 반성하고 깨우침으로써 비극적 요소로의 승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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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최면 치료 - 내 안의 또 다른 나
김영우 지음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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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거나 거짓이라는 사실이 완전히 증명되지 않은 어떤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사실일 수 있다.'고 하는 그의 정신과 영혼에 관한 원칙은 환자들에게 단지 병을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의미를 보다 완전하게 하고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김영우 박사의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현실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지만 반드시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 자아의 잠재된 부분을 현실로 끌어냄으로써 자신의 내면의 영적인 목소리를 듣게 하고 그것을 통해 그가 가진 병을 낫게 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가 직접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면요법의 사례들을 통하여 보다 확실화된다.

최면을 통한 전생퇴행요법은 우리들의 삶이 우리 사후에도 면면히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며 그 전생의 삶의 업들이 역시 현세에 이어진다는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전생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고통들과 상처들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이 생에서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 배울 수 있다면 그리하여 영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 의미를 다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해본다. 빙의와 다중인격장애 현상도 우리가 어릴 때 가진 심한 마음의 상처나 고통이 내면적인 의식에 잠재되어 생기게 되는 것으로 역시 현실의 모습과 표면적 의식 이외에 잠재되고 내면화된 영혼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책이 구체적인 최면요법에 대한 방법적인 기술이 아닌 사례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서로서 쓰여지긴 했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현상적이고 가시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존재의 영역이 존재하고 그 영적인 존재는 우리의 죽음을 너머 이후에도 지속된다고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영적인 체험을 많이 한 사람들은 '안다'는 표현을 쓰겠지만... 또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여러 가지 병들과 아픔과 고통과 상처와 불운들을 단지 피하고 거부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게 하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계기로 현대의 부분적인 증세와 그 제거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의학에 대한 반성과 인간의 몸을 전체로서 파악하고 또한 영혼과의 조화로운 관점에서 병을 바라보고 치유하는 정신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대체의학의 많은 변화,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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