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를 찾게해주는 당신 - 김용택 시화선집
김용택 지음, 선종훈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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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군대의 탱크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로 총격이 가해지는 비극 앞에서 오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증오와 미움의 거친 바람이 인다. 헤즈볼라를 소탕한다는 미명하에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지역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결정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이 연이어 이어지는 현실에서, 북한의 다분히 정치적이고 쇼같은 미사일 공격에 치열하게 열을 올리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덩달아 달아오르는 이 땅의 반공주의자들 앞에 남북관계는 더욱 냉랭해져가고 그들의 마음 속엔 다시 증오와 불신이 자리잡는다. 건설 노조의 포스코 점거농성도 결국은 공권력의 투입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건설노동자와 건설 협회 그리고 포스코 나아가 정부와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게 패였다. 세상 어디서도 그칠 줄 모르는 갈등과 전쟁 그리고 차별과 타자화는 우리들 내면의 왜곡되고 어긋난 마음이 펼쳐져 드러난 결과이다.

  태풍과 장마전선의 타격으로 동북아시아의 많은 지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인간이 파헤치고 초토화시킨 산과 대지는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불화는 자연현상을 통하여 나타난다. 산사태로 묻혀버린 가옥과 사람들, 홍수로 쓸려내려간 집들과 사람들, 유실된 도로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허탈한 표정. 끊임없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 교감을 방해하는 벽들이 생긴다. 그런 벽들이 상호간의 교류를 메마르게 한다.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방학한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날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맑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비가 내려 촉촉히 젖은 땅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비단 땅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좀 촉촉히 젖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얼마나 일상의 습관에 젖어사는가? 아인슈타인은 "세상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레이첼 카슨의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란 책을 넘겨보면 호수 위로 붉게 물드는 석양이 아름답고, 초록의 숲 속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단풍나무과 잎들이 하나 하나 사람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밤하늘의 별이 되기도 한다. 잔잔한 수면 위에 빗방울 하나 떨어져 만들어지는 동심원이 신비롭고, 밤하늘을 가득 메운 무수한 별들과 저 별들의 의미가 신비롭다. 집과 도시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도 두려움을 버리고 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가?

  오늘 처와 아들의 손을 잡고 해운대 바닷가로 갔다. 해변가를 거닐다가 아이의 양말과 신을 벗기고 바다로 가서 파도치는 물결아래로 발을 담그자 깜짝 놀라서 좋아하는 시윤이를 보며 삶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많이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계가 부끄러웠다. 바다와 파도를 처음 알게 된 녀석이 그곳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이 이슥해질 무렵에서야 그는 엄마가 이끄는 손을 잡고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나왔다. 수만년 수백만년을 밀려왔을 저 파도, 하지만 한 번도 같은 물결의 무늬를 하지 않았던 저 파도 속에서도 우리는 존재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의문이 우리들의 삶을 공백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김용택 시인의 시들이 주는 언어의 느낌들은 따뜻하다. 그리고 포근하다. 첫사랑의 가슴떨림을 생각하게 하는 것같기도 하고, 따사로웠고 평화로웠던 60년대의 농촌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그려낸 풍경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정작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런 풍경이 아니다. 그의 순수했던 백지의 마음이다. 허공의 마음이다. 그 마음 위에다 그려놓은 풍경들은 수채화처럼 하늘을 물들이고 산을 물들이고 강을 만들어내고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하루 종일 산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산이 되고 하루 종일 강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강이 된다고 했다. 한 30년 정도는 산을 들여다보아야 산을 알게 되고 30년 정도는 강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30년의 세월동안 그의 마음 속에 일어났던 일이 무엇일까? 그 30년의 세월동안 그의 마음이 걸어갔던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훌쩍 지나버린 세월 앞에 서서 그는 지금 있는 그 자리가 은혜로운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이 자리가 평화의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슬픔과 좌절, 고통과 시련, 불안과 초조, 억압과 갈등, 절망과 낙오 속에서도 그 자리가 평화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한 노릇이다.

  한미 FTA로 고통받은 농민과 서민들의 삶이 그 자체로 은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세계의 패권국가 미국의 감시와 공격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북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 자리가 평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시시각각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몰라 생사의 갈림길을 맞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교전지역에서도 우리는 삶의 축복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몇 일을 굶주리다가 경찰의 진압봉에 맞아 머리가 터져 쓰러지면서도 우리는 이 순간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고 했다. 다른 곳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라고 했다. 무엇이 과연 나로 하여금 극단적인 절망과 고통 속에 놓인 이 곳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가? 이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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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7-2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택이 '섬진강'을 쓰던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농촌은 더 팍팍해져 버렸겠지요. 포스코 사무실 점거를 폭도처럼 보도하는 것도 수십 년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고통과 행복은 순간 순간 음양이 바뀌는 전자들의 자리나 마찬가지일는지요.
흐린 날씨까지 받아들이신 마음이 고맙습니다.

달팽이 2006-07-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살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면...
때로는 수백년의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수천년의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수백먄년 수억의 시간이기도 한데
그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묻게 됩니다.


어둔이 2006-07-2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갖혀싸움하던
나의너는너의나를
얼마나찔러되었나
밤사이피를튀긴짓
깨보니묻은피없다

달팽이 2006-07-2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잊고못산다고
휴대폰달궈지도록
밤새주고받던밀애
하얗게지새우던밤
깨고보니일장춘몽

로드무비 2006-07-2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공초 오상순의 말이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데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투덜투덜......

달팽이 2006-07-2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말입니다.
"내가 앉은 바로 그 자리가 꽃자리"
어디 다른 데 눈 돌릴 필요가 없군요.

어둔이 2006-07-3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흐름위에 보금자리친...'이 싯귀도 오상순님의 글인데
꽃자리는 자리없는 자리
보금자리에 몸뉘어 살다보면
우리는 온갖 것에 자신의 자리를 만듭니다
 
너는 나의 하늘이야 - 바보 선생님 문경보가 전하는 우리 아이들의 교실 풍경
문경보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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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옳고 그름과 바르게 사는 삶을 가르쳐야 하는 것도 중요한 교사의 사명 중 하나이지만 그것에 앞서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정서적인 상처들을 그저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교사가 있음은 그들에게 있어 행복이다. 물론 그런 교사라면 어떤 아이들이 그 앞에 놓여져 있어도 자신의 행복임을 알고 있겠지. 예전에 난 그의 이름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쓴 이 책을 읽으며 다소 책을 만들기 위해 정리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교단에서의 일기를 자신의 마음을 담아 써내었고 또 같은 교사로서 감동과 교훈을 주는 책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갖는 그 애정이 깊어서 아이들도 마음으로 소통될 수 있다면 때로는 옳고 그름이 별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든 어떤 감정의 말을 풀어놓든 사실 아이들은 제각각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달리 받아들인다. 그럴 때에 내가 어떤 감동적인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 내 마음씀이 더욱 중요하다. 인격의 성장과정에서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 말도 자기식으로 해석할 수 있고 나쁜 말도 그에게 약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결국엔 그 말과 행동을 아이들에게 쏟아붇는 나의 마음의 동기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비록 그보다 적은 나이의 나지만 그가 실천한 여러 가지 학교에서의 행동을 내가 따라하지 못할 것이 많다. 아이들 발이나 손을 씻어준다든지(물론 특별한 상황에 인연이 닿으면 몰라도 행사처럼 모든 반 학생들을 씻어주는 행동은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해내는 그의 마음만은 배워야겠다. 그가 여러 아이들을 대하며 그들 앞에서 흘린 많은 눈물들처럼 아이들에 대한 진실한 내 마음을 스스로가 속이지 않는 학교생활이 필요하겠다. 사실 교단에 있다보면 눈물 흘릴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참아내며 외면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눈물 흐르는 때와 장소가 어떠하든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가진 순수함이다. 내가 교단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그 순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그 앞에서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는 나의 첫 교단 생활을 떠올린다. 그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일들...

  아이들에게 문제 상황을 가지고 상담하고 그 아이에게 조언해주는 것은 인간적인 성장을 필요로 한다. 인생의 길은 누구에게나 다르지만 그 인생의 길을 통해 영혼의 성숙을 지향한다는 점은 인간 누구에게나 같다. 그래서 그 제각각 다른 길들이 성숙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일이든지 제 길이 있기 나름이다. 그 길을 미리 보고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생을 좀 알아야 선생노릇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내가 좀 더 익어서 인생을 좀 알 수 있어야 비로소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편해지고 좀 더 아이들을 배려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나이든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삶에 대해 고민하고 삶과 인생의 바른 길을 공부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해보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자와 같이 교단 생활을 통해서 그것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적인 믿음을 통해서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 그것을 얻기도 한다. 어떤 방법으로건 삶의 과정을 거쳐가며 성숙해가는 아이들을 바르게 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그 길을 걸어가야 하고 될 수 있으면 좀 더 일찍 걸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보면 아이들 대하는 것이나 자식 대하는 것이나 세상 사람들 대하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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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정말 저는 타성에 젖어 사는데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은 것 같아요.

달팽이 2006-07-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도 그 마음씀만으로도 훌륭한 선생님이겠지요..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심도 괜찮을듯...

RashBoy 2007-04-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는 나의 하늘이야 전에 출판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어 감명받은적이있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 또한 저의 가슴을 적셔줄지 기대되는군요.
 
딥스 - 어린이 교육학 시리즈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참교육가이드 옮김 / 산수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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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먹구름이 몰려오고 어둡고 두껍게 깔린 구름 사이로 괴성이 터져나오면서 빗줄기는 떨어진다. 큰 바람과 함께 대지를 뒤덮는 비바람이 지나간 후 우리는 뿌리뽑힌 나무도 보고 물에 잠긴 마을도 본다. 산사태로 파묻힌 집 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들과, 강물에 떠내려가는 가축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모든 생명들을 보며 그것을 우리는 '자연 재해'라고 이름붙인다. 하지만 그 자연 재해 뒤의 맑은 공기와 명징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 그 자리에 놓여 있다. 물감보다도 파란 하늘 위로 햇살이 밝게 비추면 세상은 다시 생명의 활기로 가득찬다.

  그것은 먹구름이 대지위에 수많은 비와 바람을 뿌린 뒤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좌절과 슬픔도 때로는 살아가는 힘이 됨을 안다. 하지만 그 좌절과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린 싹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비바람이 생명의 뿌리를 잘라내게 될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갈 때 조심해야 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딥스는 총명하고 높은 지능을 가진 아이지만 출생을 바라지 않았던 부모로부터 받은 무관심과 질시 냉정과 분노로 인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갖고 자신을 마음 속의 어두운 방안에 가두어 둔 아이이다.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면서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반응들로만 가득찬 아이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놀이치료방이었다. 한 세심하고 배려깊은 심리학자와 아이의 만남은 이 놀이방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아이가 최대한 스스로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이를 통해 자신을 치료해나가도록 도와준다. 이 때 그녀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게끔 그래서 스스로 독립심을 가지게끔 과도한 관심과 표현을 삼간다.

  사실 심리적으로 상처받은 아이를 치료할 때 중요한 것은 심리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부모와 치료를 병행하면 더욱 좋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여도 관계에 있어서 개선이 나타나지 않을 때면 심리치료가 별로 효과를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지기까지 부모의 역할과 주변 관계인물의 행동과 반응이 중요한 것이 아동의 심리치료이다.

  놀이와 치료를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그것이 치료라는 형식과 마음의 부담을 걷어주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럽게 진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그런 면에서는 어른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서발달과 지능발달의 불균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치유되지 못한 부정적인 면들과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런 치유를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의 개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거센 비바람이 불고 지나간 자리에 생명의 숨결이 뿌리채 뽑힌 여린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외부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조그만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서와 전인적 성장이 형성되고 있는 아동들에게 있어 그 안전지대는 우선 그들의 부모이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속의 딥스를 보게도 해주지만 지금 우리 손에 의해 길러지고 있는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방 역할을 바로 부모가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를 안고 자라는 아이들이 가장 우선 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걷어내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를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이미 그의 정신적인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말해준다. 이 책을 보고 나는 우리가 우선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들도 그렇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오는 은행나무길을 걸으며 아들녀석이 은행나무 하나 하나에게 말을 걸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너무 빨리 아이들의 세상인식을 한정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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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1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7년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나요. 단골서점에 가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책을 구경하던 것이 제 유일한 취미였는데 이 책도 그러다 만난 보물 같은 책이었죠. 근데 읽고 난 후 가슴이 좀 아팠어요.
님의 좋은 글 읽으며 그 때 생각해 봅니다. 좀 얻어 갑니다. *^^*

달팽이 2006-07-2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책이 발간된지 그렇게나 오래 된지는 몰랐군요.
고마워요..
 
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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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정보들로써 황우석 사태에 대한 일련의 흐름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때로는 애국주의에 묻혀가기도 했고 때로는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의 이면에 유전자 조작에 대한 인간성 문제에 대한 잠재된 두려움 또한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황우석 사태의 전말에 대한 이해가 궁금했다. 조그만 새로운 정보에도 결론을 뒤집어대는 사람들 속에서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들의 이러한 혼란과 어지러움에 보수언론들의 몫이 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왜? 국민들이 그렇게 '황우석'이라는 한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희망과 열망을 가졌다가 일순간 바람빠진 풍선처럼 모든 것이 빠져버리고 그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은 모두 피해자로서만 목 메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그에게 걸었던 국민적이고 세계적인 관심과 기대는 또 단순한 몇 가지 사실로서 180도 뒤집혀지고 그를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었을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었던 한 순간의 부끄러운 과거처럼 빨리 잊혀지기만을 기다리는가?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황우석 교수라는 한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 심각하게 감추어져 있는 우리 사회의 보다 깊은 문제점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반성해야만 앞으로 우리가 엉뚱하고 빗나간 열정으로 민주주의를 질식사시키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황우석 사태'라고 지칭되었던 황우석 교수의 복제소의 탄생과 배아줄기세포에 얽힌 사이언스의 발표와 국내외의 관심과 집중, 그리고 정부의 정책 변화와 언론의 보도, 국민들의 영웅만들기 심리와 과학기술계와 의료학계의 권력의 집중과 부패구조에 대해 7년 동안의 꼼꼼하고 세밀한 자료 조사와 정리를 통해 이 사건이 가진 의미에 대해 보다 포괄적이고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황우석 사건이라는 일대의 사건 속에 우리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이 압축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학자로서의 자질보다는 언론과 매체를 통해 보였던 쇼맨쉽과 과학기술계와 의료계의 학계를 통해 형성했던 권력구조와 이를 지탱하기 위한 정부 주요 인맥과의 관계와 재계와 정계 인사와의 인맥 맺기는 이 사건이 한 학자의 연구를 넘어 사회적인 국가적인 모순구조와 맞물려들어갔음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들을 하나 둘씩 배반해가는 노무현 정부에게 그는 재임기간 중 국가 장기 발전 계획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고 현 정부의 성과로 시작하게 하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2002년 월드컵 이후 국민적 영웅과 대중들의 관심과 열정을 모으는 촛점으로 제격이었다.

  거의 '황우석 신드롬'으로 한국 사회를 물들일 무렵, 그에 대한 어떤 사소한 비판조차도 반애국주의와 반국가주의로 매도당하였으며, 과학기술, 의료계 내부에서의 비판은 이미 그가 접수한 권력 구조내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입밖에 꺼낼 수 없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정작 외국에서는 치열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나 인간 윤리에 대한 심도있는 논쟁이 눈이 없는 맹목적 열정 속에 녹아버리고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설쳐대는 과학기술에 대해 그 누구도 다치는 것을 회피했던 우울한 시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MBC의 PD수첩은 결국 중단되었으며, 공개 사과를 해야 했고, 지독한 국민들이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체주의와 파시즘같은 분위기속에서도 바른 소리를 내었던 용기있는 지역 과학도들의 비판의 글 게재와 자성의 목소리와 반성의 움직임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바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정보를 얻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을 빼앗아버린 현대 사회의 언론이 빚어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파시즘과 전체주의적인 움직임.

  그 전체 분위기에서 때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이지러진 욕망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각계 각층의 역시 왜곡된 욕망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어긋난 열광들 속에 많은 사람들의 침묵은 민주주의의 밑동을 잘라낸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년' 현실이 우리 사회를 훑고 지나갔던 것 같은 악몽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답고 참다운 삶을 위한 민주주의가 이 땅에 안녕하신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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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7-1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기에 결국은 사회의 모든 문제가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군요.
사회로 나아갈수록 어둡고 비관적인 면들만이 자꾸만 보이게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사실 별로 뚜렷한 무엇인가가 떠오르지 않구요.
이런 세상을 의미있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뿐입니다.
논의로도 행동으로도 다 안되는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또 묻습니다.

비자림 2006-07-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고 갑니다.
후후 오늘은 여기가 글샘님 서재같은 느낌이 드네요.^^

달팽이 2006-07-1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자림님.
방학이라 서재활동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monstino 2006-11-2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을 통해 당시 사태에 대한 많은 기사를 냈던 강양구 기자를 비롯, 세 지은이들은 과학기술 민주화'라는 테마를 공유하며 7년여간 황우석 사태를 추적, 정리, 비판해왔다. --- 과연 몇번이나 책상에서 만들어낸 거짓이아닌 취재에 의한 기사를 기고했을까? --

달팽이 2006-11-20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부분에 대한 정보의 진위는 제가 파악할 수 없군요.
혹시 좀 생각이 있으시면 글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와 더불어 남기어 주시면 고맙겠네요..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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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내 가슴 속으로 쏙 들어온 글들을 쪽지에 적어 다닌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적절하게 한 번 써보고 싶을 때 한껏 멋을 부려 써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시기적절하게 써먹을 때쯤엔 항상 나는 그 말을 잊어버리곤 했고, 그것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었을 땐 이미 그것은 너무나도 어색하고 평범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노트에 늘 베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지니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 시가 주는 마음만 느낌만 간직하면 되는 것이다.

시를 읽는 동안에 내가 즐겁고, 또 시를 읽는 동안의 시인의 상상력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무엇보다 말로 표현된 글들의 이면에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공감할 때에

짠 하게 나를 뒤흔드는 느낌들이 한 권의 시집을 들게 만든다.

시인은 역시 안온하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방안에 누운 영혼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비바람 불고 천둥치는 거리를 뛰쳐 나와 그 비를 맞고 바람을 맞으며 천둥소리와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시는 드러내지 않고 드러내어야 한다.

시골길의 부부가 멀찍이 떨어져 걷는 모습이...

팔짱을 끼고 허리에 손을 두르는 현대의 커플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 고불고불한 시골길을 한참 걷다가

소실점에 한 점이 되어버린 부부....에서

가파른 언덕길로 전혀 힘들지 않은 말없지만 따뜻한 사랑에....우리는 감동한다.

아! 김기찬 작가의 사진 또한 그러하다.

삶을 살기 위해 빠듯하게 몸을 뒤척여야 했던

먹고 사는 것이 그렇게 힘겨웠던 지난 시절의 우리들의 얼굴은

고통으로 찌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더욱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랑과 행복의 미소에

배부른 오늘이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가?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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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0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았사옵나이다. ^^

달팽이 2006-07-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고 다니면서 천천히 한 편씩 읽어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