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 허세욱 교수와 함께 읽는 중국 고전산문 83편
허세욱 옮겨엮음 / 학고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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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을 살다갔던 사람들의 삶을 그 모습으로 보면 천차만별이지만 그 마음으로 들어가면 인간사의 일이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그 인간사의 여러 가지 감정과 정신적인 경지, 생각들을 글로 남긴 것은 만국의 공통된 인간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기행문 형식으로 중국의 절경을 방문하며 느낀 감정과 정서를 기록한 글이 있는가 하면 일상의 작은 사건에서 자연으로의 귀의와 그 비유를 드러내기도 하고, 문란한 폭정을 풍자하고 비판한 글들도 있다.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란 제목을 붙였다. 호수에 놀러간 담원춘은 친구가 배를 타고 놀자는 말에 뗏목을 띄우자고 한다. 배나 뗏목이나 사람이 만든 것이야 다를 바 없지만 보다 자연적인 흥취를 즐기려는 그의 마음이 드러난다. 배는 보다 많은 마음이 들어갔기 때문에 목적지에 당도한 후 버리기가 아깝다. 하지만 뗏목은 가볍게 만들 수 있고 물을 건너면 주저없이 버리기에 좋다. 즉, 유목적이고 버리는 삶이 가능하다. 될 수 있는 한 자연을 만끽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개인적으로 장대의 '방공지의 달밤'과 '호심정에 내리는 봄눈'이 좋았다. 물과 자연 속에 흥건히 젖은 마음에는 세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오직 자연에 젖은 마음만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초록의 커진 잎사귀들이 비바람에 몸을 많이 흔들어대고 잿빛의 흐리고 깊은 하늘에서 자꾸만 빗줄기는 쏟아져내린다. 주말 오후의 한가로워진 마음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시간이다.

  세상을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글이 자꾸만 좋아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느새 나의 마음은 사회의 옳고 그름이나 갈등들로부터 마음을 돌리고 마음 속을 점점 비우고 싶어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버들이 머리를 날리우고 갈대가 바람에 소리를 내고 새들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날아다니고 서로에게 화답하는 노래를 부르고 장엄하게 깔리는 노을과 슬며시 하늘을 물들이는 어둠과 산에서 피어나는 운무들이 마음의 경계를 투명하게 한다.

  오늘 학교 계단에서는 등꽃이 활짝 피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등꽃의 향기를 덩쿨 아래에 머물게 한다. 보랏빛의 아름다운 등꽃을 보는 눈의 즐거움과 그 향기를 은은하게 맡는 코의 즐거움이 동시에 함께 한다. 더불어 주말의 오후도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그 향기를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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