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란 무엇인가?
스즈키 다이세쓰 지음, 이목 옮김 / 이론과실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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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즈끼 순류의 '선심초심'을 읽고 난 후 이 책의 이름을 접하고서 동명인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보니 서양세계에 선불교를 소개했던 교과서격인 스즈끼 다이세츠의 '선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희노애락을 타고 감각의 끝에서 그 선율을 타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우수에 젖고 사랑의 감정을 품고 하던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은 초심이었다. 그래서 다시 백지의 상태에서 내 마음의 선율의 첫 음을 잡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기쁨이 온전한 기쁨이도록...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의 느낌이 온전하고 더 넓은 사랑이도록...내가 느끼는 슬픔이 인생의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배움이 되도록....그러기 위해선 내 음악의 첫 선율을 타고 그 첫 음속으로 들어가 절대음을 느껴야 했다.

  그렇다면 선은 나에게 있어 내 삶 속에서 끄집어내야 할 무엇이었다. 다이세츠는 말한다. 될 수 있는 한 서양인들이 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자신의 삶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의문에서 그는 시작한다. 동양적인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이 낯설은 직관적인 마음을 어떻게 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불교를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그 배경을 이해하기 쉽게 이해하고 선의 의미와 공부방법을 보다 언어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그동안 읽은 책으로 이 책을 접하면 별로 새로울 것이 없고 감동이 덜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될 수 있는 한 그의 시대로 돌아가서 그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던 이유였다. 그러자 갑자기 나에게 초심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번역자의 티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좀 더 선적인 이해가 깊었더라면 좀 더 선적인 글들로서 내 마음 속의 의문을 자아내게 할 수 있었는데...언어의 길을 따라 한 길을 내고, 또 마음의 길을 따라 한 길을 내어 그 두 길을 합쳐놓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는 선생님의 서재에 들러서 구판인 '아홉마당으로 풀어쓴 선'이라는 책을 다시 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심재룡 교수는 자신의 평생의 공부로 불교와 철학에 대한 기본 배경을 바탕으로 풀어낸 점이 내 마음을 끌었다. 따라서 번역은 또 다른 저서다.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새로운 창조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도구적 역할에 머물 뿐이기 때문이다.

  6조 혜능 이후로 선불교는 능엄경에서 금강경으로 소의경전이 바뀐다. 쉽게 얘기하고 치열하게 실천하는 선이 대중불교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잡다하고 심오한 불교 경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일자무식의 농부나 아낙이라도 마음으로 직접 부처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때부터 선불교는 경전과 이별하여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공부가 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마음공부의 주된 흐름과도 일치한다고 생각된다. 이제 굳이 승려가 되지 않아도 재가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직접 보아 깨달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공부가 수월하거나 대충대충 할 수 있다는 말은 터럭만큼도 맞지 않다.

  어느 스님의 말이었던가? '불교란 어느 무지랭이 농부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그 한 생각을 잊은 것이다."라고 했다. 일체의 사회적 지위와 학식과 사고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보아 그 한 마음을 잊는 것이라고 했다. 일자무식의 혜능 스님이 제 6대 조사가 되면서 선의 황금시대가 도래한 것은 현대의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있는 그 자리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것이 내 앞에 주어진 길이 아닌가 하고...

  '선이란 무엇인가?' 의문은 공부의 시작이다. 문제는 이 의문과 내가 어떤 화학적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생성물을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의문의 문을 지나 그 의문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넣는 노력들이 나에게 필요하다. 의문에서 온갖 논리적인 사고를 굴린 것은 이미 오래전...이제 마음의 방향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던가? 의문을 가지고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의문 그 자체를 녹여서 답으로 만들어내는 것....모르는 그 마음을 아는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금술이요 신비 상자이다.

  그것은 우리의 자아로부터 비롯된 생각들과 감정들을 보다 큰 대아의 생각과 감정으로 바꾸어내고 나에 갇혀 있는 생각을 해방시켜 너와 우주로 뻗어가게 만든다. 내가 나이면서 동시에 전체 존재일 때 세상의 모든 일들은 완벽하고 손하나 댈 것없는 그대로의 우아한 우주가 된다. 그 우아한 우주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으로 가슴이 떨리고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 스산하게 내리는 비가 멎고 청명해진 하늘 위로 기분좋은 구름이 둥실 떠간다. 내 인생의 꿈도 그 위에 실리어 둥실 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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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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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서양에서 더욱 폭넓고 대중적으로 퍼져가는 불교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작년 초에 열반에 드신 숭산스님도 그런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힘쓴 분이다. 한국불교와 티베트 불교, 일본 불교, 그리고 남방 불교 등 여러 종류의 불교가 미국을 위시한 서양세계에 소개되고 또 서양 사람들의 마음에 싹트고 있다. 이러한 불교인구의 확대와 더불어 종교로서의 불교가 선과 명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림으로써 행복한 삶과 생활을 중심으로 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불교국가로서의 한국 불교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또한 한국불교가 서양의 현대불교의 변화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오교수는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통한 불교의 형성과정과 그것의 확장 과정 그리고 불교 경전의 형성 과정을 다룬다. 초기 부처님이 설했던 사성제와 팔정도를 통한 불교의 기본 교리의 성립과 초기 인도불교와 대승불교의 성립, 그리고 인도 불교의 쇠퇴과정이 나타난다. 그리고 중국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국가로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과 지역과 국가에 따른 불교의 민족적, 지역적 특징과 색채들을 살펴본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중국 불교를 건너뛸 수 없다. 중국은 인도의 달마 조사를 시작으로 불교의 꽃을 피우게 되고 그것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되기 때문이다. 또한 선불교의 전통과 맥이 가장 잘 전수되고 있는 한국불교도 불교 역사에서 차지하는 현재적 위치를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불교의 특징은 선불교다. 고려시대까지 불교는 국교로 지정되거나 국왕의 지지를 받았는데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유교를 숭배하면서 불교는 탄압받게 된다. 그러면서 불교의 종파는 크게 교종과 선종으로 양분되는데 이것이 한국 근대에 와서는 선종으로 통합된다. 물론 천태종, 화엄종, 법화종 등의 종파와 원불교 등 여러 가지 대중화된 불교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한국 불교의 주된 맥은 역시 선불교라고 할 수 있다. 선불교는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경전을 떠나 직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 본성을 보고 깨친다는데 중심을 둔다. 참선 방법으로는 좌선을 사용하는데 그 방법의 차이에 따라 간화선과 염불선 묵조선으로 나뉜다. 우리 나라 선불교는 간화선을 그 근간으로 한다.

  서양으로 간 불교는 주로 중상류층 이상의 엘리트층이 향유하는 문화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기복적이거나 사후세계의 관심보다는 현실생활과 행복을 그 목적으로 한다. 주로 명상과 선을 하고 있으며 일상생활과 수행을 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가면서 더욱 대중화되고 명상과 선이 강조된 점을 볼 수 있다. 한국 불교는 아직도 출가스님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기복적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거나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 우리의 재가불가자들의 종교로서의 불교도 서양의 흐름과 성장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로서의 불교도 시대가 변하면서 더욱 대중화되고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자화되고 언어화된 형식적이고 예식적인 면들이 보다 많이 축소되고 그 정신과 의미를 얻으려고 하는 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종교의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지 못하고 창시자의 마음을 공유하지 못할 때 그것은 신비화되거나 절대화된다. 나아가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면 '근본주의'의 형태를 띠게 된다. 다른 종교나 다른 신념에 대해 배타적이고 비판적인 근본주의는 인류사에 있어서 늘 문제를 빚어왔고, 인류의 성숙한 삶을 방해해왔다. 이제 두 종교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한 줄기의 강같았던 종교가 모든 종교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자신의 종교 안에서 더욱 성숙하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바다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의 새로운 종교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또한 불교를 비교사적으로 접근한 책이기 때문에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사회참여적이고 대중화된 의미에 주안점을 두게 됨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선의 가르침과 체험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불교에서 선적 체험이 없이 성숙하고 행복한 삶이 진실로 가능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알려졌던 소수의 깨달은 자들만을 신비화시키는 종교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여정을 통해 인간영혼의 성숙을 위해 누구나가 걸어가야 할 길로서의 불교가 참된 내적 깨달음없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 수 있으며, 세상의 평화와 자비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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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 허세욱 교수와 함께 읽는 중국 고전산문 83편
허세욱 옮겨엮음 / 학고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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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을 살다갔던 사람들의 삶을 그 모습으로 보면 천차만별이지만 그 마음으로 들어가면 인간사의 일이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그 인간사의 여러 가지 감정과 정신적인 경지, 생각들을 글로 남긴 것은 만국의 공통된 인간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기행문 형식으로 중국의 절경을 방문하며 느낀 감정과 정서를 기록한 글이 있는가 하면 일상의 작은 사건에서 자연으로의 귀의와 그 비유를 드러내기도 하고, 문란한 폭정을 풍자하고 비판한 글들도 있다.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란 제목을 붙였다. 호수에 놀러간 담원춘은 친구가 배를 타고 놀자는 말에 뗏목을 띄우자고 한다. 배나 뗏목이나 사람이 만든 것이야 다를 바 없지만 보다 자연적인 흥취를 즐기려는 그의 마음이 드러난다. 배는 보다 많은 마음이 들어갔기 때문에 목적지에 당도한 후 버리기가 아깝다. 하지만 뗏목은 가볍게 만들 수 있고 물을 건너면 주저없이 버리기에 좋다. 즉, 유목적이고 버리는 삶이 가능하다. 될 수 있는 한 자연을 만끽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개인적으로 장대의 '방공지의 달밤'과 '호심정에 내리는 봄눈'이 좋았다. 물과 자연 속에 흥건히 젖은 마음에는 세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오직 자연에 젖은 마음만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초록의 커진 잎사귀들이 비바람에 몸을 많이 흔들어대고 잿빛의 흐리고 깊은 하늘에서 자꾸만 빗줄기는 쏟아져내린다. 주말 오후의 한가로워진 마음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시간이다.

  세상을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글이 자꾸만 좋아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느새 나의 마음은 사회의 옳고 그름이나 갈등들로부터 마음을 돌리고 마음 속을 점점 비우고 싶어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버들이 머리를 날리우고 갈대가 바람에 소리를 내고 새들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날아다니고 서로에게 화답하는 노래를 부르고 장엄하게 깔리는 노을과 슬며시 하늘을 물들이는 어둠과 산에서 피어나는 운무들이 마음의 경계를 투명하게 한다.

  오늘 학교 계단에서는 등꽃이 활짝 피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등꽃의 향기를 덩쿨 아래에 머물게 한다. 보랏빛의 아름다운 등꽃을 보는 눈의 즐거움과 그 향기를 은은하게 맡는 코의 즐거움이 동시에 함께 한다. 더불어 주말의 오후도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그 향기를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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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지혜 100 - 조선선비들에게 배우는
윤홍식.오병문 지음 / 봉황동래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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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 조선 시대 선비들의 마음공부가 어떠했는지를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 글들을 추려 놓았다. 조선역사에서 흔히 이름을 들었던 사람들도 사실 그 마음 됨됨이가 어떠했는지는 몇 가지의 일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저자는 백두산족 전래의 정신수련학 및 민족고유의 지덕체 양성법에 관심을 갖고 홍익학당과 홍익정신연구회, 민족 전래의 체력 양성법을 몸으로 익히는 종무회를 운영하고 있다.

  깨달음과 마음 공부에 대한 옷은 참으로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종교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그리고 우리 나라의 유교도 나름대로의 마음 수양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각 각의 종교나 문화에 따른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 속에서 체험해내고 인생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성숙하게 대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문제는 어떠한 옷이 나에게 맞는지를 탐색하기 위한 과정으로 책들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주로 우리 선비들이 사용했던 정신수련법은 '호흡법'이었다. 자신의 호흡이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항상 깨어있는 것이 일상화되면 '원신'이 그 진리를 드러낸다고 한다. 우리가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먼저 고르던 호흡이 파괴되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상태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 호흡이었고 따라서 우리의 선비들은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듬었던 것이다.

  그렇게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들러붙은 마음을 자신의 안으로 돌려 스스로를 성찰하는 자세로 수기했던 우리 선비들은 남들이 보나 보지 않으나 항상 신독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화담을 유혹하려고 황진이가 늦은 밤 화담의 문 앞을 옷을 벗고 왔다갔다 하지만 화담의 마음은 요지부동....모든 사물과 우주가 생겨나는 그 자리, 즉 모든 사물과 우주가 사라지는 그 자리에 마음이 머물렀던 화담 선생이 황진이의 몸짓에 움직였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경으로 자신의 마음을 깨어있게 했고, 그 경의 극치에서 성의 기쁨을 맛보았던 많은 선비들은 부, 귀, 명예에 초연하여 사회로 나아가기도 했을 것이고, 또 물러나 자신의 정신수련에 인생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챙기고 있는가 놓치고 있는가 였을 것이다.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너무 팽팽해도 안될 것이고 너무 느슨해도 거문고의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듯이 자신의 마음과 계합하는 글로써 자신의 마음을 호흡지간으로 놓치지 않고 공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공부를 점검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공부를 함에 외롭지 않은 이유는 세상에 외롭지 않은 공부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이 땅위에서 홀로 공부하며 벗들과 어울렸던 선비들에게도 떨쳐버리지 못한 스스로의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외로움을 기름 삼아 불을 밝히고 공부에 매진했던 연금술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누구나가 자신의 인생의 성장의 길을 걷는다. 누구나가 자신만의 토양 위에 홀로 선 나무이다. 내가 선 이 자리서 내 몸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는 홀로의 길을 잘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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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있다 1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말 바루기 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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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글도 아닌 글을 적으면서 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늬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어휘의 부족을 늘 느낀다. 더불어 평범하게 쓰고 있는 단어도 그 의미와 정확한 용례를 무시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몰라도 꼭 국어 맞춤법에 대한 책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우리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바르게 쓰는 일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바른 말을 알아야 그 바른 말 속에 담겨진 뜻과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봐야지 하고 주문했던 책을, 책읽어내기 어려운 요즘 들게 되었다. 국어도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 사용법이나 쓰임새가 세월이 가면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변화된 맞춤법을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익히지 않는다면 잘못 사용할 때가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책을 읽고 마음을 잘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담아낸 마음을 바르고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만 읽고 느낄 것 같으면 표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타인이 한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는 글들에는 정성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일종의 읽는 이에 대한 배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맞춤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보면 허점투성이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글쓴이의 마음을 따라 읽어내려는 노력 덕에 많은 민폐가 가려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영어나 외국어는 죽어라고 공부하면서 우리글은 그냥 일상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뒤로 밀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물건을 쓰는 것도 바르게 쓰는 법이 있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좋게 대하는 것이 있듯이 글을 쓰는 데에도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에 2년이 넘게 연재되어온 우리말 바루기의 글들을 모아엮었다. 우리 생활에서 틀리기 쉬운 말과 글쓰기에 대해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과 사진까지 덧붙여 읽기에 조금도 지루함이 없다. 지금 당장 고등학교 교과서도 펼치기 힘들고 그렇다고 정규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따라가기도 힘든 실정의 일반인이 그냥 책읽듯이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시간 날 때 조금씩 읽을 수 있도록 하나씩의 사례로 되어 있다. 편집한 이들의 노력과 정성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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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8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4-2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보다는 몸입니다.
둘째아이 태어나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ㅋㅋ, 역시 글샘님입니다.
고맙습니다.

2006-04-29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4-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참, 숫자는 뭔가 오류가 있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