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를 찾게해주는 당신 - 김용택 시화선집
김용택 지음, 선종훈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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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스라엘 군대의 탱크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로 총격이 가해지는 비극 앞에서 오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증오와 미움의 거친 바람이 인다. 헤즈볼라를 소탕한다는 미명하에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지역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결정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이 연이어 이어지는 현실에서, 북한의 다분히 정치적이고 쇼같은 미사일 공격에 치열하게 열을 올리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덩달아 달아오르는 이 땅의 반공주의자들 앞에 남북관계는 더욱 냉랭해져가고 그들의 마음 속엔 다시 증오와 불신이 자리잡는다. 건설 노조의 포스코 점거농성도 결국은 공권력의 투입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건설노동자와 건설 협회 그리고 포스코 나아가 정부와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게 패였다. 세상 어디서도 그칠 줄 모르는 갈등과 전쟁 그리고 차별과 타자화는 우리들 내면의 왜곡되고 어긋난 마음이 펼쳐져 드러난 결과이다.

  태풍과 장마전선의 타격으로 동북아시아의 많은 지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인간이 파헤치고 초토화시킨 산과 대지는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불화는 자연현상을 통하여 나타난다. 산사태로 묻혀버린 가옥과 사람들, 홍수로 쓸려내려간 집들과 사람들, 유실된 도로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허탈한 표정. 끊임없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 교감을 방해하는 벽들이 생긴다. 그런 벽들이 상호간의 교류를 메마르게 한다.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방학한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날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맑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비가 내려 촉촉히 젖은 땅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비단 땅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좀 촉촉히 젖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얼마나 일상의 습관에 젖어사는가? 아인슈타인은 "세상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레이첼 카슨의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란 책을 넘겨보면 호수 위로 붉게 물드는 석양이 아름답고, 초록의 숲 속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단풍나무과 잎들이 하나 하나 사람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밤하늘의 별이 되기도 한다. 잔잔한 수면 위에 빗방울 하나 떨어져 만들어지는 동심원이 신비롭고, 밤하늘을 가득 메운 무수한 별들과 저 별들의 의미가 신비롭다. 집과 도시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도 두려움을 버리고 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가?

  오늘 처와 아들의 손을 잡고 해운대 바닷가로 갔다. 해변가를 거닐다가 아이의 양말과 신을 벗기고 바다로 가서 파도치는 물결아래로 발을 담그자 깜짝 놀라서 좋아하는 시윤이를 보며 삶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많이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계가 부끄러웠다. 바다와 파도를 처음 알게 된 녀석이 그곳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이 이슥해질 무렵에서야 그는 엄마가 이끄는 손을 잡고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나왔다. 수만년 수백만년을 밀려왔을 저 파도, 하지만 한 번도 같은 물결의 무늬를 하지 않았던 저 파도 속에서도 우리는 존재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의문이 우리들의 삶을 공백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김용택 시인의 시들이 주는 언어의 느낌들은 따뜻하다. 그리고 포근하다. 첫사랑의 가슴떨림을 생각하게 하는 것같기도 하고, 따사로웠고 평화로웠던 60년대의 농촌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그려낸 풍경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정작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런 풍경이 아니다. 그의 순수했던 백지의 마음이다. 허공의 마음이다. 그 마음 위에다 그려놓은 풍경들은 수채화처럼 하늘을 물들이고 산을 물들이고 강을 만들어내고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하루 종일 산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산이 되고 하루 종일 강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강이 된다고 했다. 한 30년 정도는 산을 들여다보아야 산을 알게 되고 30년 정도는 강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30년의 세월동안 그의 마음 속에 일어났던 일이 무엇일까? 그 30년의 세월동안 그의 마음이 걸어갔던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훌쩍 지나버린 세월 앞에 서서 그는 지금 있는 그 자리가 은혜로운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이 자리가 평화의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슬픔과 좌절, 고통과 시련, 불안과 초조, 억압과 갈등, 절망과 낙오 속에서도 그 자리가 평화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한 노릇이다.

  한미 FTA로 고통받은 농민과 서민들의 삶이 그 자체로 은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세계의 패권국가 미국의 감시와 공격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북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 자리가 평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시시각각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몰라 생사의 갈림길을 맞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교전지역에서도 우리는 삶의 축복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몇 일을 굶주리다가 경찰의 진압봉에 맞아 머리가 터져 쓰러지면서도 우리는 이 순간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고 했다. 다른 곳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라고 했다. 무엇이 과연 나로 하여금 극단적인 절망과 고통 속에 놓인 이 곳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가? 이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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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7-2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택이 '섬진강'을 쓰던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농촌은 더 팍팍해져 버렸겠지요. 포스코 사무실 점거를 폭도처럼 보도하는 것도 수십 년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고통과 행복은 순간 순간 음양이 바뀌는 전자들의 자리나 마찬가지일는지요.
흐린 날씨까지 받아들이신 마음이 고맙습니다.

달팽이 2006-07-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살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면...
때로는 수백년의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수천년의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수백먄년 수억의 시간이기도 한데
그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묻게 됩니다.


어둔이 2006-07-2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갖혀싸움하던
나의너는너의나를
얼마나찔러되었나
밤사이피를튀긴짓
깨보니묻은피없다

달팽이 2006-07-2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잊고못산다고
휴대폰달궈지도록
밤새주고받던밀애
하얗게지새우던밤
깨고보니일장춘몽

로드무비 2006-07-2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공초 오상순의 말이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데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투덜투덜......

달팽이 2006-07-2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말입니다.
"내가 앉은 바로 그 자리가 꽃자리"
어디 다른 데 눈 돌릴 필요가 없군요.

어둔이 2006-07-3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흐름위에 보금자리친...'이 싯귀도 오상순님의 글인데
꽃자리는 자리없는 자리
보금자리에 몸뉘어 살다보면
우리는 온갖 것에 자신의 자리를 만듭니다